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아이와 노는 법

하태욱·차상진 2011.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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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0287.JPG저희 집 벽장엔 커다란 다용도 플라스틱 상자가 하나 있습니다. 그 안엔 지난번에 말씀드린 열린 장난감(open-ended materials)’이 한가득 들어있죠. 저희 집에 꼬마 손님이 찾아올 때면 그 안에서 조개껍질, 콩주머니, 나뭇가지 등등의 놀잇감을 이것저것 꺼내 대접하곤 합니다. 그런데 언젠가 한번은 손님 맞을 준비가 미처 끝나지 못해 벽장을 뒤질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사 때 쓰고 남은 커다란 전지 한 장을 한구석에 깔아주고 크레용, 크레파스, 다양한 굵기의 색연필, 사인펜, 붓펜 등을 내주었습니다. 저는 요리를 하고, 엄마는 식탁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아이는 커다란 종이에 신나게 낙서를 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지요. 그런데 엄마가 아이 옆에 가 앉습니다. 열심히 작품 활동(?)에 매진하는 아이와 함께 놀아줄 모양입니다. 온갖 관심을 집중한 채 유심히 모녀간의 대화를 엿듣습니다. 엄마가 몇 가지 색깔의 색연필을 골라 한손에 움켜쥡니다. 그러더니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립니다. “소라(가명), 이게 무슨 색이야?” 아이가 힐끗 쳐다보며 대답합니다. “빨간색.” 엄마는 만족한 표정으로 동그라미 위에 몇 번을 덧그리며 말합니다. “이건 무슨 모양이야?”

 

우리 여기서 잠시 세 살배기 소라입장에서 생각해볼까요? 오랜만에 엄마 친구네 집에 놀러갔습니다. 아줌마가 심심해할 소라를 위해 바닥에 커다란 종이를 깔아줬습니다. 매일 스케치북, A4용지에만 그림을 그리던 소라는 자기 몸집보다도 더 큰 종이가 마냥 신기합니다. 오빠 서랍을 여니 그동안 써보지 못한 각종 그림도구들이 나옵니다. 오빠가 쓰는 색연필은 색깔도 여러 가지고 굵기도 여러 가지입니다. 굵은 사인펜에는 향기도DSC00265.JPG 납니다. 평소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소라는 이 커다란 종이 위에 멋진 작품을 한 장 구상하고 지금 막 그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오더니 난데없는 색깔 맞추기 테스트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엄마가 그린 저 모양(동그라미)을 맞춰 보랍니다. 소라 입장에서 생각하니 짜증이 날 것도 같습니다.

 

유아교육에서는 놀이가 공부이고, 공부는 곧 놀이라는 말을 참 많이 합니다. 저 역시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부모들이 이 말을 곡해하고 있는 듯합니다. ‘놀이가 공부라는 말은 아이들의 놀이를 학습지화하라는 얘기가 절대로 아니랍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도 아이들의 놀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놀잇감에 이어 오늘은 아이들 놀이에 참여하는 방법, 아이들 놀이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소통하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야 합니다. 아이의 수준에 맞춰 이야기를 해주는 것에 앞서 아이와 물리적으로 눈높이를 맞춰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와 함께 놀거나 아이와 함께 대화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신체적 눈높이에 맞게 몸을 낮추는 일입니다. 이것은 쪼그리거나, 무릎을 꿇거나, 주저앉거나, 필요하다면 바닥에 함께 눕거나 엎드리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이렇게 하면 아이는 어른을 올려볼 필요도 없고, 어른이 아이를 내려다볼 일도 없어집니다. 심리적 눈높이 못지않게 신체적 눈높이 역시 아이와 소통하는데 무척 중요하답니다.

 

