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소리 내어 읽어 뇌에 ‘단어상자’를 만들어라

김영훈 2015. 0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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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JPG » 한겨레 자료 사진


읽기의 발달


처음에 아이는 글자나 단어들을 그림으로 봅니다. 부모가 길거리의 간판을 가리키며 과장스럽게 읽어주면 아이는 간판을 읽기 시작하는 데,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서 읽은 게 아니라 상표와 간판에 있는 글자 모두를 한 개의 그림으로서 읽습니다. 2단계로 넘어가면서 소리 회로와 의미회로가 서서히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즉, 글자를 소리로, 소리를 글자로 더듬더듬 옮길 수 있고, 자음과 모음을 합해서 소리내어 읽고 의미를 연결할 수 있게 됩니다. 3단계에서 자동화가 이루어집니다. 글자와 단어를 읽는 데 특화된 ‘단어상자’가 견고하게 조직화되어, 아이는 원하는 정보를 텍스트에서 자유롭게 찾아낼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갑니다. 뇌를 통해 여러 경로들이 지나가고 연결되면서 아이는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읽은 내용 중에서 얼마나 기억할 것인지 파악합니다. 읽기에 능숙해지면 아이의 뇌는 이 모든 일을 동시에 자동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수행합니다.


연구에 의하면 뇌가 불필요한 정보를 여과하는 동안 기저핵과 전전두엽피질이 특히 활발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저핵은 움직임을 조절하는 영역이고, 전전두엽피질은 합리적, 이성적 사고와 문제해결에 관여하는 영역입니다. 기저핵은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 기존 역할 외에도 학습을 위한 연결을 강화하는 행동을 할 때, 또는 어떤 행동을 방해하거나 그 행동의 강도를 약화시키기 위해 행동을 억제할 때도 활성화합니다. 기억체계는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체계는 주어진 과제의 부담 정도와 학습자의 성공적 학습 경험을 토대로 정보를 받아들입니다. 뇌는 불필요한 정보를 처음에는 시상에서 거르고, 다음에는 기저핵과 전전두엽피질에서 거릅니다. 즉 기저핵은 학습자가 불필요한 소음이나 방해가 되는 외부 자극을 차단하는 의식적 결정을 내리도록 합니다.


읽기에는 청각체계만큼 시각체계도 중요합니다. 능숙하게 읽으려면 후두엽과 뇌의 시각체계가 반드시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우선 물체를 보고, 이름을 붙인 다음, 단어를 발음하도록 배웁니다. 또한 시각연합체계가 발달하면서 아이들은 말하기를 배웁니다. 읽기를 배울 때 아이들은 시각체계를 통해 개별 문자와 조합된 문자 형태 안에서 임의의 형상을 보고 해석하게 됩니다. 상징적인 어떤 기호가 입력되면, 그 종이에 쓰인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이전에 장기기억에 저장된 이미지와 연결하게 됩니다. 읽기 과정은 후두엽이 제공하는 그림에서 발전된 구어 경로에서 출발합니다. 능숙한 독자는 그림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심상뿐만 아니라 감정과 기분까지 불러일으킵니다. 이것은 단순히 단어를 파악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발달된 읽기 행동입니다.

 

읽기를 효율적으로 발달시키려면


핀란드 아이들은 만 7세가 된 후에야 공식적인 읽기 교육을 받기 시작하는데도 2년 더 일찍 읽기교육을 받는 미국 어린이들보다 더 높은 읽기 성취도를 보입니다. 미국 교육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초등학교 4학년들의 경우 핀란드의 읽기 성취도는 세계 3위, 미국은 세계 6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기는 측두엽이 발달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읽기교육이 가장 효과적인 때입니다.

학업과 직업 능력에 대한 수많은 연구에서 독해능력은 특히 중요합니다. 읽기가 가능해지면 사물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지고 흥미도 더 생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운동에서 기초체력을 중요시하듯 아이의 두뇌 발달에 있어서 기초체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읽기능력을 키워주는 것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중요한 과제인 것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읽기를 배우지 못하면 고학년이 됐을 때 공부를 잘하기 어렵습니다. 저학년 때 술술 읽고 해독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 주어야 나중에 읽기를 활용한 학습이 가능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이들은 말소리의 최소 단위인 음소를 발음규칙과 함께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소리 내는 뇌의 경로에서 읽기 해독 경로로 전환시킵니다. 말을 하는 데에 관여하는 신경회로를 읽기 해독 경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반복 연습과 검사를 필요로 하며, 더 나아가 뇌가 자동 읽기경로를 개발할 수 있도록 부모가 집중적으로 개입하고 도와줘야 합니다. 글을 읽으려면 우선 각각의 철자를 그것의 소리와 연결시켜야 하고, 이 소리들을 결합해 하나의 소리 덩어리로 구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소리 덩어리가 어떤 의미를 지닌 단어라는 판단이 서면 뇌는 그 단어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되면, 문장 속에서 그 단어의 앞뒤에 위치한 다른 단어들의 의미를 새롭게 확인하게 됩니다. 읽기의 뇌를 발달시키기 위한 지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일상적인 사물이나 대상에서 읽기를 가르칠 기회를 찾으세요.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글을 읽게 하려고 스트레스를 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시리얼 박스나 거리 표지판에 뭐라고 쓰여있는지 물을 때 기꺼이 읽어준다면, 우리는 읽는 것은 재미있고 유용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맥락 속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입니다.


