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말보다 감각, 아이는 안다

이승욱 2015. 0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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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훈_사랑이.JPG » 한겨레 자료 사진

 

요즘 예능 프로그램의 대세가 여행과 육아인 것 같다. 특히 아버지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좌충우돌하는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끄는 것 같은데, 내 눈에는 특히 사랑이라는 아이가 뜨인다. 무엇보다 표정이 살아 있다. 좀 무뚝뚝해 해 보이는 아버지에게서 저런 표정을 배울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랑이의 엄마는 보기 드물게 표정이 살아 있는 여성이었다. 돈 들여 성형해서 괴물이 되어버린 한국의 배우들에게서 표정연기를 찾아 보기 어렵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기형적으로 굳어 버리고 부푼 얼굴 근육은 일그러지기 일쑤다. 그런데 사랑이 엄마는 연예인이라는데도 얼굴 표정이 감정을 모두 소화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솔직하게, 그리고 한껏 표현하는 사람인 것 같다.


주변에 보면 쉽게 화내고 엄격한 표정을 짓는 엄마들이 너무 많다. 그에 반해 한껏 웃고 밝게 눈 맞추는 엄마들을 보기가 쉽지 않다.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는 말들을 하는데, 아이 잘 키우려고 힘들이다가 결국 아이를 잘못 키우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나는 인간의 감정은 바이러스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인식도 되기 전에 이미 반응이 올라온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이다. 상대가 나를 싫어 하는지도 모르는 채 내 안에서 어떤 거부감이 올라온다. 뇌과학의 발견에 의하면 인간은 0.3초 만에 좌뇌를 통해 상대의 감정 상태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와의 감정적 교류는 인식의 영역이 아니라 감각의 영역이다. “엄마는 화가 났어!”라는 말 보다, 화난 표정이 더 영향력이 있다는 말이고, 말하지 않아도 밝게 바라보는 눈길에 아이는 자기 안에 미소를 느낀다.


미국의 FBI에서 요원 훈련용으로 실시하는 이런 테스트가 있다고 한다. 스크린에 갖가지 감정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3초간 띄우고 스크린의 대상이 어떤 감정 상태인지 맞추는 것이다. 약 50여 명의 사람 얼굴을 보여주는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요원도 30점(한 명당 1점)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나는 영업사원, 교사, 경찰관 등을 데려와서 실시해도 점수는 비슷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테스트에서 경이로울 정도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이 있는데, 티베트의 선승들이라고 한다. 무려 40명을 넘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는 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은 명상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고, 그래서 자신의 감정 때문에 타인의 감정을 다르게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화가 난 상태의 사람이라면 타인의 감정 상태를 화가 난 상태로 읽기 십상이다. 우울한 사람이라면 타인의 감정을 읽는데 현저하게 둔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자신의 정신을 고요하게 유지하는 선승들은 자기 감정을 투사하지 않음으로 타인의 감정을 쉽게 감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원리를 아이들과 부모의 교류 세계로 적용해 보자. 아이들은 어른처럼 복잡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 감정을 투사할 정도로 감정 세계가 교묘하지 않다. 특히 3~4세 미만의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가,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짓는 표정을 여과 없이 그대로 느낀다. 그리고 느낀대로 표현해 내는 데도 역시 아이들은 자유롭다.


필연적으로 부모의 감정을 내면화하게 되는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감정들이 있다. 짐작하다시피 이런 것들이다. 불안한 부모, 죄책감을 가진 부모, 언제나 화가 날 준비가 된 부모, 불행한 부모, 지친 부모, 외로운 부모, 관심없는 부모, 오빠나 동생만 좋아 하는 부모...


이 중에서 자녀에게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감정 상태는 ‘불안’이라고 한다. 자녀의 심리적 안녕에 영향을 끼치는 부모의 양육 태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을 차지하는 것이 무엇인지 밝히는 여러 가지 연구들이 있다. 여러가지 정적 요인(긍정적인 요인)과 부적요인(부정적인 요인)을 매개로 다양한 연구들이 실시되었다. 그 중에서 부모의 불안은 자녀의 심리적 안녕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인간의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심리적 환경은 안정감이다. 때로는 부모가 화를 내거나, 때로는 부모가 슬퍼할 수도 있다. 그것이 항상적으로 지속된다면 몰라도, 일시적인 정서 경험이라면 오히려 아이의 감정적 다양성을 자극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불안한 부모는 아이의 안정감에 은밀하지만 깊게 영향을 끼친다. 불안은 모든 자극에 과도하게 그리고 불안정적으로 반응하게 만든다. 실제로 참 잘 컸다 싶을 정도로 건강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과 그 부모를 보면 연구 결과가 맞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불안한 부모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불안한지 아닌지 조차 감각하지 못하는 부모다. 자신의 감정을 감각하지 못하는 부모가 더 문제라는 말이다. 자신을 감각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이 상태를 정확하게 감각할 수 있겠는가? 3~4살 미만의 아이들은 논리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감각으로 키운다. 감각이 살아 있는 부모가 그런 아이를 만든다. 아이를 키우며 자신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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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욱
영남대 심리학과 겸임교수. 대학생 딸과 고등학생 아들을 둔 아버지. 뉴질랜드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했고 10년간 현지에서 정신분석가로 일했다. 서울에서 클리닉 운영, 팟캐스트 <이승욱의 공공상담소>를 진행. 저서로는 <사랑에 서툰 아빠들에게>, <상처 떠나보내기>, <대한민국 부모(공저)>, <천 일의 눈맞춤> 등이 있다. 현장 경험 끝에 내린 결론은 ‘인생의 초기 경험이 나머지 생을 온전히 움직인다’이다. 발달심리학은 부모가 지혜롭게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기에 가장 중요한 배움이라 확신하고 있다.
이메일 : imokut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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