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8개월 된 여자 아이입니다.
수줍음이 너무 많고 낯도 많이 가리고 엄마와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는 엄마 껌딱지예요.
너무나 속상해서 글을 올립니다.
제가 뭔가 잘못하는가 싶기도 하구요.
태어날 때부터 무척 예민해서 키우기 참 어려웠습니다.
낯가림은 3주 만에 시작했고(엄마가 아닌 사람에게는 안기지 않음)
재우기도 힘들었고(작은 소리, 미동에도 깨버리고 깊이 자지도 않음)
낯선 곳에 가면 다른 애들은 잘 어울려 놀고 엄마하고 잘 떨어지는데
저희 애만 엄마한테 안겨서 외부환경에는 관심도 안보였구요.
시댁 식구들 모인 자리에만 가면 하도 울어서 저희 가족만 일찍 나온 적도 정말 많아요.
24개월 이전까지는 시어머니가 안아보신 적도 없습니다(애가 너무 울어서 안아보실 수도 없음)
지금은 친할머니를 정말 좋아하고 따르고 가서 먼저 안기고 하지만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14개월이 지나도록 기지도 않고 서지도 않고 하루 종일 앉아있기만 해서
(세우려고 해도 다리를 오무려서 서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장난감을 앞에 가져다 놔도 가지러 가지도 않고 팔을 뻗어 닿지 않는 거리에 있는 물건은 포기해버림)
너무나 걱정이 되서 대학병원에 가서 유전자 검사, 심리검사, 발달검사 다 해봤는데
이상은 없고 또래보다 언어발달이 유독 빠르고 예민하다는 진단만 받았습니다.
결국 만 16개월에 설 수 있게 됐고(그것도 스스로 한게 아님) 만 18개월에 걷게 됐어요.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점은 이제는 놀이터에 가서도 적극적으로 놀고
스스로 모험도 해보려고 하고 30개월 전에는 '못해, 무서워'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면
지금은 해보고자 하는 의욕도 조금 생겼습니다.
18개월 차이나는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남동생하고는 아주 잘놀고 동생도 예뻐하고
동생을 질투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오히려 동생을 감싸고 보호하는 편이구요.
제가 차근차근 설명하면 잘 알아듣고 말도 잘 듣는 편이고 크게 말썽을 일으키는 부분은 없어요.
아이가 이렇게 까다롭고 예민하고 낯가림이 심하다보니 어린이집은 상상도 할 수 없어서
1주일이 한번 짐보리에 저와 함께 가는데요.
수업시간의 절반인 30분 정도를 부모와 떨어져서 선생님과 보내는 시간이 있는데
저희 딸보다 어린 애들도 엄마랑 잘 떨어져서 선생님이 주시는 간식도 잘 먹고
다들 잘 노는데 저희 딸만 저랑 떨어지기 싫어서 울고 수업 시간에 안 들어가려고 합니다.
짐보리 가는걸 무척 좋아하는데 저랑 떨어질 시간이 되면 저한테 붙어서 떨어지질 않고
선생님이 주는 과자조차 안 받아 먹어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체조나 율동, 노래 같은것도 저희 딸만 참여를 안해요.
속이 타서 죽겠습니다.
친척 분 따님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1학년 내내 엄마가 교실 뒷편에 앉아있던 애가
있었다면서 혹시 저희 딸이 그런 애가 되지 않겠냐고 하시더군요.
제 마음에 비수를 꽂으시는거 같아서 제가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이대로라면 5살에 유치원은 갈 수도 없고 초등학교도 갈 수 있을지 걱정이예요.
혹시 제가 아이를 잘못키우고 있는 건가요.
제 자신도 내성적이고 사람 만나길 꺼려하는 성격이라 저한테 영향을 받은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걱정이네요.
제가 연년생을 혼자 키우느라 힘들어서 항상 집에서 아이들하고만 있거든요. 주변에 아는 엄마들도 없고 애들 친구들도 없구요.(사실 저는 아이 친구는 부모가 만들어주는게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거라는 생각이 있어서 친구 찾아주기는 하고 있지 않아요.)
남편은 소아정신과를 한번 가서 상담을 받아보자는데....
정말 속상합니다.
답변을 많이 기다리셨을텐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이가 기질적으로 많이 민감하고 불안수준이 높은 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아이는 낯선 상황은 물론 낯선 사람, 사소한 변화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지금 아이가 보이는 분리불안이나 자극에 대한 민감한 반응은 기질로 대체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기질적으로 민감한 아이들은 보통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아집니다. 지금 아이가 30개월 전에 비해 나아진 것이 아이도 이런 발달경로를 밟아간다는 근거로 보입니다. 따라서 지금보다는 6개월 후, 1년 후에 더 나아진다는 것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이 때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안정적으로 아이를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못하는 것에 대해 과도하게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억지로 밀어내면 아이는 세상에 대한 안정감을 키우는데 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지금 엄마와 떨어지는 걸 힘들어한다면 당분간은 그런 활동에 억지로 참여시키지 않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다 한다고 해서 반드시 아이도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특히 예체능 활동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많이 노출되고, 활동도 크기 때문에 아이 입장에서는 더 부담스럽게 여길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유념하실 점은 아이의 언어발달이 빠르다고 하셨는데 이런 아이에게 지나치게 세세한 설명이나 복잡한 논리를 말하는 것은 아이의 감정을 더 민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둘째가 있다고 하시니 집 앞 놀이터에 잠깐씩 나가서 아이가 원하는 놀이를 하게 해주는 정도로 활동하시면서 아이와 함께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위 상담은 조선미 아주대 교수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