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가방은 엄마가 들어줘야지

조선미 2013. 06. 24
조회수 8137 추천수 0

20130624_5.jpg » 한겨레 자료 사진


시계가 910분을 가리킨다. 유치원에 가려면 오 분 뒤에 오는 유치원 차를 타야 한다. 보미 엄마는 부랴부랴 옷을 입고, 한 손에는 맡겨야 할 세탁물을 한 보따리 들었다. 다른 한 손에는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들고 보니 보미 유치원 가방이 눈에 띈다. 평소에는 항상 차타는 곳까지 가방을 들어줬지만 오늘은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미야, 이러다 늦겠다. 얼른 가방 들어.” 보미가 의아하다는 듯 엄마를 본다.

내가 들어야 해?”

엄마 손에 짐이 많잖아. 오늘은 네가 들라고.”

그래도 엄마가 들어야지. 무거운 걸 내가 어떻게 들어?”


의외의 답변에 엄마는 당황했다. 아침마다 차타는 곳까지 함께 가면서 자연스럽게 가방을 들어줬지만 보미가 가방은 엄마가 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보미가 처음 가방을 메려고 할 때 무거우니 엄마가 들어준다고 했던 게 화근인 것 같았다. 정말 무거워서가 아니라 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무거운 건 엄마가 들어준다고 했던 것인데 보미는 그 말을 정말로 믿었던 것 같다. 엄마가 자기 대신 가방을 들어주니 고맙다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지금이라도 보미의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건 네 가방이야. 이젠 무거워도 네가 들어.”

? 난 무겁단 말이야. 무거운 건 엄마가 든다며?”


아침에 아이를 바래다주는 엄마들 손에는 저마다 노란 가방이 들려져 있다. 빈손으로 가느니 아이 가방이라도 들어주지 하는 가벼운 마음도 있고, 가방을 든 아이 모습이 안쓰러워 들어주기 시작한 경우도 있다. 무거운 가방 때문에 혹시 키가 안 크면 어쩌나 어깨의 균형이 안 맞으면 큰일인데 하는 과잉 걱정의 마음도 전혀 없지는 않다. 어쨌거나 왜 가방을 들어주는지에 처음 한 두 번은 스스로 질문도 던져보고, 그래도 되나 하는 의구심을 갖는 시간이 잠깐 있기도 하지만 아이의 가방을 드는 일은 금방 익숙해진다.


집에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이다. 차에서 내리는 아이를 반겨주면서 자동적으로 손에서 가방을 받아든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이도 익숙해진다. 아침에 현관문을 나서면서 빈손으로 나가는 게 자연스럽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어깨에서 가방을 내려 엄마에게 건네준다. 이 광경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직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 쉽지 않아 보이는 여린 아이의 짐을 잠깐이나마 덜어주고자 하는 풍경은 엄마의 따뜻한 마음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 엄마의 행동이 아이에게 따뜻한 마음, 그 이상의 의미로 전달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아이는 가방을 들어주는 엄마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염려, 걱정, 다정함, 보살핌과 같은 감정은 아직 아이가 모두 이해하기에 아이는 너무 어리다.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건 알지만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행동과 그 감정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배려와 돌봄으로 해석되어야 할 행동은 아이의 조그마한 머릿속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된다.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나는 너무 작으니까... 힘이 없으니까... 이런 건 어른이 하는 일이니까...“ 


조금 더 생각이 진행되면 이런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힘든 일은 내 일이 아니야. 무거운 건 누군가 다른 사람이 들어줘야 해.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없는 힘든 일이 너무 많아.”


이렇게 배운 아이들은 자기 등에 가방이 지워졌을 때 그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한다. 가방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내 짐이 아닌데 짊어졌다는 억울함, 나는 이런 걸 하기에 너무 약하다는 무력감 때문이다.


모든 부모는 아이가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어른이 되기를 소망한다. 몸집이 작았던 아이가 몸집이 커진다고 해서 자율성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작지만 작은 몸집 안에 키웠던 자율성이 신체의 성장과 함께 커나가는 것이다. 어리면 어린대로, 성장하면 성장하는 대로 아이는 자신의 가방을 스스로 메야 한다. 그래서 삶의 무거운 무게도 거뜬하게 지고 갈 수 있는 체력이 생긴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선미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남성모병원 임상심리실, 성안드레아 병원 임상심리실을 거쳐 아주대 의대 정신과학 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6년부터 EBS <60분 부모> 전문가 패널로 출연 중이며, <부모마음 아프지 않게, 아이마음 다치지 않게>, <조선미 박사의 자녀교육 특강> 등을 펴냈다.
이메일 : smcho@ajou.ac.kr      

최신글




  • “외동인 우리 아이, 친구가 거절하면 너무 힘들어해요”“외동인 우리 아이, 친구가 거절하면 너무 힘들어해요”

    조선미 | 2015. 03. 14

    저는 초등학교 일학년 남자애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우리 아이는 외동인데 그래서 그런지 친구한테 너무 연연하고 상처를 쉽게 받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학교에서 놀고 왔을 텐데도 집에 오면 항상 친구와 놀고 싶다고 말하고, 친구와 놀게 해달...

  • 아이 마음 읽기, 자칫하면 불에 기름아이 마음 읽기, 자칫하면 불에 기름

    조선미 | 2015. 02. 04

    일학년 연주와 다섯 살 민준이 남매는 옷을 챙겨 입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오랜만에 오시는 외할머니가 주차장에 곧 도착한다는 전화를 받고 할머니를 좋아하는 남매가 먼저 내려가겠다고 엄마를 조른 것이다. 엘리베이터에는 평소에 자주 마주치...

  • 자신감 없는 아이, 정말 자신이 없을까자신감 없는 아이, 정말 자신이 없을까

    조선미 | 2015. 01. 13

    무엇이든 자신 있게 했으면... 여섯 살 진수는 놀이터에 갈 때마다 기분 좋게 들어오는 일이 별로 없다. 나갈 때마다 오늘은 울지 않는다고 엄마에게 약속하지만 울지 않고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진수 때문에 엄마도 걱정이 많...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조선미 | 2014. 03. 25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아이가 제 딴에는 밥값을 하겠다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레고 놀이방에서 블록 놀이를 하는 아이들에게 블록을 찾아주기도 하고, 맞추기 어려운 부분을 도와주기도 하는 일이다. 엊그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 아이의 거짓말 어떻게 봐야할까아이의 거짓말 어떻게 봐야할까

    조선미 | 2013. 07. 06

    수시로 사고를 치는 세 살, 다섯 살 두 아이 때문에 형준이 엄마는 잠시도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오늘 일만 해도 그렇다. 잠시 두 아이가 장난감 방에서 노는 동안 얼른 설거지를 하려고 서두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둘째 수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