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고개 넘어 백 넘어

조영미 2013. 02. 08
조회수 7127 추천수 0
만 6년 8개월 경, 유치원을 마감하고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해님이는 학교 갈 준비가 한창이다. 같은 유치원을 다닌 누구는 자기 이름을 쓸 줄 안다면서 자기도 이름을 쓸 줄 알아야겠다고 한다. 자기 전에 엄마에게 가르쳐 달란다. 커다란 스케치북에 노란 색연필로 이름을 커다랗게 써주니 그 위에 파란색과 빨간색 색연필을 섞어가며 따라 쓴다. 목걸이용으로 나온 지하철 정기 승차권도 마련한다. 지하철 타러 갈 때마다 꼬박꼬박 챙겨 든다. 

저녁에 거실에서 지하철 정기권을 목에 걸고는 시계추마냥 정기권을 흔들흔들 거리고 논다. 정기권이 오른쪽 왼쪽 움직일때마다 그에 맞춰 하나, 둘, 셋, 넷 하면서 세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 어디까지 세나 궁금하다. 마흔아홉까지 센다. 마흔아홉까지 오려면, 넘어야 할 고개가 여럿 있다. 스물, 서른, 마흔! 그 고개를 모두 스스로 넘는다. 마흔아홉에서 그 다음 고개를 넘으려니 막힌다. 

“엄마, 마흔아홉 다음이 뭐야?”
“응, 쉰.” 
아이가 이어서 센다. “쉰일, 쉰이, 쉰삼, 쉰사, 쉰오, 쉰육, …쉰구”

아까는 하나둘셋으로 세더니 금세 일이삼으로 바뀌었다. 
어찌되었든지간에 아이가 새로운 고개에 다다랐다. 

“엄마, 쉰구 다음이 뭐야?”
“응, 예순.”
“예순하나, 예순둘, 예순셋, …, 예순아홉”. 

이제는 또 다시 하나둘셋으로 돌아왔다. 
또 새로운 고개가 나타났다. 

“엄마, 예순아홉 다음이 뭐야?”
“응, 일흔.” 
아이가 이어서 센다. “일흔하나, 일흔둘, 일흔셋, …, 일흔아홉” 

또 새로운 고개가 나타났다. 

“엄마, 일흔아홉 다음이 뭐야?” 
“응, 여든.”
아이가 이어서 센다. “여든하나, 여든둘, 여든셋, …, 여든아홉”

또 새로운 고개가 나타났다. 

“엄마, 여든아홉 다음이 뭐야?”
“응, 아흔.”
아이가 이어서 센다. “아흔하나, 아흔둘, 아흔셋, …, 아흔아홉” 

이때까지 아이는 손으로 지하철 정기권을 시계추마냥 양쪽 옆으로 흔들면서 센다. 몸도 거실을 왔다갔다 한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엄마는 “아흔아홉 다음이 뭐야?”라는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 아흔아홉 다음이 백이야?”
답을 알고 말한다. “응!!!” 

아이가 이어서 센다. 
“백일, 백이, 백삼, 백사, 백오, 백육, 백칠, 백팔, 백구” 
백을 넘어선 세기에서는 하나둘셋 대신에 일이삼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새로운 고개가 나타났다. 
“엄마, 백구 다음이 뭐야?” 
답 대신에 엄마는 질문을 던진다. 
“구 다음이 뭐였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적용해 유추해 볼 기회를 아이에게 마련해 주는 것이다. 
아이가 답한다. “십…(백구 다음이) ‘백십’이야?”

그렇다고 하자, 계속해서 세기가 이어진다. 
“백십, 백십일, 백십이, 백십삼, 백십사, 백십오, 백십육, 백십칠, 백십팔, 백십구” 
새로운 고개가 나타났는데 아이가 질문을 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백이십”한다. 아마 ‘십 다음이 뭐였지?’라는 물음을 떠올렸으리라. 
“백이십일, 백이십이, 백이십삼, 백이십사, 백이십오, …” 
매고개마다 조금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서는 ‘백삼십, 백사십, 백오십, 백육십, …’을 찾아낸다.

정말 계속 된다. 세면서 아이의 손에서는 여전히 지하철 승차권이 목에 걸린 채로 오른쪽 왼쪽을 한 번씩 왔다 갔다 한다. 몸도 거실을 왔다갔다 한다. 언제까지, 어디까지 세려나? 
“백구십, 백구십일, 백구십이, …백구십구” 

새로운 고개가 나타났다. 
“엄마, 백구십구 다음이 뭐야?”
“응, 이백” 
아이가 이어 센다. 
“이백일, 이백이, 이백삼…” 
아이의 세기는 ‘이백칠십삼’까지 이어졌다. 

그러고 나서 하는 말, 
“아휴, 이젠 힘들어서 못 세겠다!” 

손으로는 지하철 정기권을 이쪽저쪽으로 튕기면서, 동시에 몸은 거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입과 머리로는 수 세기 안에 들어 있는 반복된 리듬을 즐기는 모습이 역력하다. 손이나 몸을 함께 움직이면서 수 세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수 세기가 머리 하나로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만약 아이가 가만히 혼자 앉아 수를 세는 상황이었다면 과연 '이백칠십삼‘까지 자발적으로 셀 수 있었을까? 

025_100넘은 수세기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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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미
현재 공주교육대학교 초등수학교육과 교수로 있으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에서 교육학(수학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연과 함께, 스스로 피어나는 교육’을 추구하는 15년제 대안학교 "꽃피는학교"의 유치과정과 초등과정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아이들의 생활 속에서 열심히 ‘수학’을 찾아보는 취미를 갖고 있다.
이메일 : ymcho@gj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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