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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취학은 아이 조기에 망쳐…책상보다 놀이”

양선아 2016. 01. 27
조회수 9037 추천수 0
케르스텐 독일 발도르프학교 교사
00549683001_20160127.JPG » 케르스텐 독일 발도르프학교 교사
“한국 정치권에서 조기(만 5살) 취학 논의가 있었다지요? 그런 논의들을 막아야 합니다. 조기 취학은 아이들의 발달을 무시한 정책이에요. 나라에 불리한 정책이에요.”

독일 의사이자 엥겔베르크 발도르프학교 교사인 볼프강 케르스텐(66)은 단호하게 말했다. 지난 15일 한국의 발도르프 학교 교사 양성과정 아카데미(한국 인지학 연구센터 초청)에 아이들의 체질 유형과 기질 등을 알려주는 진단학 강의를 하러 온 그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만났다. 슈투트가르트 발도르프사범대학 초빙교수이기도 한 그는 의사의 관점에서 조기 취학 정책이 어떻게 위험하고 생후 7년 영유아기 발달의 충분한 보장이 왜 필요한지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노동력 위한 국가나 기업 요구일 뿐
산만한 부적응아로 만들 수 있어
선행학습도 되레 입학 뒤 적응 방해

생후 6~7년에 신체 기초공사
외적 균형 감각 스스로 잡으면
내적 균형 감각도 덩달아

아이를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
부모 위한 계몽교육 절실

신체는 삶을 살아가는 아주 중요한 도구다. 케르스텐은 “신체의 기초공사는 생후 6~7년 동안 이뤄지며 아이들은 이때 움직임과 균형 감각 발달을 스스로 이뤄내야 한다”며 “이 시기에 아이들을 책상에 앉혀놓고 인지 교육을 시키면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케르스텐은 조기 취학한 아이들은 잘 앉아 있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많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데, 교사들은 그런 아이들을 산만한 아이로 낙인찍고 학교 부적응아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만 5살에 학교에 입학하는 독일은 움직임 프로그램을 도입해 예비 학급을 운영하는데도 조기 취학으로 인한 부적응자가 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학교 부적응자들은 1~2학년 과정을 한번 더 듣게 되는데 아이들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는 등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의사의 관점에서 그는 균형 감각을 담당하는 전정 기능이 완성되려면 적어도 생후 7년은 지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생후 5년이 된 아이들은 한 발로 서면 흔들거린다. 그러나 생후 7년이 지난 아이들은 균형감 있게 한 발로 잘 선다. 유아기의 아이들을 살펴보면 걷고 뛰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은 신체의 다양한 기능을 발달시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인지학에 기반한 발도르프 교육학과 의학에서는 외적 균형 감각과 내적 균형 감각이 연결돼 있다고 본다. 생후 7년 동안 신체적 균형 감각을 잘 이뤄내면 아이들은 내적 균형 감각도 함께 얻는다.

케르스텐은 “생후 7년 동안 움직일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보장하면 아이들은 비로소 차분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을 수 있는 내면의 고요함도 갖춘다. 또 다른 아이들과도 섞여서 잘 놀 수 있다. 자신감 있게 학교생활도 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독일의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아예 만 7살까지 예비 학급 제도를 운영하면서 긴 나들이를 하고 아이들에게 움직이는 시간을 최대한 보장해준다.


그는 조기 취학과 마찬가지로 영유아기에 진행되는 선행학습이나 컴퓨터 게임 등도 아이들의 발달을 해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학부모들은 학교 입학 후에 대한 불안감으로 유아들에게 미리 학습을 시키는데 그러한 행동이 결국 아이의 입학 뒤 적응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제발 영유아 시기의 아이들이 스스로 근육을 쓰면서 놀게 놔두라”며 “현대에는 부모들을 위한 계몽 교육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산업 사회에서 국가나 기업은 노동력을 빨리 제공받기 위해 조기 취학 정책을 도입하는데, 그것은 국가나 기업의 필요에 의한 것이지 진정으로 아이 발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를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 합니다. 기업이 요구하면 국가가 부응하고, 국가가 요구하면 학교도 따라갑니다. 부모도 따라갑니다. 결국 아이가 희생물이 됩니다.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부모들도 선생님들도 따라가면 안 되지요. 그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1453807393_00549683101_20160127.JPG » 생후 7년 동안 아이들은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면서 기초적인 신체발달을 이룬다. 사진은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고 있는 모습이다. donald2000 <한겨레> 사진마을 열린사진가 제공
그는 움직임과 균형 감각 발달을 위해 부모들이 아이와 산책을 하거나,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손놀이를 하는 등 최대한 아이와 함께 많이 움직이라고 당부했다. 문화센터 프로그램과 같이 구조화된 움직임보다는 아이 스스로 놀이 활동을 창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그는 “사회가 조바심을 줄이고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유아기를 최대한 보장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저출산, 고령화 사회 문제에 관한 새누리당과 정부의 당정협의에서 잠깐 등장했던 ‘조기 취학과 학제 개편안’은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검토가 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글·사진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발도르프 교육

1919년 독일에서 시작된 발도르프 교육은 기존 가치를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전통적인 학교교육에 반기를 들고, 아이들 스스로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사와의 교감, 자연·예술·학문의 조화로운 학습 등을 중시하는 대안교육이다. 199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교육장관회의에서는 발도르프 교육을 ‘21세기 교육의 모델’로 선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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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현재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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