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인간은 응시에 의해 조각된다

이승욱 2013. 0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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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14740_P_0.jpg »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시간에 얘기했던 수유의 중요성과 함께, 결정적으로 중요한 양육태도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응시입니다. 젖주기는 일년이면 충분하지만 응시는 사실 평생 주고 받는 행위입니다. 응시가 왜 가장 중요한 양육태도인지 설명하겠습니다.

 

나르시스를 아시죠? 신화에 나오는 자뻑 청년 말입니다. 얼마나 자뻑이었으면 호수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해서 밥도 안 먹고 쳐다보다가 그 청년을 향해 돌진해 들어가, 물에 빠져 죽었겠습니까. 그 자뻑 청년의 이름이 나르시스라서 정신병리학에서는 자기애가 아주 강해 병리적으로 까지 발전한 사람 유형을 나르시즘이라 분류하고 심한 경우 성격장애로 진단하기도 합니다.

 

아주 옛날에 만들어진 얘기니까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것 같죠?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현대의 나르시스들도 아주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많습니다. 그런 나르시스들은 주로 셀카를 많이 찍습니다. 가장 멋진 모습, 가장 예쁜 각도의 얼굴을 하고 사진을 찍거나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합니다. 또는 거울 앞에서 떠날 줄을 모릅니다. 백설공주의 계모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거울을 통해 보는 사람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백설공주 계모의 거울에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은 백설공주라고 말하는 것은 마법사가 아니라 바로 계모 자신의 열등감과 욕망이죠. 자신의 자신에 대한 응시, 사실 이것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것이기도 합니다. 거울이나 자기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 보는 행위는 거울과 사진의 내가 나를 보고 있기도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렇게 대부분 자기애적 성향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바로 타자의 응시를 통해서 나라는 존재가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태어나자 마자,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생겼다는 것을 알았나요? 심지어 라는 존재 개념이 있었을까요?

아무것도 정리 정돈이 되지 않은, 아무런 개념이 없는 혼돈상태에서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응시되었는가는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지각하게 하는 정말 결정적인 경험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만약 아들만 득시글 거리는 집에 귀한 딸이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버지 형제들도 큰어머니 작은어머니도 모두 이 딸을 반갑고 귀히 여길 가능성이 많습니다. 따뜻하고 반가운 응시를 하겠죠. 그러면 그 아이는 자신이 환영 받고 따뜻하며 반가운 존재라고 인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인식은 정말 무의식적이어서 인식과 논리의 계통을 밟지 않고 감각과 무의식의 통로를 통해 몸에 퍼져 버립니다.

반대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아들만 다섯인 집에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고 칩시다. 위로 줄줄이 세 명이나 형들이 있는데 넷째 아들이 뭐 그리 특별하지는 않겠죠. 게다가 밑에 또 남자 동생도 있구요. 미움을 받지는 않는다 해도 주목을 끌지는 못할 겁니다. 딸 많은 집도 마찬가지 일 가능성이 많죠.

 

따뜻한 응시, 기쁜 응시, 미운 응시, 차가운 응시, 무 응시 등등, 우리가 사람을 쳐다 보는 눈빛은 다양합니다. 부모로서 아이들을 쳐다 보는 눈길이 항상 따뜻하고 기쁘기만 할까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부모님들께서 더 잘 아실 겁니다.

 

우리는 주로 타인에게서 받았던 응시에 익숙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받고 싶었던 눈길로 누군가가 나를 응시해 주기 원합니다. 자신이 주로 어떤 응시를 받았는지 알고 싶으세요? 아이들에게 어떤 눈길을 주로 보내는지 잘 보세요. 그 눈길이 바로 여러분의 부모님들이나 주변의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주었던 눈길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감정은 재생-반복-전수 되니까요.

 

만약 그것이 악순환이라면 고리를 끊어야 하겠죠. 선순환의 첫 걸음은 자각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지난 하루 동안 내가 아이들을 쳐다 보았던 눈길들을 기억해내 보세요. 얼마나 자주 따뜻하게, 얼마나 여러 번 짜증스럽게 쳐다 보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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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욱
영남대 심리학과 겸임교수. 대학생 딸과 고등학생 아들을 둔 아버지. 뉴질랜드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했고 10년간 현지에서 정신분석가로 일했다. 서울에서 클리닉 운영, 팟캐스트 <이승욱의 공공상담소>를 진행. 저서로는 <사랑에 서툰 아빠들에게>, <상처 떠나보내기>, <대한민국 부모(공저)>, <천 일의 눈맞춤> 등이 있다. 현장 경험 끝에 내린 결론은 ‘인생의 초기 경험이 나머지 생을 온전히 움직인다’이다. 발달심리학은 부모가 지혜롭게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기에 가장 중요한 배움이라 확신하고 있다.
이메일 : imokut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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