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아이 마음 읽기, 자칫하면 불에 기름

조선미 2015. 02. 04
조회수 7683 추천수 0

아이들.jpg » 아이들. 한겨레 자료 사진.


일학년 연주와 다섯 살 민준이 남매는 옷을 챙겨 입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오랜만에 오시는 외할머니가 주차장에 곧 도착한다는 전화를 받고 할머니를 좋아하는 남매가 먼저 내려가겠다고 엄마를 조른 것이다. 엘리베이터에는 평소에 자주 마주치던 윗집 아주머니가 타고 있었다.

 

민준이구나. 누나하고 어디 가는 거야?”

몰라!”

민준아, 너 왜 그래?”

 

잠이 채 깨지 않은 민준이가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민망해진 연주가 한 마디 했다. 민준이는 울상이 된 채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저만치 할머니가 보이자 민준이는 울먹거리며 할머니에게 뛰어갔다.

 

우리 민준이, 왜 그래?”

누나가... ” 민준이는 누나라고 말하면서 눈으로는 윗집 아주머니를 쳐다보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상황을 모르는 할머니는 민준이와 두 사람과 번갈아 보며 품에 안은 민준이 등을 토닥였다. 그러자 세상에서 가장 서럽고 억울한 일을 당한 듯 민준이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감정소통을 하다 보면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별 일 아니었는데, 심지어 자기가 잘못한 일에서조차 마음을 읽어주며 달래려 하면 마치 서러운 일을 당한 것처럼 아이는 서러움이 복받쳐 운다. 아이의 감정이 격해지는 것에 당황한 부모는 그만큼 아이가 서러웠나 싶어 알아주지 못한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감정이 어떻게 전달되고 변화하는지 몰라서 일어나는 일이다.

 

상황을 민준이 입장에서 재구성하면 이야기는 이렇게 진행된다.

 

누나가 할머니를 보러 간다니까 같이 따라간다고 나섰지만 사실 민준이는 잠이 채 깨지 않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엄마가 입혀주는 대로 옷을 입고 나왔지만 날씨도 춥고, 칭얼거리고 싶은 기분이었는데 윗집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오니 더 짜증이 난 것이다. 아직은 예절보다 기분이 앞서는 나이라 심통스럽게 한 마디 했는데 누나가 무안을 주니 민준이의 심통에 불이 붙었다. 화가 난 건지 서러운 건지 억울한 건지 모르는 감정은 부글부글 끓으면서 곧 터질 듯한 상태가 된다.

 

이 때 할머니의 한 마디는 감정을 분출시키는 길을 터주며 이름도 붙여준다. 어떤 표정과 어조로 말하느냐에 따라 감정은 더욱 분명한 색채를 띄게 된다.


우리 민준이 왜? (이거 갖고 싶어? 배고파?)”

-> 뒷 부분을 올려 질문으로 하면 이 말은 본래의 말 그대로 궁금한 것을 묻는 것이다. 이 때 아이는 원하는 게 없다가도 뭔가 원하는 게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대답을 찾다 엉뚱한 대답을 하기도 하는데 그건 감정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우리 민준이 왜? (누가 때렸어? 누가 혼냈어?) 

-> 응석을 조장하는 억양으로 이 말을 하면 누군가에게 혼났다거나 맞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억울한 일과 감정이 연결된다. 짜증스러웠던 아이는 갑자기 억울해하면서 더 크게 울고 심지어 과거의 일까지 끄집어내며 서러워하며 크게 운다. 옆에 서 있던 사람에게 탓을 돌리기도 해서 제 2의 억울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우리 민준이 왜? (그건 안 된다고 했잖아! 이제 집에 가기로 했는데 왜?) 

-> 힐난조로 말하면서 다음에 이런 말들이 나오면 이 말은 강하게 혼내기 위한 서두가 된다.

감정을 읽어주는 건 상황을 수습하려는 노력인데 상황은 대부분 악화된다. 왜 그럴까? 아이의 짜증은 뚜렷한 이유가 없을 때도 많다. 이유가 있다 해도 아이가 그것을 아는 건 매우 어렵다. 그런데 이유를 알아보려는 어른의 반응이 아이를 특정 감정으로 이끌어간다. 억울했지 하는 식으로 반응하면 아이의 짜증은 억울함으로 발전하고, 속상했지 라고 반응하면 뭔지 모르지만 정말 속상했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슬픈 영화를 보면 같이 눈물이 나고, 무서운 영화를 보면 몸이 오싹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기분이 좋지 않은 아이는 등을 토닥토닥해주며 기분을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게 가장 좋다. 아이가 왜 그러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하는 말은 나도 모르게 아이를 그런 기분으로 이끄는 결과를 가져 오기 때문이다. 또한 공감을 해준다고 강하게 감정을 표현하면 아이의 감정도 더 강해진다. 조금 삐쳤을 뿐인데 격노 분위기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아이 마음을 읽어주는 어른의 반응은 아이보다 조금 더 차분하게, 점차 안정되어 가는 식으로 해주어야 아이가 감정조절능력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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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미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남성모병원 임상심리실, 성안드레아 병원 임상심리실을 거쳐 아주대 의대 정신과학 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6년부터 EBS <60분 부모> 전문가 패널로 출연 중이며, <부모마음 아프지 않게, 아이마음 다치지 않게>, <조선미 박사의 자녀교육 특강> 등을 펴냈다.
이메일 : smcho@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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