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아이들의 쓰기 발달 과정

하태욱·차상진 2013.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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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8_나쁜엄마아빠.jpg » ‘나쁜 엄마’에게 주는 편지(왼쪽), ‘나쁜 아빠’에게 주는 편지(오른쪽).


제 아이가 만 4살쯤 되었을 무렵일 겁니다. 하루는 꾸중을 듣고 제 방으로 들어가서는 한참을 있다가 종이 한 장을 들고 나왔습니다. “나쁜 엄마한테 주는 편지야.”라는 말과 함께 건네준 종이에는 도통 알 수 없는 암호(?)가 적혀있었습니다. 며칠 뒤, 이번에는 아빠와 사소한 갈등이 있었는데 또 제방으로 들어가서는 나쁜 아빠한테 주는 편지야.”라며 종이 한 장을 전해주더군요. 나중에 두 장의 편지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니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무언가 공통점이 있어 보였습니다. 이 두 장의 편지는 아이의 소소한 추억들을 모아놓은 상자 속에 (아직까지도 생생한 기억과 함께) 소중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생활해 보면 이러한 아이들의 손글씨를 자주 대하게 됩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라며 자기 명함을 만들어 건네주기도 하고, 새로운 주사위 게임을 개발했다며 게임 방법을 적어 놓기도 합니다. 놀이 시간에 아이와 함께 그린 꽃과 공주 그림 위에 자기가 만든 이야기를 적어 한 장짜리 동화를 써내기도 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러한 손글을 말이 안 된다는 이유로 가볍게 봐 넘기곤 하지요. 어떤 어른은 이게 뭐야. 글은 다른 사람도 알아볼 수 있도록 쓰는 거야.”라며 훈계를 하기도 합니다.


20131108_예원명함copy.jpg » ‘내가 도와줄 일 있으면 전화하세요.’라며 예원이가 내민 명함.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의 언어발달은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순서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글을 읽을 수 있고, 자음 모음의 체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기 전까지 쓰기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위에서 보여드린 몇 가지 사례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글을 깨치기 전에도 아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써내고있습니다.

 

아동발달이나 유아교육 측면에서 아이들의 쓰기 발달 과정을 들여다보면 아이들이 보여주는 휘갈겨쓰기, 끄적거리기나 상형문자 같은 상징적인 그림은 쓰기 능력 발달과 매우 주목할 만한 연관관계를 갖습니다. 소근육이 발달하여 손에 필기구를 쥘 수 있는 힘이 생기면 아이들은 종이 위에다 무언가 끄적거리기 시작합니다. 휘갈김, 끄적거림, 다양한 선과 모양 등의 단계를 거쳐 글자와 비슷한 형태로 발전합니다. 때로 아이들은 막대기나 철사 등으로 어설픈 모양을 만들고는 엄마 이거 봐. 이응()이야!”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조금 지나면 그동안의 경험에서 얻은 감()으로 한 두 글자를 제법 글자스럽게써내기도 합니다. 이 단계가 조금 더 발전하면 앞뒤 연관관계를 알 수 없는 글자들을 길게 쭉 이어 써놓고는 능청스럽게 읽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면 맞춤법이나 철자가 틀리더라도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을 쓰다가 글쓰기는 차츰 정교해집니다.

 

아이가 이 중 어느 발달 단계에 있든 간에 아이가 지금 보여주는 관심과 흥미, 능력을 알아주고 지지해준다면 아이의 쓰기 발달은 탄력을 받게 됩니다. 정확한 철자와 맞춤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바른 교육이라 생각하여 무조건 따라 쓰게 하고, 지적하며 바로잡아 준다면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실망감으로 무언가 써서표현하려는 아이의 욕구는 감소하게 됩니다. 철자와 맞춤법이 정확한 바른 글도 물론 중요하지만 유아기에 더욱 필요한 것은 내 생각과 느낌을 써서표현할 수 있는 자신감과 유능감, 그리고 그 즐거움을 아는 일이지요. 좋은 글은 바른 철자나 맞춤법이 아니라 글을 쓰는 즐거움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20131108_한장동화copy.jpg » 지원이의 한 장 동화. 옛날에 난장이 남자가 살았는데 공주를 사랑했다. 남자는 나무만큼 큰 꽃을 키워 공주에게 주었다. 공주는 아주 기뻐하며 난장이와 결혼을 해주었다.

 

아이들의 쓰기 경험을 촉진하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집안 곳곳에 필기도구를 배치해 놓는 것입니다. 거실 테이블 위, 부엌 식탁 한구석, 냉장고 문, 아이들의 책장 위 등에 메모지나 수첩, 다양한 필기구를 적절히 갖다놓습니다. 그리고는 그 필기도구를 이용해 어른들이 쓰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줍니다. 식단 짜기, 쇼핑목록 작성, 달력에 스케줄 적어 넣기 등을 비롯하여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조리법을 받아 적는다거나 책을 읽다가 맘에 드는 구절 옮겨 적기, 일기쓰기 등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발생하는 어른들의 쓰기 행위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의도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관찰을 통해 아이들은 쓰기의 기능과 가치를 이해하기 시작하며, 나도 무언가 직접 쓰고 싶다는 동기를 부여받게 됩니다.

