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나, 꽃으로 태어났어

정봉남 2016. 11. 17
조회수 4732 추천수 0
사람들은 잘 모른다. 비밀의 정원을 거닐 때면 “어디서 이런 향기가 나요?” 묻곤 하는데 바람결에 실려온 향기의 정체는 바로 금목서다. 도서관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마당의 회랑 너머 왼편엔 소나무, 오른편엔 금목서가 아름답게 자라고 있다. ‘기적은 시작된다’는 표지석이 있는 소나무는 개관기념 식수, 개관10주년 기념으로 심은 금목서 아래엔 ‘나무를 적시는 이슬처럼’이라는 돌이 놓여있다. 가끔씩 이 뜻깊은 나무 그늘에 기대어 도서관을 만들고 가꾸어온 옛 사람들을 생각한다.   
크기변환_20161113_101013-1.jpg » 순천 기적의도서관 13살 생일 축하 메모들. 사진 정봉남.
며칠 전 도서관이 열세 살 생일을 맞았다. 아이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셈이고, 내년이면 중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었으니 지나온 시간들이 더없이 감격스럽다. “어린이와 도서관을 사랑하는 당신이 소중합니다.”는 이름으로 초대장을 만들고, 함께 모여 생일을 축하했다. 아이들은 입구에 세워둔 안내판에 또박또박 쓴 쪽지를 남겼다. 작은 선물을 붙여둔 아이도 있었다. 도서관의 꽃인 ‘어린이사서’들은 어른들에게 시를 들려주고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크기변환_1479030640057-1.jpg » 아이들이 순천 기적의도서관 13살 생일 축하 메모를 붙이고 있다. 사진 정봉남.
“책이 재미있어서 좋아요. 도서관 생일 축하해요” “기적의도서관아 사랑해. 저번에 놀러 왔었지? 자주 올게♡ “내가 커서도 없어지지 않고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있어줘. 내 딸 아들도 여기 기적의도서관에 같이 와 볼 수 있게. 사랑해.” “우리 기적의도서관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100번째 생일까지 기다릴게요. 사랑합니당~” 아이들의 목소리에서 힘을 얻는다.  
크기변환_1479031859823.jpeg » 순천 기적의도서관 13살 생일 축하 파티. 사진 정봉남.

도서관 생일 기념으로 나는 작은 꽃다발을 수놓았다. 해마다 한 송이씩 꽃을 늘려간다. 함께 한 시간들이 꽃으로 피어나는 것만 같다.  
 크기변환_1479031837993.jpeg » 수놓은 작은 꽃다발. 사진 정봉남.
 나, 꽃으로 태어났어요.
 따스한 햇살을 받고 따스한 기운을 나누며 살아가요.
 알록달록 꽃들과 어우러지면 더욱 아름답게 빛나지요.

 난 사람들을 가깝게 이어주고 사랑을 전해주기도 해요.
 아이들의 머리를 예쁘게 꾸며주고 어른들의 마음을 흥겹게 해주지요.
 세상과 나누는 마지막 인사에도 함께하고요.

 난 가녀리고 연약하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이겨 냅니다. 

팝업 그림책 <나, 꽃으로 태어났어>를 펼쳤을 때 마음이 얼마나 환해졌는지, 그 순간의 떨림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발견하다니! 좋은 날 꽃다발을 가슴에 안은 것처럼 행복했다. 소중한 이에게 꽃 한 송이 대신 이 책을 안겨주어도 좋으리라. 글의 여운, 감각적인 색감, 절제된 드로잉, 섬세한 종이 공예, 책을 세워서 펼치면 ‘병풍 책’이 되는 매력까지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주 작은 무당벌레는 어디에 숨었을까 찾아보는 재미도 놓치면 아깝다.  
5_8949119072_01.jpg » 그림책 <나, 꽃으로 태어났어>. 사진 정봉남.
여린 꽃 한 송이가 세상에 피어나 기쁨과 감사로 삶을 노래하고, 지나온 생의 모든 순간 인내와 헌신으로 사람들을 돕는 것처럼, 일상의 평화가 넘치는 도서관에서 아이들은 자라고 꽃 같은 아이들과 더불어 도서관은 나이테를 늘려간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어린이도서관다운 꿈 잃지 않고 천천히 나아갈 것이다. 순정한 마음으로 작은 일에도 정성을 들일 것이다. 아이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응원하면서 어떻게 도울까를 고민할 것이다. 여기 오는 누구라도 반갑게 맞아주고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5_8949119072_02.jpg » 그림책 <나, 꽃으로 태어났어>. 사진 정봉남.  
“사랑이 뭐냐고 네가 물었지/책 속에서/사랑이라는 말 보고/사랑이 뭐냐고 네가 물었지//아가 사랑이란/이렇게 함께 걸어가는 거란다/멀리 떠나가면/보고 싶은 것/그것이 사랑이란다/아프면/어디 아파?/어디 아파?/걱정하는 것/그것이 사랑이란다/아이 사랑 참 좋아//네가 말했지/사랑 좋아 참 좋아” (고은 동시집 <차령이 뽀뽀> 가운데 ‘사랑’ 전문)

