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기질별 육아(17)] 고집스런 ‘얼룩말형 아이’

박진균 2013. 04. 02
조회수 12822 추천수 0

 

03767583_P_0.jpg 지난 시간에는 기질적으로 키우기 어려운 아동의 유형을 몇 가지 열거했습니다. 오늘부터는 각 유형 아이들의 사례를 가지고 기질별 육아를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질적으로 고집 세고, 쉽게 짜증을 내며, 반항을 일삼는 아이를 저는 ‘얼룩말형 아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 아이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초등학생으로 세 자매의 맏이인 진아는 사소한 일에 화를 많이 내고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것을 주소로 클리닉에 내원하였습니다. 아이는 조부모와 사는 경제적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원하는 것을 바로 해주지 않으면 쉽게 짜증을 내곤 했다고 합니다.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가 짜증을 잘 낸다고 하며, 이것도 집안 내력인지도 모르겠다고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아이의 짜증은 여동생들이 태어나면서 더 심해졌는데, 특히 두 살 터울의 동생에 대한 경쟁심과 질투가 매우 컸습니다. 심리검사상 아이의 지능은 평균적이었으나, 사회적 인지가 다소 떨어지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정서상으로 우울, 예민, 불안, 욕구 좌절로 인한 분노 등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기질 검사상 아동은 '부정적 반응성'이 높았으며, '집중력' 요소와 '사회적 민감성' 요소는 다소 저하된 양상이었습니다. 진아 어머니는 진아의 오랜 짜증에 다소 지친 모습이셨습니다. 아이를 야단도 쳐보고, 사랑과 관심이 부족한가 하여 사랑을 많이 주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아이의 성격이 바뀌지 않는다고 힘들어하셨습니다. 
 
위와 같은 아동의 행동 문제에 대해 양육 전문가들은 그동안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방향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 왔습니다. 하나는 아이의 문제를 '애착 불안정'의 표현으로 보고, 애착 안정을 위하여 부모의 양육 태도를 분석하고 부모의 양육태도를 고치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행동주의 이론'에 입각해서 아동의 짜증내는 행동을 '학습된 이상 행동'으로 보고 행동을 교정하는 당근(칭찬)과 채찍(야단, 벌)을 계획하는 방향입니다. 두 가지 중요한 접근 방식을 너무 단순화해서 표현한 감은 있습니다만, 여기서 세 번째 접근 방식인 ‘기질별 육아’ 방식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기질이란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갖는 생물학적 반응양식으로 유전적인 면이 많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까지도 짜증이 많고 급한 성격이라는 점은 진아가 그러한 면들을 어렴풋이 전해 받았을 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수 있게 합니다. '부정적 반응성'의 기질 요인이 높은 경우,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빨리 얻지 못하면 울거나 화내는 등 급격한 감정적 표현을 하며, 어려서는 머리를 벽이나 바닥에 박는 자해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좀 나이가 들면 아이는 부모의 권유나 명령에 대해 과도하게 예민하게 반응하며,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반항하고 논쟁하려 들게 됩니다. 일반적인 어머님들은 아이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갖은 애를 쓰고 노력하게 되지만, 자주 지쳐하고 자신의 양육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고 다른 양육방식을 찾게 되곤 합니다.
 
애착 이론에 정통한 양육전문가들은 엄마의 양육태도가 민감성이 떨어진다거나, 일관성이 떨어져서 아이가 불안정 애착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엄마를 무의식적으로 비난하며 양육방식을 바꿀 것을 권고합니다. 물론 어머니가 완전한 인간이 아닌 이상 다소 예민하지 못하게 반응하거나, 일관성이 떨어지는 반응을 보인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실수가 아동의 현재 모습을 모두 결정했다고 보는 것은 오류이며, 기질에 대한 고려가 전혀 빠져있는 착각인 것입니다. 진단이 잘못되면 권고나 처방도 잘못되고, 어머님은 죄책감에 빠져서는 오히려 양육에 손을 놓는 경우도 생깁니다.
 
