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따라 그리기에 빠진 아이의 스케치북

김영훈 2016. 02. 03
조회수 8118 추천수 0

04642768_P_0.JPG » 우리가족 그림. 베이비트리.


그림그리기를 점령한 또봇스케치북


며칠 전 영화 ‘스티브 잡스’를 보았다. 영화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딸 리사에게 매킨토시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 접해보는 컴퓨터임에도 불구하고 마우스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나중에 스티브잡스는 딸과 화해를 하면서 그때 그렸던 그림을 프린트해준다. 자유롭게 색을 변환할 수 있고 심지어는 그림의 두께나 질감까지 변환할 수 있는 전자스케치북은 어쩌면 아이들의 로망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스케치북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은 자신의 손놀림이 어떤 선을 그려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지만 전자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은 자신의 손놀림이 어떻게 전자이미지로 변환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전자방식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손놀림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빼앗기 때문에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만큼 사랑받기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취학 전 아이들에게는 전자스케치북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요즘 아이들의 대세는 장난감 형태의 스케치북이다. 이 스케치북은 우리가 어릴 때 그리면서 놀던 그런 단순한 방식이 아닌 따라 그리기가 중심인 스케치북이다. 그중 또봇스케치북이 가장 인기가 있는데 TV에서 나오는 또봇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스케치북이다. 스케치북에 색연필과 물감이 있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스티커도 붙이고 또봇도장도 있어서 그림에 도장을 찍을 수도 있다. 보너스로 또봇카드까지 있으니 이것은 스케치북이 아니라 종합장난감 세트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이런 스케치북은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이 가능하다. 제품 안에 또봇이 그려져 있는 필름이 있어서 필름지 위에 종이를 대고 그림을 그리면 된다. 또봇을 따라 그리려면 고정장치에 필름지를 끼우고, 그위에 종이를 대고, 고정장치를 닫는데, 버튼을 누르면 불이 들어와서 필름지의 그림이 종이 아래에 나타나게 되고 그림을 따라 그리는 방식이다. 정교하게 그림도 따라 그리고, 색칠도 하고 스티커로 꾸며주고 또봇도장도 찍는 방식으로 노는 것이다. 여자아이들은 또봇 스케치북뿐만 아니라 비키스케치북도 좋아한다. 비키스케치북은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그림을 따라 색칠하며 그리기도 하고, 귀여운 그림과 글씨 아이콘으로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줄 수도 있다. 세트 안에 많은 색깔의 색연필도 포함되어 있고, 따라 그릴 수 있도록 비키 그림 필름도 들어있다. 비키를 다 그린 후에는 비키를 꾸밀수 있는 예쁜 액세서리 스티커도 들어 있다. 아이가 가수를 좋아한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처럼 비키를 꾸며주며 놀 수 있다.


상상력을 키우는 그림 그리기


우리집에는 아이들이 그림을 그렸던 스케치북을 아직 보관되어 있다. 동그라미와 직선으로 사람을 그린 험프티 덤프티(Humpty-Dumpty) 그림부터 온가족이 서있는 가족그림까지. 동그란 얼굴에, 눈, 코, 입, 머리카락, 다리, 팔을 그려 아빠를 그렸다며 보여준 적도 있었다. 비록 몸통은 없지만 세상에서 제일 멋진 아빠 모습이었다. 스케치북이 너무 헤퍼서 A4용지를 병행해서 쓰기도 하였다. 큰 아이는 로봇을 좋아해 수없이 다양한 로봇을 그렸던 것 같다. 작은 아이는 그 당시 유행하던 미미인형을 좋아하여 공주를 수없이 그렸던 것 같다.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두뇌를 계발하고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며, 아이의 사고력 향상, 집중력 강화, 창의성을 발달시키는 교육이자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대표적인 놀이이다. 


특히 아이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중요한 교육적 도구이다. 문제해결력과 창의력은 집이나 어린이집에서 매일의 문제를 다루는 기본적인 기술이다. 상자 밖을 생각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갖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사용할 필요가 있으며 현실 너머의 것을 보아야 한다. 아이들은 그들이 전혀 만나지 않았던 역사적 사건, 다른 문화, 다른 민족을 학습하는데 상상놀이는 그들을 둘러싼 세계를 발견하고 경험을 모으는 좋은 수단이 된다. 상상력이 개입되게 됨으로서 그 상징이 제시하는 경험적 직관의 내용을 재구성해 내는 것이다. 즉 상상력은 현실을 재현함으로써 현실을 대체 하게 하고, 더 나아가 이미지들의 결합에 의해 새로운 현실의 양태를 구성하는 것이다. 상징들은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하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자유로이 재구성하고 변형시킴으로서 어떠한 관념도 설명할 수도 있고, 추상적인 사고를 더욱 발전시킬 수도 있다. 


