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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생겼을때  첫째 아이는 네살이었다.  출산예정일은 이듬해 3월이었으니까 첫아이가 다섯살때 네살 터울의 동생을 보게 되었다.



둘째 아이는 처음부터 집에서 낳을 것을 결심하고 가진 아이였다. 집에서 아이를 낳는 일은 처녀적부터 품었던 꿈이었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첫아이때문 이었다. 

보통 둘째 아이를 낳게 되면 엄마가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조리원이나 친정, 시댁같은 곳에 가서 조리를 하는 동안 첫 아이는 엄마와 떨어져 지내게 된다.  조산원에서 동생을 낳아도 마찬가지다. 첫 아이와는 같이 지낼 수 가 없다. 첫애는 태어나서 그때까지 나와 단 한시간도 떨어져 지내본 일이 없는 아이였다. 엄마에 대한 애착이 너무 커서 내내 내 옆에서 나를 안아야 잠이 들었다.  어린이집도 안 다닌 첫 아이는 나뫄 뭐든지 같이 했다.  아빠하고 둘이 외출하는 것도 싫어했다. 엄마랑 함께가 아니면 절대로 가지 않았다. 만 5년을 우린 그렇게 서로 끈끈하게 붙어 지냈다.   이런 아이를 동생을 낳기 위해 떨어뜨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만약 억지로 첫 아이를 떼어 놓는다면 첫 아이가 받을 충격과 상처는 극심할 것이었다.



첫 딸과 세살 터울로  동생을 본 동서는 두 아이를 같이 데리고 있기가 너무 힘들어서 첫 아이를 한달동안 강릉 시댁에 맡겼었다. 시댁이 멀어 첫 아이를 자주 볼 수 도 없었다고 했다. 한달만에 집에 온 첫 아이는 아기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똑똑하던 아이가 밥도 누워서 먹여 달라고 떼쓰고, 똥도 옷에 쌌다. 누워있는 동생 손을 밟고 지나가고, 동생이 배밀이를 하기 시작한 후에는 동생이 문에서 다 나오지도 않았는데 방문을 닫아 동생을 아프게 했다.  동생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아기처럼 퇴행하는 것이 너무 심했다. 야단치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도 사랑해주세요' 울었다고 했다. 어린 둘째보다 다 큰 첫애를 돌보느라 더 힘들었다는 얘기다. 두살 터울로 동생을 본 내 이웃은 첫 아이를  시댁에 맡겼다가 데려왔더니 아이가 말을 안 하더란다. 속상했나보다 싶었는데 상황은 심각해졌다. 아이가 입을 다물어 버린 것이다.  다시 입을 열었을때는 언어 장애가 와 있었다. 첫 아이의 말이 정상에 가깝게 돌아오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동서도, 그 이웃도 둘째 아이 낳을때 절대로 첫 아이를 억지로 떼어 놓지 말라고 조언을 했다.  힘들어도 차라리 두 아이를 같이 보는게 더 낫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쁘고 착하던 첫 아이가 동생을 보고 변했다는 얘기는 너무나 많이 듣고 있었다. 동생을 때리고, 심술 부리고, 떼쓰고 말썽부리게 너무 힘들어서 그럴줄 알았으면 둘째를 낳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 예전에야 대가족이 같이 살았으니까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꼭 엄마만이 아니었다. 엄마가 바쁘면 할머니나 큰 엄마가 보기도 했고 아이는 늘 사촌이나 친지들에게 둘러쌓여 있었다. 엄마가 둘째를 낳으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조부모나 가까운 친지의 손으로 옮겨졌다. 그래봐야 한 지붕 아래나 근처였으므로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다르다. 핵가족사회에다 대부분 아파트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생활을 하는 환경속에서 육아는 엄마에게 집중되기 마련이다. 아이와 엄마와의 관계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밀착되어 있다.  이렇게 온통 엄마를 독차지 하고 있던 아이에게 동생이 생기는 일은 어떤가.  엄마 뱃속에 동생이 생겼다는 것도 어린 아이들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는데, 어느날 엄마가 갑자기 안 보인다. 그리고 낮선 병원에서 엄마 옆에 누워있는 아기를 본다.   엄마의 몸이 회복될 동안 엄마를 자주 볼 수 도 없고, 떨어져 지내야 하는 일도 왕왕 생긴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엄마를 마음대로 볼 수 도 없고, 다른 곳에서 지내야 하고, 그렇게 지내다가 갑자기 집에 와서 동생을 대하게 되면 당연히 동생에 대해 좋은 감정이 들기 어렵다. 그동안 억울하게 엄마를 차지하지 못한 분한 마음은 동생에 대한 질투로, 심술로,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표현된다.  '폐위된 황제'가 된 첫 아이는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엄마에게는 힘겨운 날들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모든 상황이 첫 아이에게 너무나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어린 아이에게 갑자기 바뀐 상황을 순하게 받아들기를 바라는 것은 어른들의 욕심이다.  더구나 첫 아이 필규는 다른 아이보다 엄마에 대한 애착이 더 컸다. 첫 아이에게 동생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하고 싶었다.  그러기위해서 동생이 생기고, 엄마 몸 속에서 동생이 자라는 모든 과정을 함께 하는 것과 더불어 동생이 태어나는 순간도 같이 나누게 해야 했다.  동생이 생기는 모든 과정에 첫 아이가 배제되거나,  경험이 단절되는 일은 없게 하고 싶었다.



