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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육아를 부탁해] 공부 공화국 대한민국, 부모는 자식으로 산다

양선아 2012. 08. 22
조회수 13265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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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대한민국 부모 

대한민국 부모.jpg 이승욱 신희경 김은산 지음Ⅰ문학동네 펴냄·1만4000원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찢어졌다. ‘이 시대 대한민국 어딘가에는 이렇게 마음이 아픈 아이들과 부모들이 있구나’‘학교가 학교답지 않은, 가정이 가정같지 않은 대한민국이 과연 희망이 있을까’ ‘이런 것이 내게 곧 닥쳐올 현실인가’하는 생각등으로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정신분석가, 교육심리학자, 하자작업장학교 교사 출신 3명의 지은이가 함께 쓴 <대한민국 부모>(문학동네 펴냄)는 대한민국 부모와 아이들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저자들이 만나고 경험한 부모와 아이들의 생생하고도 내밀한 얘기를 읽고 있노라면 한없이 슬퍼졌다. 대한민국에서 자식을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서평 쓰는 것을 미뤄왔던 것은 아마 그 절망스런 상황들을 다시 되새김질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모르겠다.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현실, 그러나 직시하고 바꿔가야 하는 현실, 바로 그것이 이 책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아직 5살, 2살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로서는 좀처럼 이해도 되지 않고, 상상도 잘 안되는 대한민국 부모들의 행태,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과 사회 시스템이 너무 무섭고 두렵기만 하다. 책에 등장하는 ‘끔찍한 부모’‘시스템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단단히 내 마음의 고삐를 다잡아겠다는 생각도 했다.
 
 
저자들은 책에서 “대한민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면 적어도 한두 가지 정도 정신병리적 증상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정상이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 자신의 감정,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부모의 욕망에 따라 ‘공부 잘하고 돈 잘 버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라고 말한다. 상담실을 운영하는 저자들은 성적과 학업 스트레스로 상담실을 찾는 아이들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고, 증상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고발한다. 
 

공부 스트레스.jpg » 한겨레 자료사진

 

언제가 지인이 “요즘은 중학교 2학년만 돼도 어느 대학갈 지가 결정된대. 그래서 부모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입시 교육에 매달린다는거야. 중학교 2학년 때 모든 것이 결정되니까”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그게 정말 사실일까 아니면 그저 소문일까?’‘어떻게 한 아이의 능력과 가능성이 중학교 2학년 때 결정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해?’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지인의 말이 사실인지 여부를 떠나서, 이 책에 등장하는 부모들의 행태를 보면 ‘세상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의 불안을 짐작할 수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민희(가명)는 특목고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영재학원에 다닌다. 민희는 성적 스트레스로 학원에서 시험보는 날이면 배가 아프고, 또 학원 다닌 지 6개월 만에 입을 씰룩거리는 틱 증상이 나타났다. 과학 만화책을 좋아하고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초등학교 5학년 세환이는 창의력 수업 숙제를 내주는 영재학원에 다니다 과학에 대한 흥미를 잃고 복통과 틱 증상을 겪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재혁이는 밤에 혼자 공부를 하다보면 귀에서 ‘히히히’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엄마에게 무서움을 호소한다. 성적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환청과 환시 증상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들에게 엄마는 “정신을 집중해서 공부에만 몰두해봐. 그런 쓸데없는 공상은 하래도 못 하지.”라고 하며 공부하기 싫으니 핑계를 댄다고 했단다.
 


이외에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공부만 외치는 부모에 대한 반항심으로 임신을 한 아이, “아, 몰라”“귀찮아. 졸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무기력한 아이, 미국 아이비리그에 진출했지만 친구들과 아무런 정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아이,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가치, 욕구는 한번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하고 부모가 정한 목표대로만 살아 속이 텅 빈 아이, 엄마를 ‘미친년’ 아빠를 ‘찌질이’라고 부르는 아이까지 이 책에는 다양한 ‘문제적 아이’들이 등장한다.
 
 
그러면 이런 ‘문제적 아이’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저자들은 책에서 “아이는 부모의 증상이다. 부모의 문제로 증상을 나타내고 고통을 받는 아이는 바로 아이다. 상담실을 찾는 아이들을 통해 우린 아이의 고통뿐만 아니라 부모의 문제, 가정의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사회적으로 성공시켜야만 좋은 엄마로 인정받는 사회, 가정에서 개보다 못한 서열로 돈을 잘 벌어 사교육을 잘 시켜줘야만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인정받는 사회. 이런 대한민국이 많은 엄마와 아빠를 ‘문제적 부모’로 만든다. 아내나 남편이나 모두 자식을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고 성공시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고통을 감내한다. 그리고 부부끼리 서로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투정하고 억울해한다. 그러면서 가족에게 필요한 정서적 유대감은 사라진 채 남편과 아내는 외도를 하면서 또는 술에 취해 빈 껍데기같은 가정을 유지한다.
 

