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화내는 것과 단호한 것의 차이

조선미 2013. 0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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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7_02.jpg » 한겨레 자료 사진


저녁 열시가 됐다창민이가 씻고 자야 할 시간인 것이다창민이는 아까부터 얼마 전에 새로 산 장난감 트럭을 갖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있다안 그래도 씻으라고 하면 순순히 씻는 경우가 별로 없는 아이라 엄마는 말을 꺼내기도 전부터 걱정이 앞선다.

창민아잘 시간이야얼른 씻고 자자.” 엄마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창민이는 트럭을 굴리는데 열중하고 있다엄마는 창민이 곁에 다가갔다.

그만 하고 얼른 자자내일 또 놀면 되잖아.”이번에도 창민이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짜증스럽다는 반응을 보인다봐줄 만큼 봐줬다는 생각에 엄마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엄마하고 약속했잖아열시면 씻고 자기로넌 약속 안 지킬 거야?”

이제야 창민이는 고개를 들고 엄마를 쳐다본다그렇지만 놀이를 그만 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조금만 더 놀고.”

내일 놀자고옷 벗고 목욕탕에 가서 얼른 씻어!” “왜 꼭 씻어야 하는데....”

평소처럼 엄마와 창민이의 긴 실랑이가 시작된다오늘도 일찍 자기는 틀렸다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고 매를 드는 시늉을 하기까지는 계속 저럴 것이다.

도대체 왜 아이는 말을 듣지 않을까단호하게 하면 된다는데 단호하게 한다는 게 화를 내는 걸 말하는 걸까화를 내면 아이에게 좋지 않을 것 같은데 계속 이런 식으로 해도 되는 걸까?’ 창민이 엄마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아이가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해놓는다. 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은 하루에 하나씩만 먹고, 밥을 먹은 후에는 꼭 이를 닦아야 하며, TV는 보고 싶은 만화영화 두 개씩만 봐야 한다 등...


그런데 이런 규칙은 지켜지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매 상황마다 부모가 일러주고, 타일러도 아이들은 쉽게 말을 듣지 않는다. 목소리 톤을 한껏 높이거나 무서운 얼굴을 하고 협박을 해야만 아이는 마지못해 움직인다. 심지어 매를 들고 쫒아가야 겨우 말을 듣는 아이도 있다. 이럴 때 부모는 마음이 상한다. 좋게 말할 때 들으면 서로 좋을 텐데 왜 분위기가 험악해져야만 움직일까 싶으면서 이런 게 단호한 것인가 보다 하고 이해하게 된다.


화를 내는 게 단호한 것이라고 이해하다 보니 단호하게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아이를 단호하게 대해야겠다는 마음과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하는 마음이 복잡하게 뒤엉켜든다.


단호하다는 것은 과단성 있고 철저하다는 의미이다. 여기에는 물리적인 힘을 쓰거나 화를 낸다는 뉘앙스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럼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단호하게 한다는 것은 화를 내지 않고도 가능한 것일까? 단호하다는 것은 아이를 대하는 말투나 표정, 목소리 크기에 달려있는 게 아니라 지시내용을 이행하도록 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의해 정해진다.


, 아무리 소리를 높이고 매를 들어도 아이가 씻지 않은 채 잠자리에 든다면 그건 단호한 행동이라고 할 수 없다. 낮은 목소리로 웃으면서 말을 해도 씻자라는 지시가 씻는 행동으로 끝나면 그건 단호한 지시라고 할 수 있다.

아이가 말을 듣게 하려면 굳이 목소리를 높이고 열을 낼 필요는 없다. 낮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하고 행동을 하도록 하면 된다. 효과적으로 지시를 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아이가 하고 있는 것을 중단하도록 한다.

- 엄마에게 집중하도록 하고 얼굴을 마주한다.

-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짧게 지시한다.

- 아이가 지시에 따르지 엄마하고 같이 하자하면서 손을 잡아 일으킨다.

- 목욕탕까지 데리고 가서 씻도록 한다.

- 다 씻을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고 격려한다.

- 끝나고 나면 칭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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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미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남성모병원 임상심리실, 성안드레아 병원 임상심리실을 거쳐 아주대 의대 정신과학 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6년부터 EBS <60분 부모> 전문가 패널로 출연 중이며, <부모마음 아프지 않게, 아이마음 다치지 않게>, <조선미 박사의 자녀교육 특강> 등을 펴냈다.
이메일 : smcho@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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