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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두 아이를 낳고 키웠으니까, 셋째는 쉽게 키울 수 있을 줄 알았다.
더구나 둘째가 딸인데 막내도 딸이어서 첫 딸 키우던 대로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셋째는 정말 우리 부부를 당혹하게 했다.
탄생부터 달랐다. 맑은 양수가 흘러나오는 것으로 세상에 나올 준비를 알렸던 오빠 언니와 달리
막내는 자궁경부가 터져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면서 탄생을 예고해 나를 긴장하게 했었다.
위의 두 아이들은 태어나서 일주일 정도 고생하면 수면패턴이 잡혔는데 막내는 꼬박 백일까지
낮밤이 바뀌어 죽을 고생을 했었다.

 

첫 딸은 두 돐 무렵부터 모든 말을 다 하고 어찌나 의젓한지, 내 상황과 입장을 설명하면
그 어린 아이가 신통하게 다 이해를 했었다. 데리고 다니면서 둘이 얘기를 하면 주변에선
작은 아이가 어쩌면 이렇게 말을 잘하고 똑똑하냐고 칭찬이 자자했었다. 그래서 막내도 두 돐만
지나면 내 인생이 펴질줄 알았다.
그런데.....

.

6월로 29개월이 된 세살 막내는 정말이지 오빠 언니와는 너무나 다르다.

두 아이 키우면서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모든 일들을 막내를 통해 겪고 있다고나 할까.
두 아이 키우면서 쌓았던 내공도 막내 앞에서는 도무지 맥을 못 춘다. 그만큼 예측하기 어렵고
통제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정말 어렵다.

 

어느날은 가위로 제 뒷머리를 한 뭉텅이나 잘라 놓아서 나를 기겁하게 하는가 하면 손에 연필만
들면 어느새 2층까지 오가며 온 구석에 그림을 그려 놓는다. 특히 몸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팔이고 다리고 발바닥을 가리지 않고 싸인펜이나 볼펜으로 죽죽 그리고 칠해 놓아 며칠씩 씻겨도
지워지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맨발로 마당 돌아다니다가 흙발로 집안에 들어와서 침대며 방석이며 발바닥 찍어 놓기가 예사고
물만 보면 엎지르거나 따라버리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잠시만 한눈 팔면 집안 한 구석이
물바다가 되어 있곤 한다.
정수기 꼭지를 열어 놓아서 하염없이 물이 부엌바닥으로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정신없이
닦고 있으면 목욕탕으로 들어가 세면대 물을 세게 틀어 놓고 철벅이는 식이다.
'물을 이렇게 틀어 놓으면 아까운 물이 계속 쏟아지니까 그렇게 하지말자' 라고 얘기를 해도
'네' 대답만 이쁘게 하고는 잠시 후면 또 같은 장면이 벌어지고 있다.


밥상에 앉아 밥을 먹을 때에도 물이 담긴 컵만 보면 슬그머니 쏟아버리곤 해서 매번 밥상이
물바다가 되는데 정말 미칠 노릇이다. 한바탕 야단치고 걸레를 가지러 간 사이에도 또 물을
엎지르는 그 대담함과 꾸준함엔 두손 두 발 다 들게 된다.

아무리 급하다고 바쁘다고 종종거려도 제가 하려고 했던 일은 다 끝내야 일어나고 외출할땐
맘에 드는 신발 서너 켤레를 들고 길을 나선다.
이불에도 방석에도 가구에도 낙서를 해대고 그릇을 모자처럼 머리에 얹고 다니다가 여러개
깨뜨리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 막내는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최 이룸!'하고 내가 꽥 소리를 지르면
생글생글 웃으며 '엄마, 메쁘게 말(예쁘게 말 하세요)'한다.
마치 자신은 너무나 이쁜 막내라서 어떤 일을 해도 사랑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뼛속까지 스며있는
아이같다.

 

언니그림에 낙서 해 놓고, 오빠가 애써 만든 장난감 망가뜨려놓아 큰 아이들이 소리치고 화 내면
제가 먼저 '엄마, 나도 똑땅해(속상해)'하면서 흑흑 훌쩍거리는 고단수를 쓴다.
툭하면 싱크대의 양념통들을 죄다 꺼내 놓고 다 열어서 쏟곤 하고, 빵이고 떡같은 것은 먹지도
않고 오직 밥만 찾는 통에 모처럼 온 가족이 간단하게 빵으로 아침을 대신 하는 주말에도
막내때문에 밥을 한번더 차리게 한다. 뭐든지 내 맘처럼 해주지 않는 딸이다.

그런데 막내에게는 이 모든  말썽을 녹이게 하는 기막힌 애교가 있다.
막내 유전자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오빠 언니에겐 볼 수 없었던 깜찍한 표정이나 말투를 어쩌면
그렇게 적절하게 구사하는지 머리뚜껑이 열릴 정도로 화가 나 있는 엄마 아빠를 한번에
무장해제 시키는 것이다.

 

낮선 사람에게도 생글거리며 다가가 인사하고, 집에 찾아온 손님이 오실때나 가실때나 제일
앞서 나가 인사하고 손 흔드는 것도 막내다. 남편이 퇴근해서 현관을 들어서면 오빠 언니보다
먼저 달려나가 그야말로 머리가 땅에 닿게 인사를 하며 아빠를 환영하는 막내다보니 남편도
막내 앞에서는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버린다.

감자밭에 돋아난 풀도 매줘야 하고 밀린 원고도 써야 하고 집안일도 산더미같은데 막내는
밭고랑까지 따라와 감자밭을 겅중거리며 뛰어 다니고, 일 할만하면 덥다고 집에 들어가자고
생난리를 쳐대니 밭에 풀이 수북해도 제대로 매주질 못하며 지낸다. 남편은 집에 있으면서
밭에 풀 하나 안 뽑는다고 화를 내지만 막내 데리고 밭일 할 수 있으면 당신이 한번 해보라고
큰 소리 치게 된다.


한여름같이 더운 요즘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정말 입이 떡 벌어지게 어지르며 놀고 다니는
막내를 보면 한숨이 나오지만 '엄마, 따랑해'하며 꼬옥 안아주는 막내 앞에서 나도 다시
흐믈흐믈 녹아 버린다.

두 돐 지나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이젠 세 돐만 지나면 조금 말이 통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살고 있다.


그래도 꽃처럼 이쁘게 피어나는 막내의 웃음이 이 늙은 엄마에겐 최고의 회춘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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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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