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아이들 싸움에 대처하는 부모의 자세

하태욱·차상진 2015. 0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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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다툼_일러스트.JPG » 한겨레 자료


 “언니,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 오늘 미나 담임선생님한테 전화가 왔었어. 어제 성재란 아이 엄마가 쪽지 하나를 가지고 선생님을 찾아왔대. 쪽지를 보니 “성재야, 난 네가 너무너무 싫어. 이 쪽지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마.” 이렇게 적혀있더래. 아이 가방에서 그걸 발견한 성재 엄마가 너무 당황스러웠다며, 혹시 우리 성재 왕따 당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걱정을 늘어놓고 가셨대. 선생님은 일단 이걸 누가 썼는지 알아야겠기에 아이들에게 그 쪽지를 보여주고 누구 글씨체인지 알려달라고 했대. 몇 명의 아이들로 가능성이 좁혀졌고 결국 그게 우리 미나가 쓴 거라는 걸 알아내셨다는 거야. 미나를 불러서 성재에게 사과하라고 하고 마무리는 하셨다는데...날더러 성재 엄마한테 전화를 해보겠냐고 물으시더라구. 나 어떻게 해야 해?”


전공과 직업이 이렇다보니 위와 같은 상담 요청이 꽤 자주 들어오는 편입니다. 더구나 최근 한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폭행사고 이후 부쩍 예민해진 부모들은 집에 돌아와 무심히 던지는 아이의 한마디에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교사이자 부모이면서, 교사교육과 부모교육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저는 이럴 때마다 중재자의 마음이 됩니다. (답답한 정부정책에 대한 논의는 잠시 내려놓고) CCTV라도 달아놓아야 마음이 놓이겠다는 부모와, CCTV로 감시받으며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 현실이 서글픈 교사가 서로 소통하지 않으면 우리 현실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심란해진 미나엄마는 일단 미나와 이번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건 뒤엔 이런 사연이 숨어있었답니다. 자유활동시간에 쌓기영역으로 간 미나는 성재가 가지고 노는 블록을 가지고 놀고 싶었습니다. “같이 놀자”고 여러 번 말했지만 성재는 블록을 만지지도 못하게 했답니다. 덩치도 크고 평소 친구들 사이에 리더십도 강한 성재를 당해낼 수 없었던 미나는 너무너무 화가 났던 겁니다. 그래서 쪽지를 써서 성재 가방에 넣는 걸로 자기 마음을 전달한 것이지요. 선생님이 성재에게 사과하라고 했을 때도 미나는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답니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미안하다’고 말하고 상황을 정리해야만 했다지요. “우리 미나 참 속상했겠다.”는 엄마 말에 미나는 목 놓아 울더랍니다. 서럽게 우는 미나를 품에 안으며 미나엄마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친구에게 안 좋은 말을 글로 써서 남긴 미나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담임선생님께 서운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죠. “평소 미나가 그런 아이가 아닌데요...저도 이상해요.”라고 하면서도 미나 입장을 헤아리기 보다는 일방적인 사과요구로 사건을 마무리한 점, 아이들을 동원해서 글씨체 주인을 찾은 점, 성재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던 점, 그리고 성재엄마에게 전화를 해보겠냐는 제안도 영 내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문제가 혹여 어른들의 문제로까지 번지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있자니 미나의 행동만 잘못으로 남는 꼴이 될 것 같고, 아이 입장을 변호하고 나서자니 내 아이만 귀히 여기는 옹졸한 부모가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복잡합니다. 담임선생님께 자기 생각을 어떻게 전달해야할지 고민스럽다는 미나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우리 부모들이 교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까 고민하는 것처럼, 교사들도 부모에게 선뜻 풀어놓기 조심스러운 문제들이 있답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이기에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 사이에 다툼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와 교사, 부모와 교사 사이에도 오해나 갈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해나갈까 함께 고민하는 교사 워크숍의 내용을 우리 부모들과도 함께 나누면 어떨까 한 거지요.

