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본성과 양육3] 아이에게는 부모만큼 친구도 중요하다

박진균 2012. 12. 13
조회수 9621 추천수 1

가을운동회.jpg » 아이들에게는 부모만큼 또래와의 사회화가 중요하다. 한겨레 자료사진

 

저번 시간에 저는 아동 문제가 모두 엄마의 탓만은 아니라는 칼럼을 쓰면서 마지막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겠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새로운 관점으로 어떤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로 먼저, 아동 양육에 있어서 아동의 타고난 기질 및 재능에 대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제가 자주 반복하는 말이지만, 아동 양육은 '꽃을 키우는 정원사'의 역할이지 '돌을 깎고 다듬어 작품을 만드는 조각가'의 역할이 아닙니다. 아동은 내 마음대로 구상해서 깎고 만들어갈 수 있는 빈 대리석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재능과 기질을 타고나는, 그래서 나름의 향기와 색을 지니고 몸을 숨긴 꽃씨와도 같습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장미의 가시를 잘라 없애는 것이 어렵고 의미 없는 일이듯이, 아동의 타고난 기질을 마음대로 깎고 다듬으려는 노력은 아이와 지속적인 갈등만을 유발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겁이 많은 아이가 있고, 반면에 활달한 아이가 있습니다. 예민하고 짜증을 잘 내는 아이가 있고, 무던하고 잘 참는 아이가 있습니다. 집중력이 좋고 조리 있게 말하는 아이가 있고, 덤벙대고 잘 잊는 아이도 있습니다. 사회적인 아이가 있고, 홀로 있는 것을 즐기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러한 타고난 기질은 나중에 성인의 성격을 이루는 기초가 됩니다.
 
또한 아이들은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인 하워드 가드너 박사가 주장했던 '다중 지능(multiple intelligence)'은 사실 지능(intelligence)이라는 말보다는 다양한 재능(talent)에 대한 이론으로 보면 더 유용합니다. 가드너 박사는 언어, 논리-수학, 공간, 신체-운동, 음악, 대인관계, 자기이해, 자연탐구의 8가지 영역의 지능이 있으며, 현재의 IQ 검사가 주로 언어, 논리-수학, 공간 지능에 국한해 평가하고 있고 그 외의 지능에 대한 고려가 부족함을 비판했습니다. 저는 상담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다보면 이런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틱을 하면서 매우 산만하고 일반 학습에 흥미를 못 가지지만 음악에 있어서는 절대음감을 가지는 등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아이가 있으며, 한편으로 공부에는 취미가 없지만 대인관계 및 미술에 있어서는 매우 훌륭한 재능을 보이는 아동도 보았습니다.
 
물론 아동의 기질과 재능을 어떻게 발견하고 다듬고 키워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다양한 논의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다음 시간부터 얼마간 그런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그러나 이번 시간에는 아동은 내가 맘대로 만들고 소유할 수 있는 '빈 백지'가 아님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소아정신과에서 흔한 질병인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는 유전에 의해서 결정되는 부분이 현재로 약 80%에 이르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즉, 아이가 주의력이 부족한 것은 대부분 엄마의 양육문제가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결국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타고난 기질과 재능을 잘 발견하고, 적절하게 키워줄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과도한 양육 지상주의에 대한 재고가 필요합니다. 백만 원이 넘는 유모차는 그렇다고 치지만, 만 3세 아동부터 시작되는 과도한 영어 조기교육이나 무작정 사서 집안을 채우는 수많은 아동도서들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역효과만을 낳는 '과도한 양육'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물질적인 과잉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부모의 '과잉 기대'와 '공부 지상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 어느 영어학원은 다음과 같이 학원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시키는 학원" 열심히 시키는 학원이라는 인상은 주겠지만, 무조건 '하면 된다' 식의 무분별한 학습강요가 과연 아이에게 도움이 될 지 걱정이 앞서네요.
 