행동이론에 의한 처방은 어떨까요? 행동이론 전문가들은 아이의 행동방식이 잘못된 학습의 결과라는 결론을 이미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들은 아이가 짜증을 부릴 때마다 아이의 마음이라든지 이유를 찾기보다는, 그런 행동을 소거하기 위해서 적절한 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부모가 원하는 '좋은' 행동을 유도하고 어떻게 상을 줄 것인지 행동 수정의 계획을 짜는데 분주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상과 벌에 행동이 쉽게 수정되는 그런 단순한 로봇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타고난 반응양식과 마음속의 동기, 기분을 가지는 더 복잡한 존재인 것입니다.
 
제 분석으로 실상 아이는 잘못된 행동을 학습한 것도 아니고, 어머니와의 애착에 문제가 많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기질적으로 사소한 좌절에도 심하게 감정적 반응이 나오는 생리적 '몸'을 가지고 있었을 뿐입니다. 아이는 자신의 짜증이 엄마를 힘겹게 하고 죄책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하는지 알 지 못합니다. 또한 어머니를 시험하고자 반항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질별 양육은 아이의 반응을 일단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공감해 주는 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질별 양육은 기본적으로는 조건적 양육(conditional parenting)이 아닌 조건 없는 양육(unconditional parenting)에 근본적 철학을 두어야 합니다.
 
조건적 양육과 조건 없는 양육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조건 없는 양육'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 알피 콘(Alfie Kohn)의 주장에 의하면, 조건 없는 양육은 아동을 보상이나 칭찬, 혹은 벌과 같은 상이나 벌로 양육하는 행동주의적 접근법을 모두 버리고, 순수하게 조건 없는 사랑과 부모와 아이가 함께 선택하고 책임지는 협동적 양육을 말합니다. 조건적 양육이 아동의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조건 없는 양육은 아동의 전체 생각, 동기, 느낌, 그리고 기질까지도 고려하는 양육입니다. 조건적 양육에서는 아동의 본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조건 없는 양육에서는 아동의 본성에 대해 최소한 중립적으로 바라보고 함께 논의해 갈 동반자로 생각합니다.
 
진아가 짜증내는 상황들을 잘 살펴보면 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어머니가 적절히 들어주지 않거나, 진아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고 뭐든지 빨리빨리 결정하고 진행해가는 집안 분위기에 기인한 경우가 많았습니다.(진아의 집은 조부모와 부모, 진아와 동생 2명이 함께 사는 대가족으로 어머니의 할 일이 과도해보였습니다) 또한 적응력이 좋은 동생은 항상 칭찬을 받고 자신은 뭔가 까다롭고 반항만 하는 아이라는 가정 내 '낙인'이 진아의 마음을 더 반항하게 만드는 면도 많았습니다. 저는 진아 어머니에게 진아의 기질을 이해하도록 돕고, 일단 조건 없이 아이를 인정해보는 연습부터 하도록 권고했습니다. 또한 감정이 고조되어 엄마와 다투는 상황이 되면, 일단 어머님부터 마음을 안정시키고 나중에 마음을 진정시킨 후 다시 상의하는 과정을 갖도록 권유했습니다. 또한 아이가 사회적 인지가 다소 떨어지고, 집중력이 부족해서 행동이 굼뜨는 면이 있다는 점을 이해시키고, 아이에게 사회적 상황에 대해 자주 설명하고 필요하다면 클리닉에서 사회성 훈련이나 집중력 훈련 등을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양육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서 아이가 저런 것이 아니며, 타고난 기질이라는 것이 있으며 차차 좋아질 거라고 안심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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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균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기질별 육아혁명>의 저자.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연세의료원에서 정신과 전공의 과정과 소아정초년정신과 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대전 건양대학교병원에서 전임강사 및 조교수 등을 역임하며 소아청소년 환자들을 만났고, 석사학위 논문 주제로 ‘아동의 기질’ 택하게 되면서 책을 집필하는 등 ‘기질’ 전문가를 자임하고 있다. 기질이 너무나도 다른 두 딸의 아버지로서, ‘기질에 적합한 양육’, ‘기질별 육아’를 줄기차게 부르짖고 있다. 2008년부터 소아청소년 상담클리닉에서 마음이 아픈 아이들과 엄마들을 만나고 있다.
이메일 : jinjin9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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