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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맞춤 수유 품어주기, 생후 3년 경험이 여든까지 간다

양선아 2016. 02. 24
조회수 10259 추천수 0
00551095401_20160224.JPG » 0~3살 육아서 낸 이승욱 정신분석가. 사진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0~3살 육아서 낸 이승욱 정신분석가

“지난 20여년 동안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왔어요. 그들의 고통의 끝에는 항상 부모들이 있었어요. 깔때기처럼요.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이 욕망이 과연 내 것인가?’ 하고요. 정신의 기층부가 튼튼해야 우리는 ‘타자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생후 3년 육아는 정말 중요합니다.”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본사에서 정신분석가 이승욱씨를 만났다. <대한민국 부모>, <포기하는 용기> 등을 통해 한국 부모들과 아이들의 비정상적이고 병리적인 관계를 천착해온 그가 2월말 새 책 <천 일의 눈맞춤>으로 독자들을 찾는다. 기존 저서들과 달리 이번 책은 0~3살 육아에 초점을 맞췄다. 부모-자녀 관계에 대한 비판적 분석보다는 생후 3년 육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중점적으로 다룬다. 0~3살 시기가 왜 중요하고, 부모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에게 물었다.

정신 토대 만들어지는 결정적 시기
원초적인 이미지 형성하고
몸속에 저장되는 기억

정신적 고통 끝에는 늘 부모 있어
감정은 재생, 반복, 대물림
부모 역시 인생 ‘리셋’하는 기회

출산용품 준비하는 것보다
내 탄생 때 가족 이야기가 더 중요

“기존 육아 정보는 너무 엄마 중심적”

“기존 육아서를 보면서 때늦은 감이 있다고 느꼈어요. 때로는 너무 엄마 중심적이라는 생각도 했고요. 생후 3년 동안 한 아이의 정신의 기본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이 시기에 응시, 수유, 품어주기 이 세 가지만 잘해도 아이는 건강한 자아를 형성할 수 있어요.”

이씨는 상담 중에 “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모르겠다”, “내 존재의 가치가 뭔지 모르겠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사회적 성공을 거두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이런 문제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이들은 대체로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제대로 관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칠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했다거나 부모가 원하지 않은 아이라 차가운 시선을 받고 자란 경우 등 다양하다. 그들에게 “부모가 나를 바라봐준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아니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만큼 어린 시절 부모의 응시(눈맞춤)는 중요하다.

그는 “부모가 생후 3년 동안 아이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원초적인 이미지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부모가 따뜻하고 반가운 시선으로 아이를 쳐다본다면, 아이는 자신이 모두에게 환영받는 존재라고 인식한다. 반면 부모가 무표정하고 차갑게 바라보거나 아예 바라보지 않는다면, 아이는 스스로가 버려진 존재라거나 누락된 존재로 이미지를 형성한다. 그는 “실존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아무리 거창한 탑을 세워도 기층부가 허공 상태인 것과 다름없다”며 “아이의 실존은 부모의 응시에 의해 조각된다”고 말했다.

수유 방식도 중요하다. 젖을 먹는 행위는 아이에게 생존과 직결된다. 내가 안전한가, 안전하지 않은가의 문제이다. 이때의 경험은 아이의 몸속에 저장되는 기억이다. 따라서 그는 수유 방식이 일관성이 있고 예측 가능해야 아이가 세상을 신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3시간마다 아이에게 젖을 주는 방식과 아이가 원할 때마다 젖을 주는 방식이 있다면, 어느 쪽이든 한 가지 방식을 선택해 일관성 있게 해야 한다. 그는 “수유 방식의 중요성을 의외로 모르는 이들도 많아 놀랐다”며 “가장 최악의 경우는 두 가지 방식을 섞어 자기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안아주는 것 역시 엄마의 태내에 있는 것과 같은 안정감을 주어 아이에게 신뢰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다.

“선순환의 첫걸음은 자각부터”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 역시 자신의 어린 시절 받은 결핍이나 상처를 극복하고 인생을 ‘리셋’하는 기회로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이를 쳐다보는 눈빛과 아이에 대한 감정이 어떤지 가만히 살펴보세요. 그것이 바로 내가 부모로부터 받은 눈빛, 감정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씨는 감정은 재생, 반복, 대물림된다고 말한다. 만약 자신이 부모로부터 받은 감정이 부정적이라면 그것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다. 그는 “선순환의 첫걸음은 자각부터 시작된다”며 “출산용품 준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출생 때의 가족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 가족이 어떤 상황이었고 자신의 출생이 가족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알고 아이를 키우는 것과 무의식 속의 감춰진 자신의 욕망을 아이에게 투사하며 아이를 키우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그는 “부모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되, 언제나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다는 믿음과 희망이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부모들은 달라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글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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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현재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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