스케치북은 아이가 상상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표현하게 해주는 마당이다. 그런데 요즘의 또봇스케치북이나 비키스케치북은 따라 그리기나 색칠하기, 스티커나 도장으로 꾸미기가 주가 되고 있다. 좌뇌적인 손놀림이나 정밀도는 증가할지 몰라도 상상력과 융통성을 키우는 우뇌적인 발달은 별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공간지능과 미술놀이


아이디어를 머릿속에서 입체적, 시각적으로 이해하고 구성하며, 또 실제로 표현하는 능력을 공간지능이라고 한다. 공간지능이 높은 아이는 색, 선, 모양, 면 등의 관계를 잘 이해하고, 도형이나 그림, 지도 등의 시각적 자료를 잘 파악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을 머릿속으로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스케치북이나 색연필, 물감 등을 이용하여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 또한 아이는 그림을 그리면서 호기심을 충족하고 성취감을 느끼며, 감정을 표출할 수 있다.


[연령별 미술놀이]


.0~3세, 마음대로 낙서하게 하자.

돌 전후의 아이에게 그림도구와 종이를 주면 종이 위에 낙서를 한다. 손으로 그림도구를 움직이면서 종이 위에 무언가 나타나면 아이는 그림에 대한 호기심을 보인다. 간혹 아이에게 한글이나 영어를 익히게 한다는 목적으로 아이가 필기도구를 잡을 수 있게 되자마자 한글 쓰기나 알파벳 쓰기를 시키는 엄마들이 있는데 이는 아이의 자유로운 표현 욕구를 사그러지게 한다.


.3~5세, 의미가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36개월이 되면 아이는 그림에 의미를 부여하며 정확하지는 않아도 선과 모양의 구분이 나타나며, 선호하는 색도 생긴다. 어른의 시각에서는 전혀 사람이 아닌 그림을 두고 아이는 엄마, 혹은 아빠라고 의미를 붙이기 시작한다. 사물을 시각적으로 인지하고 무엇을 그릴지 미리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게 된다. 다양한 체험활동과 그림책을 통한 간접 체험은 미술에 대한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6~7세, 자신의 그림을 그린다.

자아의식이 뚜렷하여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줄도 안다. 비교적 시각적 관찰력이 정확하며, 색과 사물을 연관 지을 수 있게 된다. 그림에서 아이의 개성이 나타나므로 부모가 아이의 미술 활동에 개입하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다양한 기회와 경험을 제공하여 아이가 미술로 표현할 수 있는 폭을 넓혀 준다.


상상력이 핵심이다


유아기의 공간지능은 시각적 자극이 많은 환경에서 발달하게 된다. 그러므로 부모가 다양한 색감, 다양한 질감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좋다.


[상상력 키우는 육아방법]


.낙서는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이는 낙서를 통해 감각을 익히고 존재를 인식한다. 그러므로 부모는 아이가 낙서하는 공간을 제한하거나, 아이의 낙서를 무시하거나, 아이의 낙서에 참견하고 평가해서는 안된다.


.마음껏 그리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주자.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지만 벽이나 방바닥에 전지를 붙이거나 깔고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도 좋다. 욕실 벽을 아이의 미술 작업 공간으로 활용해도 좋은데, 수성 물감으로 마음껏 그리게 하거나, 핑거 페인팅도 할 수 있으며, 몸에 바디페인팅을 한 다음 목욕을 하여도 좋다.


.다양한 체험이 바탕이 된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무수히 많은 시각적 자극을 받게 된다. 계절의 바뀜과 살아있는 자연의 변화를 만나면서, 자연은 아이들에게 중요한 미술의 주제와 소재로 사용될 수 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아이들의 공간지능을 높일 수 있다.


.미완성 그림은 아이의 표현욕구를 자극한다.

미완성 그림을 주고 나머지 부분은 아이가 채워서 완성하게 해보자. 미완성으로 남은 그림은 아이들의 표현 욕구를 자극할 뿐 아니라, 그림들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예술적 감각을 키울 수 있다.


.도형을 가지고 동물을 그려보자.

노란색 동그라미, 빨간색 세모, 파란색 네모로 그림을 그리게 하자. 원, 삼각형, 사각형으로 고양이, 사자, 여우를 그려보자. 도형으로 구성된 동물그림을 보며 다양한 도형에 대한 개념을 익힐 수 있고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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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및 소아신경과 전문의. ‘부자 아빠’가 대세이던 시절, 그는 “아이 발달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 말했다. 돈 버느라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 보다는 ‘친구 같은 아빠’가 성공하는 아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아이의 인성은 물론 두뇌도 발달한다. 6살 이전의 아이 뇌는 부모의 양육방법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고 그는 강조한다. ‘베이비트리’ 칼럼을 통해 미취학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는 제대로 된 양육법을 소개할 계획이다. <아이의 공부두뇌>, <아이의 공부의욕>, <아이가 똑똑한집 아빠부터 다르다> 등의 책을 펴냈다.
이메일 : pedkyh@catholic.ac.kr       트위터 : pedk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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