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아이의 거짓말 어떻게 봐야할까

조선미 2013. 07. 06
조회수 10708 추천수 0

수시로 사고를 치는 세 살, 다섯 살 두 아이 때문에 형준이 엄마는 잠시도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오늘 일만 해도 그렇다. 잠시 두 아이가 장난감 방에서 노는 동안 얼른 설거지를 하려고 서두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둘째 수빈이의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울음소리가 들린다.

허겁지겁 달려가보니 방바닥에는 온통 블록이 널려 있고, 그 가운데 둘째가 발버둥치며 울고 있다. 큰 아이 형준이는 옆에 쭈뼛거리며 서 있다. 오늘도 역시 저 녀석이 문제의 발단임에 틀림없다. 곱게 쌓여져 있는 형준이의 블록과 여기 저기 널려 있는 둘째의 블록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 또 동생 울렸지?” “오빠가 내 거 다 망가뜨렸어!”

일순간 형준이의 표정이 흔들린다. 잘못을 들켜서인가 했는데 곧 분한 표정이 된다.

아니야!! 난 내 것 만들고 있었어. 수빈이가 만든 건 안 건드렸다고.”

오빠가 내 빨간 블록 갖고 갔잖아.”

대신 파란 거 줬잖아.”

두 아이의 실랑이를 들으니 상황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큰 녀석이 동생 것을 빼앗았고, 그 과정에서 작은 녀석 것이 망가진 모양이다. 번번이 이런 일로 동생을 울리니 이번에는 단단히 혼을 내야겠다 싶었다.

아니야, 난 수빈이 거 안 부쉈어!” 완강한 형빈이의 태도에 엄마는 더욱 화가 났다. 부쉈으면 부쉈다, 때렸으면 때렸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나마 여지가 있을텐데 저렇게 나오면 더욱 용서가 안 된다. 이게 컸다고 이제 거짓말까지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형빈이 집에서는 엄마의 화난 목소리와 형빈이의 울음소리가 커져간다.

 

20130708_2.jpg » 해운대 해수욕장에 물놀이 나온 아이들. 한겨레 자료 사진.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톤의 동화책을 보면 선물로 받은 도끼로 아버지가 아끼는 벚나무를 베고, 진노한 아버지에게 자기가 했노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나온다. 정직은 인간이 가진 미덕 중 가장 중요한 것이며, 신뢰로운 사회의 기반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아이가 정직하게 커나가고 있는지를 유심히 신경 쓴다.


이런 부모에게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거짓말은 정말 당황스러운 일이다. 그 누구보다도 반듯하고 사회성 있게 키우려고 했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거짓말을 하다니 얘가 커서 뭐가 되려나 싶은 걱정은 둘째 치고 부모를 뭘로 아나 싶은 분노가 먼저 이성을 마비시킨다.


앞 뒤 정황과 눈앞에 펼쳐진 장면, 아이의 이전 행동 몇 가지만 조합해보면 금방 혐의는 유죄 쪽으로 기우는데 아이는 한사코 부정한다. 아이 말만 들으면 항상 동생이 먼저 주먹을 휘두르고, 동생 물건은 털끝 하나 건드려본 적도 없으며, 심지어 멀쩡한 물 컵이 저절로 미끄러져 식탁 밑에 내동댕이쳐지기도 한다.


이런 황당한 거짓말을 듣고 있노라면 아이는 필시 거짓말을 일삼다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이 사회 어디에도 발붙이기 힘들 것 같다는 재앙적인 생각이 엄마의 모성본능을 자극한다. 이웃들은 애들 때 다 그런다고 하지만 일단 쿵쾅거리기 그 엄마 마음은 그 정도로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아이의 거짓말은 단순히 현상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아이의 나이와 당시 정황, 부모의 반응과 같은 다양한 요소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두 세 살짜리 어린 아이들은 현실과 공상을 잘 구별하지 못해 별이 자장가를 불러준다거나 사탕을 먹으면 입 안에 까만 벌레가 생긴다고 믿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아이는 현실과 현실이 아닌 것을 구별하게 되며, 결국에는 산타클로스 수염 밑에서 낯익은 얼굴을 기억해내기도 한다.


네다섯 살이 되면 불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반응적 거짓말을 보인다. 혼이 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반사적으로 내가 안 그랬어.”라고 대답한다. 상황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에 부모는 몇 번 다그치면 아이가 사실을 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뉘우치면 봐주려고 마음의 준비까지 하고 있는데 아이는 펄펄 뛰며 아니라고 부정하고, 억울하다는 듯이 울어대면 엄마의 마음은 황당하기도 하고 걱정이 배가되기도 한다. 그나마 뉘우치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불리한 상황에서 아이는 처벌을 피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이 때 잠깐 아이의 불완전한 판단력과 이성은 마비가 된다. 잘못을 한데다가 거짓말까지 했다는 엄청난 사실을 아이의 연약한 자아는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순간 아이는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진짜로 믿게 된다. 따라서 아이가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무섭게 다그칠 게 아니라 사실대로 말하면 혼내지 않겠다고 하여 공포심을 줄여주어야 한다. 사실 아이들이 한 잘못은 대부분 사소한 실수이다. 이런 실수를 바로 잡기 위해 거짓말을 할 지경까지 혼을 내는 것은 바늘도둑을 소도둑으로 만드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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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미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남성모병원 임상심리실, 성안드레아 병원 임상심리실을 거쳐 아주대 의대 정신과학 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6년부터 EBS <60분 부모> 전문가 패널로 출연 중이며, <부모마음 아프지 않게, 아이마음 다치지 않게>, <조선미 박사의 자녀교육 특강> 등을 펴냈다.
이메일 : smcho@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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