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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삶의 질’인데…정치권은 아직도 ‘출산, 얼마면 되겠니’

베이비트리 2018. 12. 07
조회수 1347 추천수 0
겉도는 저출산 대책 

‘국가가 출산 강요’ 정책 방향 접겠다 외쳤지만
정부·국회·지자체 단발성 ‘엇박자’ 

한부모 가족 복지시설 지원금 삭감 논란에다 
출산장려금 250만원 예산안 ‘없던 일로’
저출산위, 오늘 새 기본계획 발표 
한국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수준이다. 경기도 일산의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에 비어있는 침상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윤운식 기자
한국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수준이다. 경기도 일산의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에 비어있는 침상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윤운식 기자

“이런 지원도 못 받으면 우리한텐 낭떠러지밖에 없어요.” 서울 용산구의 한 한부모복지시설에 살면서 여섯살 난 딸을 키우는 이선미(가명·43)씨는 가끔 혼자 절벽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부모복지시설에서 아이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신규사업 예산 61억3800만원을 삭감해야 한다는 논란이 최근 국회에서 불거졌을 때도 그랬다. 불쑥 몹쓸 생각이 또 떠올랐다. ‘내가 이렇게 어렵게 키우느니, 우리 애를 키워줄 더 나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딸에게 들킬세라, 이씨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삼켰다.

아이를 낳은 뒤 이씨는 연봉 2400만원이던 정규직 일자리를 그만두고, 콜센터에서 시간제로 일한다. 하루 6시간 근무하고 월 100만원 남짓 받는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장 먼저 등원했다가 가장 늦게 하원한다. 아이 맡길 곳만 있으면 전일제로 일하고 싶다. 이곳에 거주하는 다른 엄마들도 어린이집 교사, 간호조무사, 손톱관리사 등으로 일하며 아등바등 아이를 키우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이돌보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긴 하지만, 연간 480시간(월 40시간)에 그치는데다 월 비용 7만~8만원조차 한부모 가정에는 부담스럽다. 시설에 아이돌보미를 파견해 여러 아이를 함께 돌보는 비용을 정부 예산으로 신규 편성한 까닭이다.

“모든 걸 국가가 책임지는 것은 곤란하다.” 지난 11월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관련 예산 전액 삭감을 주장하며 송언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 말이 알려진 뒤 이씨는 한부모 인터넷카페에서 진행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참했다. ‘출산 장려는 하면서 한부모 가정 아이들은 이 나라 국민이 아닌가보죠’ ‘우리 애들 고아원 보내야겠네’ 등의 서러움 섞인 글들이 올라왔다.

자유한국당이 ‘출산주도성장’을 강조하면서 뒤로는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예산을 깎는다는 비판에 송언석 의원은 결국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공개 사과했다. 그런데 특정 국회의원이나 자유한국당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저출산 대책에서의 엇박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내년 10월부터 산모에게 ‘출산장려금 250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을 담은 보건복지부 예산안을 의결했다. 자유한국당의 강한 요구에 더불어민주당이 타협해준 셈이었다. 여당 안에서도 ‘출산장려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결국 6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합의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출산장려금은 빠졌다. 대신에 두 당은 “저출산 극복을 위해 연구용역 등을 통해 출산장려금, 난임치료 확대 등 출산 지원제도의 획기적인 발전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대통령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저출산 패러다임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당이 돈을 줘서 아이를 더 낳게 하겠다는 발상에 기반한 복고적인 ‘출산장려정책’에 합의한 것은 코미디도 아니고 굉장히 무책임한 일이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차라리 그 돈으로 국공립 유치원 등 보육시설을 늘리거나 아동수당을 더 많이 주는 편이 낫다”고 비판했다.

한국은 세계에 유례없는 초저출산국이다. 2002년 이후 줄곧 합계출산율(만 19~49살 가임기 여성 한 사람당 출산하는 평균 아이의 수)이 평균 1.3명 밑이다. 심지어 올해 2~3분기 합계출산율은 1명에도 못 미치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저출산으로 고령인구 비중 증가, 노인 부양비 증가, 지방 인구 소멸 등이 심각해질 것이란 위기감이 널리 퍼졌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시행됐고 이후 ‘저출산 대책’이라는 이름 아래 예산 136조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출산율 하락은 멈추지 않았다. 이르면 2020년 연간 신생아 수가 30만명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 한국은 또 다른 의미로 ‘저출산의 덫’에 걸려 있다. ‘인구 쇼크’라며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들이 팔을 걷어붙였지만 백약이 무효하다는 무력감 탓이다. ‘저출산 현상 지속→국가 위기→출산율 반등 필요’라는 단순 논리로 움직여온 정부 정책의 실패였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12월 저출산 문제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했다. 국가가 개인에게 출산을 강요해온 기존 정책 방향 대신 아이를 낳아 키우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5년마다 새롭게 짜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 출산율 목표치도 없애기로 했다. “저출산은 한국 사회 여러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원인을 해결하려 무엇을 해야 할까. 노동시장에서 성평등을 실현하고 삶의 질을 높여야 아이를 낳고 싶은데도 못 낳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양난주 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의 말이다.

국민의 생각도 비슷하다. 지난 10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만 19~69살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 한 결과를 보면, 저출산 정책의 방향을 ‘출산 장려’에서 ‘국민 삶의 질 제고’로 전환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93%로 압도적이었다. 찬성한 응답자(930명)들은 ‘일·생활의 균형’(23.9%) ‘주거 여건 개선’(20.1%) ‘사회적 돌봄체계 확립’(14.9%) 차례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꼽았다. ‘출산 지원’(13.8%)은 네번째에 그쳤다.

그런데도 여전히 국회나 정부, 지자체들의 ‘패러다임’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분위기다. 한부모 가정 지원이나 출산장려금 논란이 단적인 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6일 예산안 합의문에도 ‘저출산 극복’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안팎에서는 저출산을 ‘극복’이 아니라 ‘적응’의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관성적인 정책과 사업도 그대로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20일 ‘지방자치단체 저출산 극복 우수시책 경진대회’를 열었다. 임신·출산과 관련한 이벤트나 현금성 지원이 우수한 정책으로 뽑혔다. 행안부는 2016년 12월 지자체의 저출산 극복 노력을 홍보하겠다며 누리집에 가임기 여성 수 등을 표시한 ‘대한민국 출산 지도’를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3년마다 실시하는 ‘전국 출산력 및 가족 보건·복지 실태조사’도 올여름 도마에 올랐다. 국가가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바라보는 ‘출산력’이라는 용어를 쓴다는 것에 여성들은 새삼 분노했다.

출산에 대한 사회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데, 법과 제도·정책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저출산 대책’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성평등, 아동 발달, 가족과 인구 구조의 변화 등 복합적인 목표 아래 가족정책 또는 사회보장정책을 시행할 뿐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처음 만들어질 때만 해도 공식 명칭은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였다. 저출산을 강조하기보다 미래 사회에 방점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안팎에서는 ‘삶의 질 위원회’나 ‘고령사회와 인구정책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자는 제안도 나온다. 7일 정부는 2020년까지 적용될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새롭게 재편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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