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아기가 처음 하는 말 ‘엄마’는 바로 ‘존재의 집’

이승욱 2013.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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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응시에 의해 조각된다 III

20130925_1.jpg » 한겨레 자료 사진.

사실 이 설명은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대목입니다. 라캉의 거울단계(mirror stage)니, 프로이트의 포르트-다(fort-da, 한국의 엄마들이 아이와 하는 까꿍놀이와 비슷한, 실뭉치를 던지며 노는 놀이의 일종), 마거릿 말러의 자폐기, 공생기 등과 같은 복잡하고도 어려운 이론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저는 그 이론들을 가능한 현실 상황에 맞게 설명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어렵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정에 관한 한 대단히 중요한 기제이니 조금만 더 참고 들어봐주시기 바랍니다. 

빠르면 8개월, 보통은 10~12개월 정도에 아이들은 ‘엄마’라는 최초의 단어를 사용하게 됩니다. 최초의 단어가 바로 최초의 인간을 지칭한다니 참 재미있습니다. 하이데거라는 아주 유명한 철학자가 있죠. 그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저는 하이데거를 전공으로 철학 공부를 했기에 이분의 사상과 언어를 많이 신뢰하는 편인데요,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면 아이가 쓴 최초의 언어인 ‘엄마’는 바로 아이의 존재의 집인 셈이죠. 그 말은 아이는 아직 자기 자신만의 존재를 담을 언어, 즉 집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엄마’라는 집(타인)을 통해서만 자신을 획득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는 걸 보세요. 젖을 떼고, 서서 걷기 시작하고, 이런 저런 물건을 자기 마음대로 가지고 올 수 있게 되는 두세 살 무렵이 되면 많이 쓰는 단어가 바뀝니다. “내 거야”, “내가 할 거야”, “나야 나” 등과 같이 일인칭 용어를 많이 씁니다. 

자, 정리해볼까요. 우리가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는 일인칭(나)이 아니라 이인칭(엄마)이 먼저 형성됩니다. 즉 이인칭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자아를 쌓아가는 순서의 기층부에 자아(나)가 있고 2층에 엄마가 있는 게 아니라, 기층에 엄마(타자)가 먼저 있고 2층에 자아가 생기는 겁니다. 아주 심각한 문제 아닙니까?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타자의 확인을 필요로 하는 메커니즘이 우리 내부에 처음부터 만들어졌다는 의미니까요.

이 과정에서 부모님(어머니)이 긍정적인 인정과 자극을 충분히 제공했다면 아이의 자아는 건강하게 형성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자신이 충분하고도 건강한 ‘존재’임을 인정받았다면 아이는 성장하면서, 또 어른이 되어서도 타인의 인정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시기에 아이와 엄마의 가장 중요한 대화는 ‘쳐다봄’입니다. 말로 전달될 수 있는 의사가 별로 없기 때문이죠. 아울러 엄마가 아이의 몸을 어떻게 다루었는가도 중요합니다. 기저귀를 갈아줄 때, 울 때, 젖을 먹일 때, 엄마가 아이의 몸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는 훗날 아이의 자기 신체 이미지와 자기존중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아이를 쳐다보는 엄마의 눈길입니다. 엄마의 진정한 애정을 담아서 다정하고 따뜻하게 아이를 쳐다보는 시간이 많을수록 아이의 자기인정감은 건강하고 튼튼하게 형성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심지어 이렇게 얘기합니다. ‘존재는 응시에 의해서 조각된다’고요. 엄마가 자신의 신체언어로 아이를 어떻게 대우했는가는 사실 성인이 된 아이도, 심지어 아이를 기른 어머니 자신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지 못한다고 경험이 어디 가나요. 그 경험은 아이의 몸에 저장됩니다. 이 시기의 피양육 경험은 인간의 남은 생애를 걸쳐 몸 속 깊은 곳에서 무의식적으로 계속 작용하게 됩니다. 

주변사람들이 자신을 주로 어떤 시선으로 쳐다보는지 한번 눈여겨보세요. 사실 가족 간에도 상대를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눈길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부모-자녀 간에도 말입니다. 부부, 연인간은 또 어떤가요? 당신은 소중한 이들과 평생 ‘인정의 기억’으로 각인될 눈길을 주고받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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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욱
영남대 심리학과 겸임교수. 대학생 딸과 고등학생 아들을 둔 아버지. 뉴질랜드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했고 10년간 현지에서 정신분석가로 일했다. 서울에서 클리닉 운영, 팟캐스트 <이승욱의 공공상담소>를 진행. 저서로는 <사랑에 서툰 아빠들에게>, <상처 떠나보내기>, <대한민국 부모(공저)>, <천 일의 눈맞춤> 등이 있다. 현장 경험 끝에 내린 결론은 ‘인생의 초기 경험이 나머지 생을 온전히 움직인다’이다. 발달심리학은 부모가 지혜롭게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기에 가장 중요한 배움이라 확신하고 있다.
이메일 : imokut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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