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3살 아이 사회성 놀이, 엄마가 걸림돌?

이승욱 2015. 04. 22
조회수 10679 추천수 0

지난 호(폭력성의 갈림길은 2~4살, 놀이가 열쇠)에 이어 계속 놀이에 대한 이야기다.


놀이는 가능한 도구를 최소화하고 몸을 사용하는 양이 많을 수록 좋다. 지금은 거의 아무도 하지 않는 전통적인 놀이들의 대부분은 이런 원칙에 아주 충실하다. 게다가 전통놀이를 살펴보면 아이들의 사회화에 필요한 아주 중요한 지혜들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어린시절, 아이들 서넛만 모여도 가장 만만하게 하던 놀이는 숨바꼭질이다. 술래가 된 아이는 숨은 아이들 중 최소 한 명 이상을 찾아내야 다음 판에서 술래를 면한다. 술래가 아닌 아이들은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숨길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몸을 감춘다. 없을 만한 곳에 숨기도 하지만, 있을 만한 곳이라 술래가 그냥 지나칠 것을 예상하여 오히려 그곳에 몸을 감추기도 한다. 술래는 숨은 아이를 찾더라도 자기보다 달리기가 빠른 아이가 있을 것을 예상해서 동선을 미리 구상하고 숨은 아이를 찾아낸다. 무엇보다 술래가 된 아이는 외로움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숨는 아이들이 여기 저기 작당을 해서 몸을 숨기는 동안 술래는 이 문제를 오롯이 혼자서 풀어내야 한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외로움에 대한 면역력을 기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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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가이상 놀이)


전통놀이 중에 필자가 가장 압권으로 생각하는 놀이는 서울지역에서는 ‘오징어 가이상’이라고 부르는 놀이다(영남지역에서는 ‘오징어 가생’이라고 한다.). 이 놀이 역시 아무런 도구가 필요 없다. 굳이 필요하다면 바닥에 금을 그을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하다. 이 놀이의 가장 큰 미덕은 ‘협동’이다. 집을 차지하거나 방어할 전략을 짜고 각자에게 맞는 역할을 부여하면, 틈을 노리고 여세를 몰아 협동공격과 협동방어로 승리를 거머쥔다. 체격이 작고 몸이 약한 아이도 이 놀이에서는 제 몫이 있다. 흔히 주어지는 역할은 ‘논개’가 되어 상대편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아이와 함께 장렬히 동반 전사하는 것이다. 또래들 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아이도 제외되는 경우는 없다. ‘깍두기’라는 멋진 룰을 이용하여 한 명도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제 골목길이 사라져 버렸고, 더 이상 공터도 찾기 어렵게 되었다. 무엇보다 같이 놀 친구들은 사교육이 모두 데리고 가 버렸고, 놀이도 학습이나 치료의 일환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에게 놀이를 돌려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하고 안타까워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런 놀이가 아이들의 심리적 면역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놀이는 본격적으로 사회화 되는 단계에서 미리 경험하는 좌절이며, 그 좌절을 극복하는 과정이며, 사람들과 협동하는 기쁨을 알게 해주는 값진 체험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이 보다 더 귀한 심리적 면역체계를 가지게 해줄 활동도 찾기 어렵다.


다시 3~4세 무렵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놀이로 돌아 와 보자. 이 시기의 아이들은 또래들과 ‘같이’ 노는 것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다만 ‘옆에서’는 놀 수 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양보하고 규칙을 지키는 법을 익히게 해 주기 위해 ‘양보하기’ ‘나누어 하기’ ‘순서대로 갖기’ 등과 같은 행동을 강요하지만 아직 그런 개념이 없는 아이들에게 이런 요구는 그리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시기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놀이 파트너는 부모(또는 주 양육자)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의 놀이 파트너 역할은 아무리 많이 해 주어도 과함이 없다고 본다. 아버지의 남성적인 힘은 아이를 경이롭게 만들고, 아버지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 준다. 이런 경외심은 어머니의 품음과 따스함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와 아이를 성장시키고 점점 더 사회적 인격을 갖추어 나가는데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아버지들은 이제 막 자아(Ego)가 형성되고 성 정체성의 밑그림을 희미하게 그려 나가는 3세 전후의 아이들에게 경쟁적 놀이 상대가 되어 주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 한다. 이때의 놀이는 역시 가능한 도구를 최소화하고 몸으로 함께 노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둘만의 놀이를 만들어 내고 아이와 함께 규칙을 정하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놀이들이어도 아이들은 충분히 즐거워 한다. 부모와 아이와 함께 만든 놀이(위험하거나 해를 끼치는 것만 아니면 되겠다.)라면 어떤 놀이든 상관없다. 


그런데 요즘 엄마들의 태도를 보면 조금 우려되는 지점들이 있다. 아버지와 자녀가 같이 놀도록 장려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이와 놀 게임을 엄마가 지정해 주고, 노는 방법을 지시하고, 그 과정을 평가하고, 결국 아이와 놀아주던 아버지를 실패로 규정해 버리기도 한다.


<엄마의 역할 예시>

① 놀이 지정 : “여보, 민지는 물감놀이 좋아 한단 말야. 비행기 태우기 말고 물감놀이, 그거 해줘”

② 방법 지시 : “민지는 파란색 물감도 많이 쓰고, 당신이 들고 있는 그 큰 붓 그건 애를 줘”

③ 과정 평가 : “아이고 참, 그게 아니라니까. 애가 뭘 원하는지 그걸 보면 몰라?”

④ 실패 규정 : “어른이 돼 가지고 애 비위하나 못 맞추냐? 애가 좋아 하는 물감을 당신이 다 가져 가버리면 어떻게 해? 으이그, 애하고 놀아 주는 것 하나 제대로 못하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믿고...”


모든 사람들과 똑 같이 과정과 방식으로 노는 아이는 하나도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아이는 엄마와 놀이에서 만들어 내는 방식이 있듯이, 아버지와의 놀이에서 만들어 내는 또 다른 방식이 있다. 아이가 아버지와의 둘만의 독특한 놀이와 관계를 만들 수 있게 되어야 한다.


부녀, 부자 관계까지 지시, 감독, 평가하는 어머니, 혹시 당신은 아니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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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욱
영남대 심리학과 겸임교수. 대학생 딸과 고등학생 아들을 둔 아버지. 뉴질랜드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했고 10년간 현지에서 정신분석가로 일했다. 서울에서 클리닉 운영, 팟캐스트 <이승욱의 공공상담소>를 진행. 저서로는 <사랑에 서툰 아빠들에게>, <상처 떠나보내기>, <대한민국 부모(공저)>, <천 일의 눈맞춤> 등이 있다. 현장 경험 끝에 내린 결론은 ‘인생의 초기 경험이 나머지 생을 온전히 움직인다’이다. 발달심리학은 부모가 지혜롭게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기에 가장 중요한 배움이라 확신하고 있다.
이메일 : imokut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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