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유치원에 적응을 못해요

조선미 2013. 0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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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4_01.jpg » 한겨레 자료 사진.


아침마다 수연이는 엄마 옷자락을 잡고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징징거린다. 초반 두어 달은 곧잘 다니더니 몇 주 전부터 친구가 때린다느니 괴롭힌다느니 하면서 가기 싫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지낸다.

왜 그러는데?”

동수가 자꾸 때려! 놀고 있으면 방해하고, 어제는 싫다는데 옷을 막 잡아당겼어.”

그럼 하지 말라고 말하면 되잖아. 그리고 너랑 놀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좀 참지 그래.” “하지 말라 그래도 자꾸 한단 말이야.”

수연이 엄마는 난감하다. 동수가 좀 개구쟁이라 다른 애들을 곧잘 괴롭힌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게 유치원에 가지 않을 일인가 싶다. 혹시나 싶어 유치원에 전화해보면 선생님은 친구 때문에 좀 힘들어하기는 하지만 유치원 생활은 곧잘 한다고 한다. 친구들을 도와주고 의젓한 면이 있어 칭찬도 많이 받는다는데 도무지 무슨 문제 때문에 적응을 못하는지 알 수가 없다.

 

오늘 유치원에서 뭐했어?”

놀았어.”

친구들하고 싸우지 않고 놀았어?” “!”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동수를 보며 엄마는 한숨을 내쉰다. 학기 초부터 받기 시작한 담임 선생님의 전화는 좀 잊을 만할 때마다 다시 걸려왔다. 동수가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괴롭힌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애써 만들어놓은 만들기 작품을 부수는가 하면 좋다는 표현인 것 같은데 갑자기 친구들에게 덤벼들어 안으려 해서 하루에 한두명은 꼭 울린다는 것이었다. 꼭 지금 유치원을 보내야 하나 싶어 동수에게 유치원을 옮기자고 해 보았으나 동수는 이 유치원에 다니는 게 좋다고 한다. 아이는 적응을 잘 하는 것 같은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이 상황에서 적응을 잘 하는 아이는 누구일까? 친구 때문에 힘들어서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는 수연이일까, 즐겁게 유치원에 다니지만 친구들을 괴롭히는 문제 때문에 계속 지적을 받는 동우가 적응을 잘하는 아이일까.


적응이란 일정한 조건이나 환경에 맞추어 잘 어울리는 것을 의미하며, 적응하는 방법으로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경우와 환경에 맞추기 위하여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 적응이란 주어진 환경에서 별 어려움 없이 생활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단지 기분 좋게 생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 생활에서 요구되는 규칙이나 행동의 통제력을 갖추어 환경과 잘 어울리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를 처음에 유치원에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아이가 기꺼이 유치원에 가겠다고 하고, 다녀와서는 재미있었다고 말하는지 여부를 적응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아침에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거나 다녀와서 친구와 싸웠다거나 친구가 놀아주지 않았다고 하면 아이가 적응문제를 겪는 건 아닌가 걱정하게 된다.


그렇지만 적응이란 환경의 요구에 맞출 수 있는 역량이 있고 그 역량을 발휘하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유치원에 재미있는 장난감이 있어 하루 종일 재미있게 놀지만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거나 집단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건 적응을 잘 하는 게 아니다. , 환경이 아이의 요구에 맞춰줄 때가 아니라 아이가 환경의 요구에 맞춰줄 때 우리는 아이가 잘 적응하고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치원은 보육기관이고 인원이 많지 않아 어느 정도 개인차를 인정하고, 크게 지장이 없는 한 서로 다른 아이들의 요구를 맞춰주려고 노력한다. 이는 본격적인 집단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기간으로 아이들이 서서히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다섯 살짜리라면 원하는 때마다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지만 여섯 살, 일곱 살이 되면서 점차 참을 수 있어야 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웬만하면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와야 한다. 옆의 친구를 떠밀거나 장난감을 뺏으면 유치원 선생님은 조근조근 타이르지만 학교에서는 보다 엄격한 벌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는 지금 유치원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환경이 요구하는 것들을 또래만큼 해나가고 있는가? 환경의 요구에 맞추는 것, 그것을 적응의 잣대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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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미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남성모병원 임상심리실, 성안드레아 병원 임상심리실을 거쳐 아주대 의대 정신과학 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6년부터 EBS <60분 부모> 전문가 패널로 출연 중이며, <부모마음 아프지 않게, 아이마음 다치지 않게>, <조선미 박사의 자녀교육 특강> 등을 펴냈다.
이메일 : smcho@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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