 

쇼핑 목록을 작성하거나 식단을 적을 때 아이에게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아이와 함께 한다면 보다 높은 흥미와 관심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현관이나 거실 한 쪽, 화장실 앞, 냉장고 문 등 가족 모두가 자주 지나다니는 곳에 가족 소식판을 만들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가족 나들이 계획이나 오늘의 특별메뉴, 개인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등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누구나 적을 수 있게 합니다. 이때 중요한 팁은 글을 모르는 아이들도 즐겁게 적고 읽을 수 있도록 상징기호나 그림을 십분 활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말에 동물원에 가기로 했다면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을 그리게 하고 엄마(아빠)가 그 옆에 동물원이라고 적어줍니다. 동물원 가는 날까지 남은 날짜만큼 동그라미를 그려두고 매일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아이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손글을 써놓았다면 엄마(아빠)가 그 밑이 작은 글씨로 설명을 적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자기만의 방법으로 글을 썼다 할지라도 그 글에 가치를 두고 기쁘게 반응해 줍니다. 예를 들면, “정민이가 긴 목록을 만들었구나. 엄마가 마트 가기 전에 쓰는 쇼핑목록과 비슷하네.” “예원이 명함이구나. 예원이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이 번호로 전화할게.” 등이지요. 아이가 써온 글을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쓰기 발달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한 방법입니다. 아이만의 쓰기 방식과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달하기 때문이지요. 이 상황에서 일반적인 문자가 아니라며 무시하거나 잘못된 철자를 고쳐주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엄마(아빠)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 아이들은 쓰기는 도전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기 때문이지요. 지금 아이가 보여주는 노력을 인정하고 알아주는 것으로써 아이는 유능한 작가로서 자신을 생각하게 됩니다.

 

쓰기읽기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기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의 쓰기 형태를 아이와 함께 살펴보는 일도 중요합니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표시나(자전거 도로, 견인 구역, 어린이 보호구역 표시나 택배상자에 적혀있는 깨짐 주의, 칼 사용 금지 표시 등) 아파트 게시판에 붙어 있는 포스터, 거리의 간판 등을 아이와 함께 유심히 관찰합니다. 이때 그림이나 사진, 상징기호와 함께 적혀있는 글을 읽어주고 그것들의 연관관계에 대해서도 아이와 함께 이야기해봅니다. 혹시 아이가 알고 있는 글자나 단어를 발견한다면 반갑게 확인합니다. 잠자기 전 같이 매일 일정한 시간에 꾸준히 갖는 책읽기도 읽기는 물론 쓰기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요. 아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책이 있다면 몇 번이든 아이가 원하는 만큼 읽어줍니다. 동화책 외에도 잡지나 카탈로그, 전단지, 명함 등도 다양한 쓰기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좋은 교재가 됩니다. 아이가 알고 있는 글자를 찾아 칼라 펜으로 표시하거나 오려내기도 하고, 거기에 나와 있는 사진이나 그림, 글자 등을 단어카드에 활용하여 아이만의 맞춤 교본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아빠, .. 어떻게 써?”처럼 아이가 특별히 물어오는 단어(구절)가 있다면 재활용박스와 인덱스카드를 이용하여 아이만의 단어장을 만들어줍니다. 카드 한 장에 한 단어(구절)만 적고 나중에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그림이나 상징기호 등을 그려둡니다. 단어카드는 상자 안에 가나다순으로 정리해두고 아이의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둡니다. 아이가 새로 물어오는 단어(구절)가 생기면 새로운 카드를 만들어 단어집에 더합니다.


20131108_주사위게임copy.jpg » 지후의 주사위 게임 메뉴얼.

 

아이가 쓴 글을 아이 눈높이에 맞춰 집안에 전시해 주는 것도 아이의 노력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땅바닥이나 모래판, 습기가 찬 창문 등에 쓴 것이 있다면 사진을 찍어두고 함께 보며 이야기합니다. 젓가락이나 이쑤시개, 성냥, , 모루, 비누거품 등을 이용한 글자 만들기 놀이도 쓰기 발달에 큰 도움이 됩니다.

 

나이에 맞는 한글 교재를 구해 몇 살까지 한글을 깨치게 하는 것이 유아기에 필요한 쓰기 교육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주 어린 나이에도 아이들은 쓰고있으며 지금 아이가 보여주고 있는 흥미와 능력을 일상에서 알아주고 지원하는 것이 부모와 아이 모두가 행복한 육아가 아닐까요. 교육은 삶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어야 한다는 존 듀이의 말을 오늘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차상진 (sangjin.cha@gmail.com)

 

 

참고문헌

-Ann S. Epstein (2012), Language, Literacy, and Communication, HighScope Press

-Mary Hohnman & Joanne Tangorra edited (2007), Let’s talk literacy: Practical readings for preschool teachers, HighScope Press

-Linda Ranweiler (2004), Preschool readers and writers: Early literacy strategies for teachers, HighScope Press

-Ann S. Epstein (2002), Helping your preschool child become a reader: Ideas for parents, HighScope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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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욱·차상진
우리 시대 교육의 대안을 찾는 교육학자이자 학부모이며 교사이자 실천가. 하태욱은 교육사회학·교육정책·대안교육을, 차상진은 유아교육을 각각 전공했지만, 삶과 밀착된 교육, 아동중심적 교육관의 측면에선 같은 교육관을 갖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하태욱은 대학 강의와 더불어 대안교육연대와 대안교육학부모연대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교육적 대안 마련을 위해 뛰어다니고, 차상진은 아동의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배움을 강조하는 유아교육 프로그램 ‘하이스코프(www.highscope.org)’의 교사·학부모 교육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메일 : uktaeha@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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