둘째, 책을 읽으세요.

일상대화의 99%는 불과 2,000개 이내의 단어로 이뤄집니다. 하루 종일 대화하더라도 그저 일상적인 대화뿐이라면 우리 아이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수준 높은 단어에 접할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따라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 속에는 수만 단어 수준의 고급 어휘들이 가득합니다. 게다가 좋은 책 속에서 사용된 단어들은 단어 전문가들의 세심한 손길을 여러 단계 거치며 검증받은 양질의 것들입니다. 책 속의 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단어의 양과 질은 일상 대화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단어의 양과 질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습니다.


셋째, 체계적으로 읽기교육을 시키세요.

신경과학 전문가들은 임상적으로 읽기 치료를 받는 아이들의 뇌에서 읽기가 일어나는 과정을 촬영한 결과, 읽는데 어려움이 있던 아이들도 체계적으로 가르치면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였습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후 이들은 뇌의 단어 식별영역에서 뇌발달이 이루어졌습니다. 단어를 식별하는 과제를 하면서 그 단어와 관련된 두뇌 영역을 개발하고 활용했던 것입니다. 직접적이고 체계적인 지도를 통해 과학적으로 가르치면 아이들이 정확하고 신속한 단어 해독자가 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익힐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복잡한 어휘를 익히기 위해 방대한 단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점점 더 길어지는 문장 속에서 단어 이해력을 높이며, 분석하고 종합해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뉴런을 뇌의 다양한 영역에 연결해야 합니다.


넷째, 소리내서 읽으세요.

모르는 단어가 많으면 속도를 내어 읽을 수 없으므로 기본 어휘를 두뇌 창고에 충분히 축척해야 합니다. 폴 네이션(Paul Nation)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쉬운 글인 구어체 테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6,000-7,000단어를 알아야 하고 어려운 글인 문어체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8,000-9,000단어가 필요합니다. 어휘수가 이 수준에 가까워지면서 아이는 스스로 소리내어 읽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대개 부모가 소리 내어 읽어주는 단계를 지나 아이가 스스로 소리 내어 읽는 단계를 지나면서 구어체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단어들을 거의 익힐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꾸준히 읽어주기만 해도 아이는 필요한 단어들을 두뇌에 확실히 담게 됩니다.


다섯째, 쓰기를 가르치세요.

말리테샤 조쉬(Malatesha Joshi)등의 연구에 의하면 단어를 구성하는 소리와 철자와의 관계를 아는 것이 읽기 이해력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올바른 철자법으로 글을 씀으로써 언어를 숙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머릿속에서만 따졌던 소리를 문자로 쓰기 시작하면서 글을 쓰기 위해 적절한 단어를 고르고 그들이 읽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말할 때 사용하는 어휘보다 읽고 쓸 때 훨씬 더 많은 어휘를 활용합니다. 읽거나 쓸 때 뇌가 자동적으로 조절되는데 이때 뇌는 장기기억에 저장된 방대한 어휘 사전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할 때는, 알고 있는 어휘 중에 발음이 가능한 어휘에만 뇌가 접근할 수 있습니다. 말하는 동안에는 듣는 사람이나 관객의 피드백을 해석하느라 뇌가 고난도의 단어를 찾을 여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종이책이 더 좋습니다.

사람들은 특정 문자 정보를 찾으려 할 때 원하는 텍스트가 어디에 나왔는지 위치를 추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종이책은 전자책에 비해 훨씬 분명한 위치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페이지를 펼치면서 여기가 시작부분인지 끝부분인지 당장 알 수 있고 종잇장을 손으로 만지며 두께와 질감과 때로는 냄새까지도 느낍니다. 종이책으로 읽으면 책 전체를 놓치지 않으면서 지금 읽고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를 객관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종이책은 전에 읽었던 내용을 다시 찾아보고 자유롭게 그 부분을 휙 펼쳐볼 수 있고 앞으로 나올 내용도 빠르게 넘겨볼 수 있습니다. 종이책이라면 떠오르는 생각을 여백에 적을 수도 있고 밑줄도 치고 형광펜으로 표시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원하는 대로 페이지를 접고 구길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통제력과 자기주도성을 키워줄 수 있는 것입니다. 종이책으로 읽은 것은 장기 기억화하기 유리합니다. 글을 읽은 후 시일이 꽤 지난 다음 기억 정도를 측정해보면 전자책으로 읽은 것은 의도적으로 떠올려야 하지만 종이책으로 읽은 것은 그냥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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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및 소아신경과 전문의. ‘부자 아빠’가 대세이던 시절, 그는 “아이 발달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 말했다. 돈 버느라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 보다는 ‘친구 같은 아빠’가 성공하는 아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아이의 인성은 물론 두뇌도 발달한다. 6살 이전의 아이 뇌는 부모의 양육방법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고 그는 강조한다. ‘베이비트리’ 칼럼을 통해 미취학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는 제대로 된 양육법을 소개할 계획이다. <아이의 공부두뇌>, <아이의 공부의욕>, <아이가 똑똑한집 아빠부터 다르다> 등의 책을 펴냈다.
이메일 : pedkyh@catholic.ac.kr       트위터 : pedk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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