얼마 전 다엘과 함께 전철을 타고 갈 때였다.
지하철 광고판의 임상실험 관련 광고를 보고
다엘이 큰 소리로 물었다.
“엄마, 조루증이 뭐야?”
내가 바로 답을 못하자 재차 더 큰 목소리로 묻기에
정신을 수습하고 대답해 주었다.
“응, 그건 남자의 성기와 관련된 병이야.
여기서 말하기 어려우니까 나중에 알려줄게.”

 

집에 돌아와서 다엘에게 어떻게 정자가 난자에 전달되는지
예전에 말했던 내용을 간략히 다시 정리 해주고,
조루증에 대해서 아는 한 성의껏(?) 설명했다.

 

부모가 아이에게 성에 관련된 얘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뭘까?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
‘여자는 왜 꼬추가 없어?’
예전부터 다엘이 했던 이런 질문들에 답할 때,
나는 비언어적 전달에 주의를 기울였다.
말의 내용보다 나의 정서와 태도가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사람의 몸에 대한 해부학적 용어는
다엘이 어려서부터 그림책을 보여주며 조금씩 소개했다.
여자의 성기에 위치한 산도,
즉 아기 나오는 길을 통해 새 생명이 태어난다고 설명했고
남자는 겉으로 드러난 성기를 갖고 있지만
여자는 몸 속에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이 과정에서 남녀의 차이를 자칫
'남자에겐 있지만 여자에겐 없다'거나 혹은
그 역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지금껏 다엘은 성에 대해 말할 때
어둡고 숨겨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마땅히 배워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다엘의 학교는 학생들뿐 아니라 부모들 대상으로
성교육 강의를 실시하고 있다.
부모 대상 강의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배웠던 것은,
성교육의 초점이 생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
일상 속에 공유하는 삶 자체에 있다는 점이다.

 

성은 아름답다고 하면서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말하지 않고,
일상 공유 방식에 대한 논의도 없었던 구시대적 성교육의 폐해도 알게 되었다.
섹스는 일상과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아내를 만족시키고 싶은 남편은
설거지부터 열심히 하라는 가르침이 인상적이었다.

 

그간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던 기존의 성교육이
그릇된 생각을 내면화하게끔 했다는 사실을 알아갈수록
이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흔한 성교육 캠페인으로
‘안돼요, 싫어요, 내 몸은 내가 지켜요’라는 구호는,
내 몸을 내가 지키지 못했을 때
피해자의 잘못으로 인지하게 하는 가혹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남자의 성욕은 참을 수 없는 거라는 인식 또한
아들들을 얼마나 망쳐왔는가.
여자를 사회적 약자로 만드는 성차별의 과정은
한편으로 남자 또한 정서적 약자로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스스로 욕망도 절제 못한다고 믿으며 
미개한 존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아야 할 이성관계가 왜곡되어
진정한 사랑을 나누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는 것,
제대로 된 성교육이 없었기에 생긴 서글픈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다엘의 학교는 그런 점에서 성 평등 교육에 무척 공을 들이고 있다.
얼마 전엔 외부 강사가 와서 환경 호르몬에 관한 수업과 함께
천 생리대를 만드는 시간이 있었다.
5, 6학년 남녀 학생들이 한껏 진지한 모습으로
바느질에 열중하는 사진을 보니 감동이 밀려왔다.

 

천생리대1.jpg » 학교에서 다엘이 진지하게 천 생리대를 만들고 있다.

 

남자아이들은 엄마에게 선물할 거라며
사용방법을 따로 선생님께 묻고,
안과 겉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확인하면서
모두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성에 대한 존중이 몸에 배지 않겠는가.

 

성차별의 수많은 상황을 촘촘히 겪어온 나의 삶을 돌아보며
다음 세대는 그와 같은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다엘을 키우면서 내가 저질렀던 온갖 실수에도 불구하고
지금 와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건 
다엘의 몸에 밴 섬세한 배려심 때문이다.

 

건물의 문을 밀고 들어갈 때 뒷사람 살피기,
작은 일에도 고맙다는 표현 하기,
길 가다 쓰러진 입간판을 보면 세워놓기 등,
사소한 행동들이 사람의 품위를 말해 준다고 믿었다.
흔히 ‘여성적’이라고 표현되는 이런 섬세함을 다엘이 갖게 된 것은
양성적 인간을 지향하는 나의 육아목표가 다소 이뤄진 게 아닐지.

 

그건 그렇고
다엘, 엄마는 섭섭해 하지 않을 테니
네가 만든 천 생리대는
여자친구가 생길 때까지 잘 보관해 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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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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