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어머니의 비밀 창고

황덕상 2014. 09. 23
조회수 9238 추천수 0

05090194_P_0.JPG » 한겨레 사진 자료 <박미향 기자>

 

“어머니”보다 “엄마”가 여전히 더 입에 잘 붙고, 마음에 딱딱 와 닿는 건 아직 나도 철이 없어서 일까? 항상 어머니의 이야기를 풀어 갈 때는 마음 한구석이 아련한 것이 있다. 당신이 숨기고 싶으실 자잘한 이야기를 남들에게 풀었다가는 등짝을 한 대 맞을 것 같지만, 오늘은 지난 추석에 있었던 일을 한 가지 풀어낼까 한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여염집 아낙네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처럼, 고단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에서 자신의 일에 대해 애정과 책임감이 있으신 듯하다. 그래서인지 모처럼 들른 고향집에서 집안일을 도와드리려면 “그냥 두어라” 하시면서, “나중에 내가 정리 하련다” 하시며 말리시곤 한다. 물론 모처럼 고향집에 온 당신 자식이 좀 편안히 쉬다 가길 바라시는 마음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당신의 물건들이 타인에 의해서 재배치되길 원치 않으시는 점도 있을지 모르겠다. 부엌이나 당신의 방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이 주는 익숙함과 애정이 있을 것이다. 어찌 잘 설명해야 할 지 모르는 이런 느낌을 막연히 가지고 이해하고 있었지만, 지난 추석에는 정말 큰 결심을 해서 몇 년간 하지 못 했던 일을 행동에 옮겼다.

 

‘어머니의 비밀 창고를 개방하고 정리하였다’

“아핫하하하” 비밀 창고라고 하니 은근 기대하신 분은 실망하실지 모르겠다. 그것은 바로 20여 년간 이사 한번 안가고 계속 한자리에서 살았다면 어느 집이나 있을, 작은 방이나 베란다 쪽에 쌓여 있는 짐들을 꺼내서 열어보고 버리면서 정리하였다. 손이 닿지 않는 그 먼지 쌓인 창고를 정리하려고 하자, “당신이 나중에 치울거다”, “다 쓸 모 있는 것들이니 건들지 말아라”라며 만류하시기를 수년째. 물론 어머니는 청소도 깨끗하게 하셔서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하신다. 하지만, 세월의 탓을 해야 하나, 이제는 매일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정리가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는 추석 음식으로 늘어났을 것 같은 체중을 걱정하던 차에 베란다 창을 열고,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서 힘 좀 쓴 다음에야 앞쪽 베란다의 끝에 있는 창고 안까지 정리할 수 있었다. 그 비밀 창고 안에는 놀라운 것들이 많이 나왔다. 너무 오래 되어서 삭아버린 옷가지, 책, 냄비, 그릇 등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 좁은 공간에서 화수분처럼 세월의 흔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는 압력솥이 3개나 되었다. 그 중 하나는 그토록 찾으시던 솥이었는데, 못 찾으시고 결국 새 솥을 사셨다. 그릇들은 아들 장가가면 잔치해주신다며 켜켜이 옛날 달력으로 깨지지 않게 잘 쌓아서 상자에 보관해 두신 접시며 국그릇 밥그릇들이 나왔다. 4형제가 장가갈 때는 음식점에서 해서 그 그릇들은 처음 사셨을 상태 그대로 이다. 놀라운 건 사과상자 3개에 수건들이 고이 모셔져 있었다. 모두 기념품으로 받으신 수건인데, 전부 다른 날짜와 다른 행사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었다. 그 속에는 1988년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가 그려진 수건까지 나왔으니, 26년이 된 짐들이었다.


이런 짐들을 꺼내서 열어보고 하는데 추석 음식 준비에 고단하셨던 어머니는 옆에 앉으셔서 “그거 다 버리지 마라 나중에 쓸 거다”, “그거 다 비싼 돈 주고 산거니 아까운 거다” 하시며 불안한 마음을 보이셨다. 마치 당신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주셨다고 생각하셨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짐들 속에 쌓여 있는 수북한 먼지, 그 틈에 숨어 있었던 벌레들이 있었기에 부모님 건강을 위한다는 생각에 나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버지도 요즘 기침을 많이 하시는데, 그 베란다에 있는 숨어 있던 먼지들도 크게 한 원인으로 작용했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이 비밀 창고를 정리, 아니 대부분 버리는 작업을 혼자 아침나절에 시작했다가 둘째, 셋째 형까지 합류해서 같이 오후 늦게까지 분리수거 하고 나서 물청소까지 싸~악 해드리고 왔다.


부모님을 모시고 사시는 분들은 잘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님과 떨어져 사시는 분들은 이참에 꼭 부모님 댁의 구석구석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어르신들이 냉장고에 음식을 쌓아 두거나, 짐들을 정리 못하고 계속 보이는 곳만 치우다 보니 이제는 쓸모없는 짐들이 늘게 되는 것이다. 그 속에 먼지며 벌레가 생기게 되어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꼭 자녀분들은 확인하시고 정리를 해드리는 것이 어르신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비싼 영양제 사드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 일 것이다. 우리 몸도 어찌 보면 마냥 쌓아 두기만 하면 좋은 것은 아니다. 현대인들에게는 몸을 보하는 약의 개념도 바뀌고 있는데, 예전에 영양학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쓰이는 보약과 요즘 스트레스와 신체활동이 줄어든 사람들에게는 순환을 시켜주는 것이 오히려 훌륭한 보약이 되는 것이다.


추석이 지나고 돌아와서 처형을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니 처형도 시댁에 가서 냉장고 속에 있는 오래된 음식들 정리하느라 고생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 가정집에 있는 대형 냉장고 안쪽에는 수 일전에 남겨두었던 음식이 상한 채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연세 드신 노인들은 냄새를 잘 못 맡거나 시력이 떨어지셔서 상한 것을 구별 못하는 경우가 많이 생길 수 있다. 남에게 당신 물건들 맡기기 싫어하시는 어머니들의 이런 마음을 이해해서, 직접 함께 정리하고 버리는 일을 해야 한다. 바로 어르신들의 건강은 기본적인 주변 정리와 상하지 않은 신선한 음식들을 잘 챙겨 드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을 이제는 꼭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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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덕상
경희대 한방병원 교수, 한방부인과 전문의, 한의학 박사. 두 아들과 놀러가기 좋아하는 아빠. 삼대째 한의사의 길을 가고 있다. 달과 해, 바다와 산이 있는 것처럼 몸도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음과 양은 같은 것이 아니고 그 다름을 알아서, 각 특성을 살리는 자연스러움이 중요하다. 그래서 남자의 몸과 다른, 서양인과 다른 우리나라 여자에게 생기는 건강 문제를 치료하는 한의사이다. 국민체육21에 ‘바른 몸 이야기’ 칼럼 연재. KBS 아침마당 월요일 패널로 출연 중이다. 그의 수다는 베이비 트리에서도 계속 된다~ 쭈욱~
이메일 : soulhus@gmail.com      
홈페이지 : http://www.hanbangm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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