동생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첫 아이에게 이야기해주고 임신 반응 검사 스틱을 보여 주었다.  병원에 갈때도 같이 가서 진찰실에도 같이 들어갔다.  초음파 검사 할때도 진료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아이와 같이 있었다. 매달 동생이 어떻게 커가는지, 어떤 상태인지 보여주고 이야기해 주었다. 도서관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내용을 담은 책들을 빌려와 같이 읽었다. 집에 아기를 낳는 동영상도 같이 보았다. 둘째에게 '봄이'라는 태명을 붙여주고 매일 서로 '봄이'를 부르며 마치 세 사람이 함께 지내는 것 처럼 생활했다. 네살 아이는 이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였다.  비록 뱃속에 있는 동생이었지만 우리의 모든 일상속에서 '봄이'가 있었기에 첫 아이에게 동생은 자연스런 존재였다. 밥을 먹을때에도 '봄이야, 밥 먹자' 내 배에 대고 이야기하곤 했다. 산책을 나가도 '엄마, 봄이가 산책 나와서 좋대요' 했다. 모습만 안 보였지, 첫 아이는 임신 기간 내내 이렇게 동생과 같이 지냈다.  나와 남편도 늘 봄이가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뱃속의 아이에게 말을 걸며 생활했다.  첫 아이는 축제처럼 동생과 만날 날을 기다렸다.



2007년 3월 5일은 눈이 내렸다. 진통이 시작되고 조산사와 친정 엄마가 도착한 집에서 첫 아이는 신이 나서 뛰어 다녔다.  내가 아파하면 '엄마, 참으세요. 동생이 나오려고 아프대요' 했다. 아기가 나올때는 많이 아프다는 것을 자주 이야기했기에 첫 아이는 내 비명이나 신음소리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진통을 하는 내 옆에 같이 눕기도 하고,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기도 하고,  팔이나 손을 만져 주기도 하면서 내 곁을 지켜 주었다.  마침내 격렬한 진통끝에 아이의 머리가 나왔다.  '엄마, 동생 머리가 나왔어요. 다리께에서 지켜보던 첫 아이가 흥분한 목소리도 소리쳤다.  그 상태로 진통이 멎어다가 잠시 더 큰 진통이 찾아오고 아기는 내 몸을 쑤욱 빠져 나왔다.  태어난 아기가 내 가슴에 올려지자 첫 아이는 동생의 몸과 얼굴을 신기하게 바라 보았다.  조심스럽게 동생의 몸을 만져보기도 했다. 좋아했다. 신기하고 놀라워 했다.  내 가슴위에서 한참 누워있는 아기와 나 사이에 연결된 탯줄도 만져 보았다. 툭 툭 맥이 뛰고 있는 것도 같이 느껴 보았다. '엄마, 탯줄이 굵어요' 라고 신기해 했다. 탯줄에 맥박이 멎은 후에 남편과 첫 아이 필규가 같이 손을 잡고 가위로 탯줄을 잘랐다. 갓 태어난 동생을 처음으로 목욕시킬때도 첫 아이가 함께 했다.  동생이 태어나는 모든 과정을 함께 하고,  동생이 탄생하는 일에 제 힘도 보탰다는 것이 필규를 으쓱하게 했다.  목욕을 마친 둘째를 담요에 싸서 필규에게 안겨 주었을때, 필규는 설레고 흥분된 표정으로 동생을 받았다.  그리고 내내 동생 곁을 떠나지 않았다. 두 아이는 이렇게 만났다.



동생이 태어나기 위해 낮선 환경으로 바뀌지도 않았고, 엄마와 떨어질 일도 없었다. 늘 지내던 집에서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동생이 태어나는 것을 같이 보았고,  일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엄마의 몸 속에 있던 동생이 몸 밖으로 나온 것만 빼고 모든것이 똑같았다. 필규는 안정되고 즐겁게 동생을 맞았다. 그리고 동생의 모든 것에 열렬한 관심을 표현했다.  엄마 옆 자리를 동생에게 내어주었지만 동생이 젖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힘들어하지 않았다. 동생이 쓸 기저기와 수건도 개어주고, 동생 옆에서 딸랑이도 흔들어주며 제가 할 수 있는 일들로 나를 도와주었다.  필규는 자연스럽게 오빠의 역할들을 익혀가기 시작했다. 그 일을 격려해주고 칭찬해 주면서 필규를 지켜보았다.



동생이 보이는 모든 변화와 성장들을 필규는 함께 했다.  동생 윤정이가 처음 뒤집던 순간에도 배로 밀고, 첫 걸음을 떼던 순간도 같이 보았다. 모든 변화가 신기하고 생생했다. 동생의 첫 순간, 첫 날부터 같이 한 필규는 남들이 흔하게 겪는 질투와 퇴행없이 동생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새로 생긴 가족으로 환영해주었고, 오빠로서 제 역할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인간의 아기가 어떻게 커가는지, 어떻게 성장하는지 곁에서 지켜보면서 같이 놀라고, 같이 감탄하고, 행복해 했다.  셋째가 태어나기 까지, 두 아이는 주변에서 보두 부러워하는 우애좋은 오누이였다.



지금도 둘째 아이를 낳던 순간 내 손을 잡아주고, 동생이 나왔다고 내게 알려주던 흥분에 찬 필규의 음성을 또렷이 기억한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형제라고 믿었고, 그 형제를 선물하는 일이 첫 아이에게 상처와 충격, 분노와  억울한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랬던 우리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지금 여덟살이 된 필규는 네살인 윤정이와 자주 티격태격 하지만 또래의 다른 오누이들보다 여전히 따스하고 가까운 사이로 지내고 있다. 집에서 아이를 낳는 일은 엄마에게도 좋지만 무엇보다 첫 아이에게 부드럽고 상처없이 동생을 안겨주는 일이다.



부모로서 아이들끼리 우애좋게 크는 일은 정말 고맙고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산모의 몸에 가장 무리없이 자연스런 출산을 하고 더불어 우애있는 형제 자매를 만들 수 있는 가정 분만..



이만하면 정말 도전해볼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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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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