우리 몸에 비타민 C가 부족해지면, 콜라겐 형성이 안 되어 모세혈관이 약해지고 잇몸이 물러지며 잇몸에서 피가 나는 '괴혈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15세기 이후 소위 유럽의 '대항해 시대'에 선원들에게 퍼진 이 이상한 병은 먼 항해를 어렵게 만드는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의사 제임스 랜드가 감귤류 과일(citrus fruit)을 먹으면 이 병을 예방 치료할 수 있다고 쓴 것은 1753년의 일이었지만, 이 병이 비타민 C의 부족 때문이며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보충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0세기 초의 일입니다. 그런데, 필요한 양의 비타민보다 더 많은 양의 비타민을 섭취하면 우리 몸에 더 큰 도움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몸에 여분의 비타민이 축적되면 독성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 부모의 양육도 비타민과 같아서 부족할 경우에는 질병을 야기하고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지만, 적절한 용량을 넘어서면 50을 섭취하나 100을 섭취하나 별 차이가 없어지고, 더 과도한 용량을 섭취하면 오히려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 골고루 다양한 영양소를 밥으로 섭취하는 것이 한 철 보약 한 재를 지어 먹는 것보다 낫듯이, 아동 양육에도 적절한 정도의 관심과 사랑을 꾸준히 부어주는 것으로 족한 것이지, 과도한 기대와 자극, 공부 강요는 사실 별 도움은 되지 못하고 오히려 역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의 양육이 아이에게 부족하지 않은 적절한 정도의 양육일까요? 그것은 각 가정마다 혹은 각 지역마다 편차가 있을 것이며, 아이의 나이에 따라서도 조금씩 필요로 하는 양육의 질과 양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을 기준으로 중산층의 가정에서는 아이를 학대하거나 아주 방임하지 않으면서 의무교육을 적절하게 다니도록 배려하는 환경이라면, 아이들의 지능이나 학업성적, 성격 등은 일반적으로 타고난 지능과 기질을 따라갈 가능성이 양육에 의해서 좌우되는 부분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제 생각에 아이의 성격이나 지능, 학업성적을 높이려는 과도한 노력보다는 아이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함께 고민하고 지원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헛수고를 덜 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셋째는 또래를 통한 사회화 과정(group socialization)의 중요성에 대해 우리가 다시금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쥬디스 리치 해리스(Judith Rich Harris)는 아동의 사회화 과정에 있어서 부모의 양육보다 또래 친구들을 통한 사회화과정이 더 강력하고 영향력이 높다고 주장합니다. 즉, 아동의 성격 형성에 있어서 타고난 기질 이외에 중요한 것은 또래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부분이며, 부모의 가르침은 별로 성격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동의 성격 형성에 있어서, 부모의 양육이 더 영향력이 큰 것인지 아니면 또래관계에 의한 영향이 더 큰 것인지 독자들은 한 번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맹자의 어머니는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 자신이 스스로 잘 가르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좋은 환경을 찾아서 3번 이사했다고 했습니다. 좋은 환경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만 변화가 가능하며, 특히 자기와 같은 또래,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위치를 찾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후에 더 자세히 논의하겠습니다.
 
이제 정리해 보죠. 저는 타고난 기질, 타고난 재능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지만, 적절한 양육이 전혀 소용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동 양육에 있어서 부모가 어떤 것을 기대하고, 어떤 방향으로 양육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는가에 대해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레바논 출생의 세계적인 시인이자 작가인 갈릴 지브란의 시 중에 "아이들에 대하여" 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그대들의 아이들은 그대들의 아이들이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갈구하는 생명의 딸이며 아들이다.
아이들은 그대들을 거쳐 왔을 뿐, 그대들로부터 창조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비록 지금 그대들과 함께 있을지라도 아이들은 그대들의 소유가 아니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순 있지만 그대들의 생각을 줄 순 없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육체의 집을 줄 순 있지만 그대들의 영혼의 집을 줄 순 없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영혼은 그대들은 결코 방문할 수 없는, 꿈속에서도 가볼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
그대들은 아이들처럼 되려고 애써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을 그대들처럼 만들려고 애쓰진 마라.
왜냐하면 삶이란 결코 뒤로 뒤돌아가지 않으며 어제에 머물지도 않는 것이기에."
 
제 생각에 아동 양육에서 우리 부모들이 바랄 수 있는 것은 '아이와의 좋은 관계'가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 외에 좋은 성격이나 좋은 학업성적, 훌륭한 외모 등은 노력해볼 수는 있지만 꼭 얻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굳이 부모로서 욕심을 부리자면, 아동의 타고난 기질과 재능을 잘 파악하고 그것을 일찍부터 계발해주는 것과, 적절한 정도의 양육과 관계를 맺어가는 것, 그리고 좋은 또래 관계를 맺도록 도와주는 것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너무 소박한 바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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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균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기질별 육아혁명>의 저자.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연세의료원에서 정신과 전공의 과정과 소아정초년정신과 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대전 건양대학교병원에서 전임강사 및 조교수 등을 역임하며 소아청소년 환자들을 만났고, 석사학위 논문 주제로 ‘아동의 기질’ 택하게 되면서 책을 집필하는 등 ‘기질’ 전문가를 자임하고 있다. 기질이 너무나도 다른 두 딸의 아버지로서, ‘기질에 적합한 양육’, ‘기질별 육아’를 줄기차게 부르짖고 있다. 2008년부터 소아청소년 상담클리닉에서 마음이 아픈 아이들과 엄마들을 만나고 있다.
이메일 : jinjin9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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