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보면서 엄마의 꿈을 꾸지 마세요"
(6) 기다리는 부모가 아이를 꿈꾸게 한다
이영미 지음ㅣ와이즈베리·1만4000원
많은 육아서에서는 부모가 아이들과 소통을 잘 하고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는 법에 대해 알려준다.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은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며 아이의 감정을 잘 읽고, 아이에게 공감해주라고 말한다. 또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기다리는 부모가 아이를 꿈꾸게 한다>라는 책 역시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아이를 행복한 아이, 꿈꾸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에 대한 지은이의 고민을 담았다. 그러나 이 책은 독자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또 관계 맺는 법에 대해 기술적인 방법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독자가 틀렸다라고 말하는 대신 실제 자신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딪힌 수많은 일들을 통해 진정으로 아이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저 보여준다. 또 지은이가 어렸을 때 부모와 있었던 일로 자신이 어떤 마음의 상처들을 입었는지 솔직하게 말한다. 지은이의 경험과 삶이 녹아든 글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때로는 눈물을 그렁그렁하게 만든다.
지은이 이영미씨는 과학 교사다. 그러나 국어 교사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그의 글에서는 섬세하고 풍부한 감수성이 느껴진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무척 좋아했던 그는 사춘기 시절 어느 에세이에서 “…어머니와 함께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9번 E-flat major K.271>을 들을 때…”라는 구절을 읽고 엄마 생신 선물로 그 곡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샀을 정도다. 그런데 그 선물을 본 엄마가 “이거 살 돈 있었으면 군만두나 한 통 사오지. 엄마가 만두 좋아하는 거 알면서”라고 말해 심하게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그는 엄마가 보는 앞에서 정신없이 테이프를 잡아당겨버리고, 그 뒤론 만두를 먹지 않는 사람이 됐다고 고백한다. 그에게는 엄마와 관련된 또 다른 슬픈 에피소드도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집안에서 큰 그는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수학여행을 간다는 가정통신문을 본 엄마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안 가면 안 되겠니?”라고 말했다. 수학여행을 못가는 것은 그에게 그냥 단순히 여행을 못 가는 것이 아니었다. 반 이름과 반 구호를 정하는 일에도, 반가를 만드는 일에도,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일에도, 같은 방에서 잠잘 조를 짜는 일에도 그는 철저하게 배제당했다. 친구들에게 ‘이방인’이 돼야 했던 그때 그 가슴 아픈 추억이 그에게는 오랫동안 상처로 남았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그가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이 됐을 때 형편이 안돼 수학여행을 못 보낸다는 엄마들을 설득해 38명의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수학여행을 간다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렇듯 그는 부모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고 그것을 객관화한다. 그리고 상처받은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과정을 통해 좋은 부모란 어떤 부모일까를 많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그런 고민의 바탕에 또 책 속에 기록돼 있는 수많은 독서를 바탕으로 자식을 어떻게 키울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지은이에게는 두 아이가 있다. 큰아이 예슬이와 작은아이 정빈이. 언니와 동생은 7년 간의 터울이 있고, 지은이는 둘째 정빈이를 낳기 전 두 아이를 유산했다. 7년 만에 얻는 정빈이는 선천성 심장병을 안고 태어났다. 3월에 태어난 정빈이는 8월에 병원에 입원해 큰 수술을 받아야 했고, 지은이는 정빈이를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렇게 몸이 아픈 아이를 키우는 그이기에, 자식을 죽음의 문턱까지 보내본 그이기에, 그는 자식이 내 옆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단다. 그러면서 그는 “아이가 무얼 하고 싶어하는지, 무얼 말하고 있는지 눈 맞추고 귀 기울여 들어주자”고 말한다. 많은 엄마들은 아이를 알고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하기보다는, 아이에게서 자신의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저 이 아이가 얼마나 똑똑하고 얼마나 장래성이 있을까 하는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는 첫째 예슬이가 한글을 떼지 못하고 초등학교를 들어가도, 구구단을 4학년이 다 되어서 외워도 결코 조바심 내지 않는다. 그는 예술이가 엄마가 퇴근해 들어오면 힘들다고 설거지를 해주고, 멋지게 케이크를 구어낼 줄도 알고, 시골 할머니댁에 갔을 때 연로하신 할머니 힘드실까봐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할 줄 아는 멋진 아이라 말한다. 만화를 좋아하고 맛있는 것을 실컷 먹고 배부르게 자는 것이 제일로 행복한 정말 아름다운 아이라 말한다. 남들이 “너무 늦는 것 아니냐”라고 말해도 이렇게 아름답게 행복하게 잘 크고 있는 아이가 왜 늦냐며 반문을 제기한다.
이 책을 읽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읽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한줄 한줄 의미를 생각하며 읽어갔기 때문이다. 또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꼭꼭 씹어 내 것으로 소화하고 싶었다. 피가 되고 살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스스로를 ‘모성애결핍증 환자’라 말하고 ‘모성애결핍증 환자의 아이키우기’라는 블로그를 통해 수많은 부모와 고민을 나누는 그는 진정으로 ‘육아 멘토’다. 박선미 님의 ‘비상구’라는 시에서 나오는‘바깥에선 열리지 않아도 안쪽에선 언제나 쉽게 열려야 한다지’구절처럼 아이가 열고 싶을 때 열고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는 그는 많은 부모들에게 좋은 부모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또 책 속에 소개하고 있는 ‘책 속의 책’들은 독서 욕구를 자극하고, 좋은 책 리스트에 추가해도 손색이 없는 책들이었다.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되는 책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베이비트리 책읽는부모의 <기다리는 부모가 아이를 꿈꾸게 한다> 서평]
· 지금 행복한 아이라면, 훗날도 행복하겠지 /onlyseotaiji
· 아이를 위해 기다려줄 수 있는 마음이 여유로운 부모가 되어야지 /corean2
· 스스로의 일상을 돌아보는 시간이 된 책^^ /624beatles
· 기다림의 미학.. 그 어려움 /guibadr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