어린이사서들이 들려준 시를 가만가만 읊조려본다. 사랑이 아니라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5_나 꽃으로 태어났어.jpg
<나, 꽃으로 태어났어> 엠마 줄리아니 글 ‧ 그림 / 비룡소

크기변환_20161110_163034.jpg » 순천 기적의 도서관 13살 생일 파티. 사진 정봉남.
크기변환_20161110_162055.jpg » 사진 정봉남.
크기변환_20161110_161504.jpg » 사진 정봉남.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정봉남
순천기적의도서관 관장.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우는 사람입니다. ‘책읽는 공부방 만들기’ 수퍼바이저로 일하며 외롭고 힘든 환경의 어린이들에게 좋은 책을 전하고 마음 다독이는 일을 해왔습니다. 광주광역시 최초의 민간 어린이도서관인 ‘아이숲어린이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했고, 복합문화공간인 ‘책문화공간 봄’을 만들어 작은도서관운동, 마을가꾸기, 지역사회 문화예술교육에 힘써 왔습니다. 쓴 책으로 <아이책 읽는 어른>이 있습니다. 현재 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 이사, 북스타트 코리아 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메일 : 1miracle@korea.kr      

최신글




  • 무대도 객석도 더불어 얼쑤무대도 객석도 더불어 얼쑤

    정봉남 | 2017. 11. 28

    해마다 추수하는 가을 무렵, 동네 사람들이 모여앉아 옛이야기 한마당을 펼친다. 웃기고 오싹오싹하고, 신비롭고 이상하고, 지혜가 쏙쏙 나오는 이야기를 듣는 맛이 쏠쏠하다.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구성지고,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

  • 부모학교부모학교

    정봉남 | 2017. 10. 23

    도서관에 오는 엄마들은 젊고 의욕적이다. 아이 교육에 관심이 높아 학교 일이나 학부모 모임, 좋은 정보 찾기에 열정을 쏟는다. 아기 짐 보따리 하나씩 거뜬히 들고서 도서관의 행사나 프로그램에 부지런히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을 잘 키...

  • 가을에 읽으면 좋을 동시집가을에 읽으면 좋을 동시집

    정봉남 | 2017. 09. 05

    아침부터 아이들이 웅성웅성 별관 뒤쪽을 바라보며 모여있었다. 무슨 일이야? 약속한 듯 모두들 목소리를 낮추어 새끼 고양이가 태어났다고 알려준다. 두 손을 모아 눈썹에 붙이고 바라본 유리창 너머로 아기고양이 세 마리가 엄마 젖을 먹고 있었...

  • 꼬마 텃밭 농부의 기적꼬마 텃밭 농부의 기적

    정봉남 | 2017. 07. 03

    어느새 마당에는 봉숭아 꽃들이 활짝활짝 피어서 손톱에 물들일 날들을 재촉한다. 블루베리가 예쁜 종 모양으로 열매를 매달고, 옥수수도 수염을 흩날리며 알이 배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자리마다 벌들이 윙윙, 민들레와 토끼풀이 초록 잔디 사이에...

  • 아이들이 만든 '기적의 꽃 평상'아이들이 만든 '기적의 꽃 평상'

    정봉남 | 2017. 06. 01

    책나라 입구에 있는 소파가 오래되었다. 십 년 넘게 아이들의 엉덩이를 받쳐주다 이음새가 부러지고 속을 채운 스펀지도 빠져나왔다. 사서 데스크 바로 옆이자 정기간행물 서가 앞, 신간도서 코너를 끼고 있는 곳이어서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