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엄마표 수학이야기

조영미 2013.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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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는 생일날이 되면 그 아이의 탄생 이야기를 듣는다. 아이들이 낮잠 자기 전에 잠깐 옛날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늘 있는데, 그 시간에 가급적이면 부모가 직접 와서 아이들에게 생일 맞은 아이의 탄생 이야기를 들려주도록 한다. 
처음 유치원에서 아이의 생일을 맞던 날, 선생님의 부탁에 난감했다. 아이들에게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그것도 책 없이! 무척 걱정이 되었다. 선생님이 “그냥 아무 이야기나 해도 아이들은 재미있어 해요”라는 말씀에 용기를 내어 생일날 아이 탄생 이야기를 해주기로 했다. 

조용한 유치원 방 안에 열 명이 안 되는 아이들과 내가 원 모양으로 둘러앉았다. 그런데 모든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싱긋싱긋 웃는 아이, 무표정한 아이 등 표정은 다르지만, 이야기를 고대하고 있는 눈빛들만은 똑같다. 간밤에 미리 원고에 쓰고 고쳐가면서 외워 두었던 아이의 탄생 이야기를 한 줄 한 줄 풀어 놓는데, 아이들이 온몸으로 나에게 집중하여 이야기를 재밌게 듣는다. 와, 그 감동이란! 아이들의 맑은 기운이 내 몸 안으로 확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이야기 ‘들려주기’의 매력을 그때 비로소 느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5분이 조금 지났을까? 하여튼 이 경험을 계기로, 책이 없이, 아이와 눈을 맞춰 가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신비로운 만남인지를 조금 알게 되었다. 

5년 4개월 경. 밤에 잠자리에 누웠다. 아이가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해서 순간적으로 수학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동했다. 마침 가을이라 산 속에 위치한 유치원에 갔다 오면 밤이 한 가득이었다. 그 생각이 나서, 밤을 소재로 수학이야기를 만들어 본다. 

깊은 숲속에 밤톨이가 살고 있었어요. 밤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였지요. 가을이 되어 숲속에도 밤들이 주렁주렁 열렸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밤톨이는 밤을 주우러 숲으로 달려갔어요. 밤을 두 손 가득 잔뜩 주웠어요. 집에 와서 세어 보니 열 개였어요. 바구니에 담았답니다. 
다음날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밤톨이는 밤을 주우러 숲으로 달려갔어요. 밤을 두 손 가득 잔뜩 주웠어요. 집에 와서 세어 보니 열 개였어요. 어제 주운 밤을 담아 놓았던 그 바구니에 또 담았어요. 


여기서 아이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럼 이제 밤이 몇 개가 되었을까?". 
아이에게서 나온 대답은 
"몰라"
이다. 그러더니, 스스로 
"세어보자"
라면서 손가락을 펼친다. 아이 손가락 열 개, 엄마 손가락 열 개가 공중에서 헤아려진다. 하나, 둘,…,스물. 모두 세니 스무 개다. 이야기는 계속 된다.

다음날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밤톨이는 밤을 주우러 숲으로 달려갔어요. 밤을 두 손 가득 잔뜩 주웠어요. 집에 와서 세어 보니 열 개였어요. 어제 주운 밤을 담아 놓았던 그 바구니에 또 담았어요. 

여기서 또 질문을 던진다. 
"그럼, 이제 밤이 몇 개가 되었을까?". 
아이의 대답은 또다시 
"몰라". 
아이는 즉시 
"세어보자"
라면서 손가락을 펼친다. 아이 손가락 열 개, 엄마 손가락 열 개가 공중에서 펼쳐졌다. 엄마는 
‘나머지 열 개는 어떻게 하려나…발가락으로 하려나….’
궁금하다. 아이가 우선 헤아린다. 하나, 둘, 셋, 넷, ….스물! 그러더니 자기 손가락 열 개를 다시 편다.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서른. 아, 그 방법이 있었군. 손가락을 다시 반복해서 사용하는 방법!  

다음날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밤톨이는 밤을 주우러 숲으로 달려갔어요. 밤을 두 손 가득 잔뜩 주웠어요. 집에 와서 세어 보니 열 개였어요. 어제 주운 밤을 담아 놓았던 그 바구니에 또 담았어요. 

여기서 또 질문을 던진다. 
"그럼 이제 밤이 몇 개가 되었을까?". 
아이의 대답은 또 다시 
"몰라". 
엄마는 
"열 개에서 열 개를 더 주웠더니, 스무 개, 스무 개에다 열 개를 더 더했더니 서른 개였지. 또 열 개를 더하면 몇 개일까?". 
아이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마흔 개야?"
라고 되묻는다. 
"그렇지!".

엄마가 해 준 동화는 여기까지였는데, 이제 아이가 동화를 이어간다. 
"그럼, 열 개를 더 주우면 몇 개야?"
"쉰"이라는 단어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 
"마흔이 40이지, 그럼 몇 개일까?"
라고 질문을 바꾸었다. 아이가 
"50개!"
라고 답을 하면서, 다시 묻는다. 
"50개는 하나, 둘, 셋으로 하면 몇 개야?"
"응, 쉰 개야."

이런 식으로 해서, 60은 예순, 70은 일흔, 80은 여든, 90은 아흔을 다루고, 우리는 백까지 나아갔다. 
엄마가 즉석에서 만든 수학이야기가 무미건조하리만치 단순하지만, 아이는 그 이야기에 푹 빠져 듣는다. 아이의 반응이 참 의외다. 그래서 엄마는 자신감이 생긴다. 다음에도 아이를 푹 빠져들게 할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의 주변에서 소재를 구하여 단순한 뼈대를 만들고 이를 반복하는 것이 이야기 만들기의 핵심인 것 같다. 반복하면 어른은 지겨울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 속에서 리듬을 감지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다시 나오기 때문에 자신감이 따르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목소리로 직접 들려준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면, 내 목소리의 색이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아이를 만날 때 내 목소리는 어떤 색일까? 돌아보면, 의외로 무색이다. 그 무색의 목소리를 이제는 무지개색으로 바꾸고 아이와 이야기 들려주기로 새롭게 만나고 싶다. 

20131217_1.JPG

생일을 맞아 한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생일 사과떡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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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미
현재 공주교육대학교 초등수학교육과 교수로 있으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에서 교육학(수학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연과 함께, 스스로 피어나는 교육’을 추구하는 15년제 대안학교 "꽃피는학교"의 유치과정과 초등과정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아이들의 생활 속에서 열심히 ‘수학’을 찾아보는 취미를 갖고 있다.
이메일 : ymcho@gj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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