입시 설명회.jpg » 입시설명회에서의 부모와 아이들. 한겨레 자료사진

 

‘돈’과 ‘빽’이 있어야만 생존가능하고 사람대접 받는 한국에서 부모들은 자식에게 자신의 삶을 대물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빌 언덕 없는 부모들이 대학에 목숨을 건다. 중산층 부모는 아이가 자신만큼 살지 못할까봐, 중하층 부모나 저소득층 부모는 아이가 자신처럼 살까봐 대학에 목숨을 건다. 그러나 막상 대학을 가더라도 해결되는 것은 없다. 고졸자의 80%가 대학진학을 가고, 대학생이 졸업 뒤 대기업 정규직에 취직하는 비율은 1.6퍼센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고 부모고 대학에 입한한 뒤에는 취업이라는 또다른 어려운 관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저자들은 대한민국 부모가 불행한 이유에 대해 “복지나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과 학력은 서민들에게 생존을 위한 보험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돈’과 ‘빽’으로 움직이는 제도와 시스템이 문제인데, 제도와 시스템 변화에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많은 부모들이 제도나 시스템에 순응해 이렇게 문제가 커졌다고 진단한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비민주적 행태들,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부당한 것들에 대해 부모들마저도 막상 혼란스러워하며 순응하며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안한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저자들이 대한민국 부모가 갖는 문제들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고민했고, 얼마나 다차원적으로 분석하려 했는지 그 노력들이 엿보인다.
 
 
저자들은 부모들에게 주문한다. 부모가 먼저 자식에게서 독립하고, 부모가 먼저 자신의 삶과 마주해보라 조언한다. 부모 스스로 “너는 나처럼 살지 말라”라고 스스로를 부정하는데 그런 말을 거두고 자신의 삶을 먼저 인정하고 자신의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라 말한다.
 
 
그리고 교육이란 경쟁력이 아니라 서로 도와가며 함께 배우는 것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학교는 입시를 위한 학원이 아니라 진정한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대의식과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배우는 곳이 학교여야 하고, 그런 교육과 삶의 방식을 부모 스스로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가슴이 울리는 문구들이 많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밑줄 그은 부분이 많았다. 저자들의 진정성과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책이다. 나는 어떤 부모이고자 하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가, 내가 중시하는 가치는 무엇이고 나는 어떤 삶의 가치를 아이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어하는가, 나는 다른 사람들과 연대해 어떤 사회를 꿈꾸고 그리고 있는가 등등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아이들 삼키는 ‘포식자’…부모의 두 얼굴

 

앞에서는 ‘엄마’로 불리고 뒤에서는 ‘미친년’이라 씹힌다. ‘아빠’는 친구들끼리는 ‘찌질이’로 통한다. 대한민국 부모들의 두 이름이다. 일부 삐딱한 문제학생들만의 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예 부모를 떠나는 아이들도 있다. 고액과외 받으며 좋은 대학에 가고 모두 선망하는 직장에 들어간 딸은 어느날 문득 여름휴가를 간다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을 찾고 싶으니 당분간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 기어이 의사로 만들었더니 “당신의 아들로 산 것은 지옥이었습니다. 저를 다시는 찾지 마십시오”라는 문자메시지만 남기고 떠난 아들도 있단다.
 

<대한민국 부모>는 한국 사회의 희생자이자 아이들을 삼키는 포식자인 대한민국 부모의 두 얼굴을 그린 책이다. 이렇게 말하면 불공평할지도 모른다. 엄마는 직장도 포기하고 아이에게 매달렸다. 학원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육아책·교육책도 읽고 감정코칭도 배우며 ‘공부하는 엄마’가 되려고 한다. 아버지는 모욕을 참고 직장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쓴다. 아이들과 대화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책은 “부모들은 정작 자신의 마음을 희생하지 않는다”고 진단한다. 마음을 희생하는 것은 무엇일까? 책에 따르면 “아이의 마음을, 삶을, 욕망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란다.
 
지금 성적만 두고 아이를 닦달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그러나 어른이 되지 못한 부모들이 무엇을 위해서인지도 모르고 ‘아이를 위해’ 희생제를 치르는 일이 너무 많다. 정신분석가, 교육심리학자, 하자작업장학교 교사 출신 3명의 지은이가 쓴 이 책은 엄마의 집착에 무기력으로 대응하는 아이에게서 부모들의 결핍과 공허를 읽는다. 어머니는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실은 아이를 자기 속에 집어넣어 마음대로 요리하려는 포식자다. 아버지는 일 중독자 같지만 실은 어머니 뒤에 숨는 무능력자다. 망가진 대한민국 가족의 모습에 ‘아이는 부모의 증상’이라는 경구가 겹친다.
 
필요한 것은 누구네 공부비법이나 내 아이만을 위한 소통이 아닐지도 모른다. 책은 먼저 부부관계를 회복하고 밖으로는 연대의식을 가질 것 등을 당부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부모들의 각성을 위해 프랑스 68혁명의 슬로건이 동원된다. “비현실적이 되자. 그래야 가능해진다.”
 
남은주 <한겨레21> 기자 mifoco@hani.co.kr

* 이 서평은 지난 6월16일자 <한겨레> 책면에 게재된 기사인데, `베이비트리' 독자분들이 다시 보셔도 될 것 같아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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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페이스북 : anmadang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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