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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비는 러시아워. 매일 아침 경기도 변두리에서 한시간 여를 달려 서울 시내 모처에 아침 9시쯤 도착해 컴퓨터를 켠다. 출근하는 사이 온 문자들을 확인하기 위해 가방을 여니 초록색 거북이 인형이 나를 보며 방긋 웃고 있다.  때로는 먹다 남은 끈적한 젤리 포장지가 들어있기도 하다. 얼마 전부터 엄마 핸드백과 지갑에 강한 집착을 보여주면서 하루종일 가방과 지갑을 뒤지고 물건을 뺐다 넣었다 하는 아이 소행이다. 



9시 30분. 헐레벌떡 회사에 보고를 마치고 눈꼽만 뗀 수준의 얼굴에 자외선 차단제라도 바르기 위해 파우치를 들고 화장실로 간다. (흔들거리는 ‘ㄴ’자 자판을 꾹 눌러 찍느라 보고 시간이 3분은 더 걸리는 것 같다. 그래도 아예 사라진 건 화살표 자판뿐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로션만 바른 얼굴에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기분이 나면 비비크림이나 파우데이션도 챙겨바른다.  그리고는 립스틱 뚜껑을 여는 ‘순간!’(개콘의 비너스 클럽 회장 김영희 톤으로)  반토막이 됐어요~. 뭐가? 립스틱이. 



첫 직장을 다니면서 1, 2년동안 립스틱을 사들인 후 하도 줄지를 않아서 십여년 동안 사지 않던 립스틱을 두달 전에 큰 맘 먹고 백화점에 가서 하나 샀는데 지금 5분의 1만 남았다. 아이가 두세 차례 손가락으로 후벼파고 나니 그렇게 됐다. 집중적으로 후벼 판 가운데 옆에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가장자리 부분을 살살 눌러가면서 정성스레 입술에 바른다.



그렇게 나름 꾸미고 거울을 보니 왼쪽 어깨 부분에 ‘돌잡이 엄마 인증마크’가 있다. 안고 있을 때 아이가 입으로 비벼서 낸 흔적이다. 오늘은 그 색깔이 노리끼리한 걸 보면서 어제 아이가 단호박을 먹었더랬지, 떠올린다.  그리고 나서 옆구리와 허벅지 쪽에 붙어있는 굳은 밥풀을 몇 개 떼어낸다.  밥풀을 떼어내도 밥풀 뭉개진 자국은 허옇게 남지만 뭐, 쏘 쿨이다.



맞다.  오늘도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아이가 없었을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특히 처녀적에는 ‘사람들이 어제 집에 안 들어가고 딴 짓한 줄 알면 왠 망신이냐’는 ‘도둑이 제발 저리는’ 마인드로  없는 옷도 돌려막기식으로 매일 갈아입고 다니던 나였는데 요새는 일주일에 두세 번 갈아입을까 말까다.  정장을 주로 입는데, 다림질한 시간이 없어서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아이를 돌보다가 재우고 나면 ‘다림질 해야지’라고 굳게 먹었던 다짐을 까먹기 일쑤다. 나도 모르게 그제도 어제도 아이와 함께 잠들어버렸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큰 표시는 안 날 거야’라는 위안과 함께 점심 때도 취재원을 만나 밥 먹으면서 “하하호호~” 수다를 떨고 마감이 끝난 뒤에도 다른 업계 관계자와 차를 마시며 “하하호호~” 수다를 떨었다.  퇴근 길에는 근처 백화점에 들러 엄마가 수선해 오라는 옷도 맡겼다.  왼쪽 어깨의 얼룩은 자켓으로 가리고 뭐 립스틱도 발랐으니 백화점 직원도 나를 ‘애엄마’가 아닌 ‘커리어우먼’으로 봤을 것이다.



밤 9시경 다시 한시간 여를 달려 집에 도착했다. 아이가 다시 반갑게 나를 향해 비틀비틀 걸음마를 떼어 걸어온다. “우리 인이 오늘 잘 하루 재밌게 놀았어요?” 나는 허리를 굽혀 아이를 번쩍 안는다. 그때 아이를 봐주고 있는 큰 언니가 말한다.



“너 그 똥꼬에 뽀로로 스티커는 하루 종일 붙이고 다닌 거냐?”



직작맘의 풀착장,  엉덩이의 뽀로로 스티커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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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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