둘째, 아이가 하는 행위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하이스코프 교사들은 이 과정을 ‘SOUL’이라고 칭하는데 아이를 조용히(Silence) 관찰하고(Observation) 이해하면서(Understanding),DSC00270.JPG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라는(Listening)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소라 엄마처럼 빨간색 색연필을 들고 빨간색 동그라미를 가르치러 달려들 것이 아니라 먼저 조용히 아이를 관찰하면서 아이의 관점에서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아이가 지금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의 놀이는 어떤 놀이종류에 해당되는지, 지금 어떤 교육적 경험이 일어나고 있는지 등의 이해와 분석의 과정입니다. 이 때 아이가 하는 말은 아이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세 번째, 아이의 놀이에 대한 파악이 어느 정도 끝났으면 아이와의 대화를 시도합니다. 아이와의 놀이 속에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가 먼저 입을 열길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어른이 먼저 대화를 시도해보는 방법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다짜고짜 던지는 질문 보다는 아이가 지금 하고 있는 행위를 조용히 따라하거나, 그것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는 것으로 소통을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한 아이가 나무 밑에서 줄지어 기어가고 있는 개미떼를 관찰하고 있습니다. ‘탐구놀이에 해당되네요. ‘탐구놀이의 경우에는 일단 아이가 오감을 총 동원하여 무언가를 충분히 탐구할 수 있도록 편안한 심리상태를 제공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이때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욕심에 앞서 다짜고짜 이게 개미야. 잘 봐. 개미는 다리가 여섯 개야. 개미들은 지금 집으로 먹을 것을 나르는 거야. 개미가 몇 마리인지 세어볼까? 하나, 두울, 세엣...” 이런 대화는 바람직한 소통의 방법이라고 하기 힘듭니다. 그냥 아이가 하는 대로 따라하는 겁니다. 아이 옆에, 되도록 아이와 같은 눈높이가 되도록 비슷한 자세로 쭈그려 앉아 개미를 바라봅니다. 아이보다 먼저 대화를 시작할 때는 사진을 찍듯, 절대 과하지 않게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을 묘사하는 정도가 좋습니다. “개미구나.” “(빵조각을 들고 가는 개미를 가리키며) 얘는 무언가를 들고 가네.” 정도면 족합니다. 아이의 반응을 기다리면서 아이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부여합니다.

 

네 번째, 아이와 함께 놀면서 주도권을 나누어 갖고 파트너십을 가지려면 어른-아동 쌍방향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대화를 주고받는소통방식이 좋습니다. 어른이 한번 이야기를 했으면(혹은 행동을 취했으면) 다음 순서엔 아이가 이야기를(혹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방법입니다. 이때 어른은 자기 순서에서 아이가 하는 말을 인정하고 알아주는 반응을 보이면서 아이와의 소통을 보다 풍성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한 기술적 전략이 있습니다. 그것은 ~” “그래~” “그렇구나~” 같은 추임새나, 아이가 하는 말을 다시 반복하는 방법입니다. “~” “그래~” “그렇구나~” 같은 말은 옹알이를 하는 아기와 소통하는데도 아주 유용하답니다. 아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방법은 아이의 말을 더 명확하게 해주는데도 효과적이며, 아이로 하여금 나는 지금 네 말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관해 더 알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아이와의 대화를 북돋는 역할까지 하니 일석이조라 할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아이와의 놀이가 무르익었다 싶으면 어른은 이때쯤 아이의 사고를 조금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해볼 수 있습니다. 개미 관찰을 예로 들어본다면 왜 어떤 개미는 짐을 들고 가고 어떤 개미는 빈손으로 갈까?”라는 질문, 혹은 얘네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같은 질문도 가능하겠지요. 병원놀이 중이라면 선생님, 약을 좀 먹어야하지 않을까요? 처방전을 좀 써주시겠어요?”하면서 메모지와 연필을 내밀어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때 이러한 시도로 아이의 행동이나 집중도, 호감도 등이 떨어진다면 재빨리 아이의 본래 행위로 돌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여섯 번째, 너무 많은 질문은 절대 삼가야합니다. 아이와 놀이 할 때, 아이의 관심과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질문은 분명 대화를 풍성하고 교육적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질문은 어른이 의도하는 대로 아이를 주도하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아이와의 소통을 방해할 수 있죠. 아이와의 소통을 방해하는 질문은 대표적으로 사실을 묻거나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을 확인하려는 시험형질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게 무슨 색이지?” “어떤 것이 더 길까?” “이게 몇 개지?” 등이지요. 또한 아동이 하고 있는 놀이와 관계없는 질문도 아이와의 소통을 방해합니다. 예를 들어, 레고블록으로 기다란 기차를 만들고 있는 아이에게 엄마가 말합니다. “너 근데, 유치원 갔다 와서 손은 씻었니?” “학습지는 해놓고 노는 거야?” 잠깐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봅시다. 당신이라면 이런 엄마와 계속 놀고 싶을까요?