 

부모들은 내 아이의 하루가 어땠는지 참 많이 궁금해 합니다. 어느 부모나 내 아이가 ‘좋은 하루’를 보냈길 바라지요. 그런데 유아교사의 입장에서는 좋은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친구와의 다툼,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도전...당장은 그다지 ‘좋았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경험들을 통해 아이가 세상을 좀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면 ‘좋은 날’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친구와의 갈등 속에서 내 감정을 표현하고 다른 친구의 입장을 이해하며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나가기도 하고, 오만상을 쓰고 김치 한 조각을 씹어 삼키며 새로운 맛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 아이의 생활도 즐거운 일, 행복한 일만으로 채워질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미나 엄마의 경우처럼 무언가 ‘문제’가 느껴지고 소통이 필요하다 여겨진다면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소통에도 기술이 필요하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자세입니다. 교사나 부모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자세로 관계지향적인 태도를 가집니다. 소통의 목적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내기 위한 것이며, 상대는 내 아이의 선생님/부모(으)로서 깍듯한 예의를 갖추어야 할 교육 파트너임을 기억합니다. 상대에게 불만이나 분노가 느껴지더라도 절대 흥분을 가라앉히고 최대한 이성적인 상태에서 대화에 임합니다. 지나치게 공격적(방어적)이거나 위협적이지는 않은지 점검해야합니다.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고 여겨진다면 다음 세 가지에 집중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 생각과 느낌을 객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모두의 입장이 존중된 긍정적인 해결책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나와 내 아이가 얻을 것은 무엇인가에 관해서 입니다. 교사/부모와의 소통은 속풀이를 위한 자리는 아닙니다. 속풀이는 가까운 친구나 가족과 하는 편이 낫습니다.

 

내 입장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려면 중립적인 정보를 수집해서 나눠야합니다. 문제와 관련된 아이의 말과 행동이 담긴 일화를 공유하면서 부모/교사의 생각과 느낌을 더하는 것은 좋은 방법입니다. 이때 관련 교사/부모나 아이를 향한 비난은 절대 삼가야 합니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지요. 미나엄마의 경우에는 미나에게서 전해들은 자유활동시간에 쌓기영역에서 있었던 일과 쪽지를 써넣었던 미나의 마음 등을 전할 수 있겠지요.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억지로 미안하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미나의 말과 엄마 품에서 목 놓아 울던 미나의 행동은 교사가 미나의 입장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일화가 될 겁니다. 성재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단 말도, 당신 아이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말도 건네기 불편한 미나엄마의 입장도 조심스레 얹어놓을 수 있겠지요. 문제의 해결은 누구 하나의 일방적인 결정이 아닌 함께 만들어 가야하는 일입니다. 신뢰 관계를 만든다는 것은 인내와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문제가 ‘문제’로, 사건이 ‘사건’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 일을 통해 얻을 것들을 살뜰히 챙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미나는 이번 일로 말과는 다르게 눈에 보이는 흔적을 남기는 글의 위력을 배울 수 있을 겁니다. 미나엄마와 교사는 성숙한 소통방법을 연습하며 교육 동지로서의 신뢰 관계를 조금 더 곤고히 할 수 있겠지요.

 

어린이집(유치원)에 대한 아이의 말 한마디에 우리 부모들이 더욱 예민해지는 것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아이를 기관에 맡겨야 하는 엄마(아빠)의 미안함이 더해졌기 때문일 겁니다.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하는 부모로서의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진짜 어른은 아무 문제없는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지혜롭고 현명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어른의 뒷모습이란 우리 부모/교사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 그 자체일 테니까요.

 

차상진(sangjin.cha@gmail.com)


참고문헌

 

-Betsy Evans (2012). Did my child have a good day? Extensions, November 2012 Vol.26, No.5. HighScope educational research foundation.

-Betsy Evan(2009). You’re not my friend anymore! : Illustration answers to questions about young children’s challenging behaviors. HighScope Press.

-Betsy Evans (2002). You can’t come to my birthday party! : Conflict resolution with young children. HighScope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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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욱·차상진
우리 시대 교육의 대안을 찾는 교육학자이자 학부모이며 교사이자 실천가. 하태욱은 교육사회학·교육정책·대안교육을, 차상진은 유아교육을 각각 전공했지만, 삶과 밀착된 교육, 아동중심적 교육관의 측면에선 같은 교육관을 갖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하태욱은 대학 강의와 더불어 대안교육연대와 대안교육학부모연대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교육적 대안 마련을 위해 뛰어다니고, 차상진은 아동의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배움을 강조하는 유아교육 프로그램 ‘하이스코프(www.highscope.org)’의 교사·학부모 교육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메일 : uktaeha@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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