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이의 그림.jpg

                                                               ( 윤정이가 그린 '엄마')

 

10월 14일, 다음주 일요일이 내 생일이다.


세 아이들은 한참 전 부터내 생일만 목을 빼고 기다려 오고 있는 중이다.
봄과 초여름에 걸쳐 집안 식구 대부분의 생일이 있는지라 케익 맛을 본지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엄마의 생일이 중요한게 아니라 맛있는 음식과 케익이 있는 '파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파티'를 준비하는 것은 내 몫이다.
 
아직 며칠 남아 있지만 오늘 둘째 윤정이에게 또 생일 선물을 받았다.
사실이미 한 달 전부터 아이들에게 줄기차게 생일선물을 받아 오고 있다.
달력에 오래전부터 붉은 글씨로 표시해 놓은 생일 덕에 아이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무언가를 만들어서는
'엄마, 생일 선물이예요'하며 내밀곤 한다.

학교에 다니는 필규는 '엄마, 기대하세요' 하며 냄새만 피우는 게 고작이지만
늘 나와 함께 있는 윤정이와 이룸이는 수없이 선물을 내민다. 주로 그림이다.
이룸이는 언니가 그리고 만드는 것을 흉내내서 '떤물(선물)이예요'하고 건네는게 고작이지만
윤정이는 아주 근사하고 멋진 그림들을 내게 내밀곤 한다.

 

어려서부터 윤정이는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다.
셋째도 딸을 낳고 그 딸이 윤정이 언저리를 지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윤정이 쪽이 그림에 더 관심도 있고
재능도 있다는 것을 알겠다. 이룸이도 그림을 좋아하지만 아주 어렸을때부터 그림의 내용이 분명했던
언니에 비해 30개월이 넘은 지금도 이룸이 그림의 수준은 낙서를 못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섯살이 되면서부터 윤정이 그림의 주제는 단연코 '엄마'다.
아빠도 그리고 오빠도 그리고 이룸이도 그리고 때로는 온 가족이 다 있는 그림도 그리지만 제일 열심히
제일 정성 들여 제일 많이 그리는 그림은 내 그림이다.
그것도 어찌나 이쁘게 그려오는지, 정말이지 딸 키우는 행복이 이런거구나.. 싶다.

 

한 존재에게 이렇게 절대적인 숭배와 애정을 받을 수 있는 시기란 아이들이 어릴때뿐이 아닐까.
필규만해도 나에 대한 애정보다 '레고'에 대한 애정이 더 큰게 아닌가 의심이 가는데, 윤정이의 애정은
정말로 뜨겁고 열렬하고 한결같아 내 마음을 벅차게 한다.

윤정이가 그리는 엄마는 참 이쁘다.
무엇보다 키가 늘씬하고 머리고 길고 눈도 반짝 반짝거린다.
게다가 늘 웃는 표정이다.
실제의 나는 잔소리 대마왕인데다 버럭버럭 대장인데도 그림속의 엄마는 한결같이 이쁘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아마 고운 윤정이의 마음에 새겨진 내 느낌이 그런 것일까... 고맙고 뿌듯하다.

윤정이의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윤정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늘 웃고 있는 윤정이처럼, 윤정이의 그림속의 사람들도 언제나 웃고 있다.
사람이 종이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고 그 곁에는 예쁜 꽃들이 함께 그려져 있다.
햇님도 있고, 초록 풀밭도 있다. 그림에는 꼭 제 이름을 큼직하고 이쁘게 장식해서 써 넣곤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 안정감, 그리고 그 마음 가득한 따스함이 느껴진다.

와락 와락 화내고 툭 하면 부려먹는 열살 짜리 오빠와 무조건 떼쓰고 고집 부리기 일쑤인 세 살 동생
사이에서 어쩌면 제일 맘 상하고 속상한 일이 많은 윤정인데
나이답지 않게 오빠와 동생을 잘 다루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채우는게 윤정이의 재주다.
타고 난 사랑이 많은 아이다.

그런 아이의 절대적인 애정이 지금은 온통 나를 향해 기울어져 있다.
윤정이의 그림 선물을 볼 때마다 윤정이의 이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필규도 어린 시절엔 내가 제일 예쁘다고 했었지.
지금은 그런 말을 쑥쓰러워서 못하지만 어린 날엔 엄마가 제일 예쁘고 좋은 시절이 있다.
윤정이는 지금 그 시절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제 마음을 다해 뜨겁고 이쁜
애정을 내게 알뜰하게 기울이고 있다. 이룸이도 언니가 하는대로 흉내내느라 저를 통째로 내게
안기며 매달리곤 한다.

 

엄마라서 이런 행복한 시절을 맞는구나.
언제까지나 이어지는 행복은 아니지만 꿀같이 달콤하고 짜릿하다.
그래서 나는 늘 감동하며 진심으로 행복하게 딸이 건네주는 선물을 받고 있다.

벌써  열 다섯 번째 생일 선물이다.
윤정이는 내일 또 선물을 해 주겠단다.

내 생일이라고 해도 내가 음식하고 내가 상 차려야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알뜰 살뜰하게 엄마인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아이들이 있으니
이미 나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선물을 다 받은 셈이다.

고맙다. 고맙다.

너희보다 더 근사한 선물은 다시 없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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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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