 


DSC00278.JPG 하지만 아이가 현재 하고 있는 놀이와 관련된
,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질문은 아이와의 대화를 보다 깊고 넓게 만들어줍니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걸 어떻게 알았니?”

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그렇게 했니?”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종류의 질문은 아이로 하여금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들로 열린 놀잇감(open-ended materials)’과 같은 맥락에서 열린 질문(open-ended questions)’이라 불립니다. 정답이 기다리는 시험형 질문보다 훨씬 아이들의 논리력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질문들입니다.

 

교육이란 늘 무엇인가를 가르쳐야 하는 행위라고 흔히 오해합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은 종종 반교육적인 결과로 드러나기 쉽지요. 지식발달보다는 정서발달이 더 중요한 유아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고요.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아이가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유치원에서 무엇을 배웠냐고 물으시나요? 아이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것들을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그 아이의 배움을 빼앗지 말아야겠죠? 아래 소개드리는 시에서 처럼요.

(이 시는 제가 탐방했던 영국의 한 유치원 학부모게시판에 붙어있던 글을 한국 상황에 맞게 번역한 것입니다.)

 

 

오늘 유치원에서 뭐했니?

 

오늘 유치원에서 뭐했니?”

...만들기 영역에 가서 점토를 가지고 놀았어요.

손으로 밀어서 길게 만들었어요.

은교는 자기 것이 뱀이라고 했는데 제건 뱀이 아니에요. 제건 지렁이였어요.

누구 것이 더 긴지 짧은지, 누구 것이 더 뚱뚱한 지 날씬한지 이야기했어요.

엄마 있잖아요. 도연이는 점토를 책상 끝까지 길게 밀었어요.

 

그래, 근데 넌 뭘 했니?”

정글짐을 타고 올라갔어요.

엄마 있잖아요, 나 거기 끝까지 올라갈 수 있어요.

 

그래, 그래도 유치원에서 뭔가를 하지 않았니?”

종윤이랑 저랑 물감 놀이를 했어요. ~! 너무 재미있었어요.

손으로 만지면 끈적끈적하고 미끌미끌해요.

종윤이는 노란색을 가졌고, 저는 빨간색이었어요.

우린 손가락을 꾹꾹 찍으면서 패턴을 만들었어요.

노랑-빨강-노랑-빨강...

엄마, 주황색은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요?

 

그래, 그거 말고 다른 건 안했니?”

간식 시간에요, 제가 오늘의 도우미였어요.

제가 친구들 컵에 우유를 따라주고, 준우는 사과를 두 쪽씩 나누어줬어요.

 

그건 그렇고, 뭔가를 했을 것 아니니?”

모래판에 기다란 길을 만들었어요.

혜준이랑 그 길에서 누가 차를 빨리 굴리는지 시합을 했어요.

 

그래, 그거 말고 유치원에서 뭔가 하지 않았니?”

책 읽기 시간에 너무 피곤했어요. 그래서 선생님 무릎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야기책은 애벌레에 관한 거였어요.

엄마 있잖아요, 애벌레가 나비로 변했어요.

 

그래도 말이다, 유치원에서 뭔가 했을 게 아니냐?”

윤슬이 생일이어서 우리가 축하 노래를 불러줬어요.

케이크에 초가 몇 개인지도 세어봤어요.

 

아니, 그래서 뭘 했냐니까??!!”

그래서...선생님이 정리시간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얼른 수학 활동지 한 장을 했어요.

왜냐하면...오늘도 엄마가 유치원에서 뭘 했냐고 물어보실 줄 알았거든요.

 

※참고문헌

-Mary Hohnman & David Weikart (2002). Educating Young Children. HighScope Press.

-Jacalyn Post & Mary Hohnman (2000). Tender care and Early Learning. HighScope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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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욱·차상진
우리 시대 교육의 대안을 찾는 교육학자이자 학부모이며 교사이자 실천가. 하태욱은 교육사회학·교육정책·대안교육을, 차상진은 유아교육을 각각 전공했지만, 삶과 밀착된 교육, 아동중심적 교육관의 측면에선 같은 교육관을 갖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하태욱은 대학 강의와 더불어 대안교육연대와 대안교육학부모연대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교육적 대안 마련을 위해 뛰어다니고, 차상진은 아동의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배움을 강조하는 유아교육 프로그램 ‘하이스코프(www.highscope.org)’의 교사·학부모 교육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메일 : uktaeha@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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