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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의 정석, 엄친아 흉내보다 기본원리 ‘애착-훈육-자립’

양선아 2015. 12. 02
조회수 10451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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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범 교수가 말하는 ‘만능 육아’

11월24일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앞 학림다방에서 홍순범 서울대 소아정신과 교수를 만났다. 서울대 어린이병원 감성센터에서 신체 질환을 겪는 아이들의 심리적·정서적 지원에 힘을 쏟고 있는 그는 최근 <만능 양육>이라는 육아서를 냈다. 인턴 시절 썼던 <인턴 일기>에 이은 두번째 대중서다.

무조건 문제집 많이 푼다고
수학 잘할 수 있는 것 아니듯 

세가지 핵심 내용 꿰뚫고
상황 따라 적용해 처방

1~2살-유치원·초등생-중고등생
단계별로 카멜레온적 역할

그는 다양한 사례 중심의 육아서는 많지만, 양육의 기본 원리를 알기 쉽게 알려주는 책이 부족하다고 짚었다.

사례 중심의 양육서는 생생하고 몰입하기는 좋지만, 자칫하다가는 양육의 어려움을 배가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떼를 쓰는 아이 때문에 힘든 부모가 있다고 하자. 부모는 아이가 떼쓸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육아서를 찾았다. 마침 그때 그 부모가 읽게 된 육아서에서 아이의 절제력이 중요하다며 훈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알려줬다. 육아서의 처방대로 그 부모는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엄격하게 알려주며 떼쓰는 아이에게 엄하게 대했다. 그런데 아이의 떼가 갈수록 심해지고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악화됐다면?

홍순범 교수
홍순범 교수
홍 교수는 “양육의 기본 원리를 모르면 충분히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떼쓰는 아이에 대한 훈육은 필요하지만, 부모와 애착이 잘 형성되지 않은 아이에게 부모가 ‘차가운’ 훈육만 하면 오히려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더 악화될 수 있다. 아이가 떼를 써도 부모와 아이가 놓인 상황에 따라 대처 방법은 다를 수 있다. ‘엄친아’의 양육법을 따라한다고 내 아이가 ‘엄친아’가 안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수학 문제를 잘 풀려면 기본 원리와 핵심 개념을 잘 알아야 한다. 기본 원리와 핵심 개념을 모르고서 무조건 문제집을 많이 푼다고 수학을 잘할 수 없다.

아이 키우기 또한 마찬가지다. 다양한 문제 상황 대처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기본 원리다. 홍 교수는 올바른 육아의 핵심 요소로 애착, 훈육, 자립 세가지를 꼽았다. 이 세가지 개념에 대해서만 꿰뚫고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적용 가능하고 스스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만 1~2살의 아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애착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부모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줘야 한다. 그렇게 해야 아이들은 ‘세상은 살 만하구나’, ‘세상이 날 사랑해주네’라는 믿음이 생긴다. 이것은 아이의 인생 전체에서 신뢰와 안정감, 희망감의 토대를 이룬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는 시기에는 아이들 마음속에서 ‘개체성’과 ‘주도성’이 움튼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나와 남을 분리하고, 무엇이든 내가 스스로 뭔가를 해보고 싶어하는 시기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규칙을 알려주는 훈육을 해야 한다. 아이 스스로 뭔가 주도적으로 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야 한다. 주도성을 키워야 할 시기에 부모가 주도성의 싹을 밟아버리면, 청소년기에 아이는 반항하거나 무기력해진다.

다음으로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청소년 시기에는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다. 이 시기에 부모의 양육의 핵심 목표는 자녀를 자립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이므로, 부모는 훈육자나 관리자가 아니라 아이의 협력자, 동반자가 돼야 한다. 이렇게 부모는 각각의 발달 단계에 맞춰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며 각 단계에 맞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최근 오스트레일리아에선 부부 관계나 자녀 양육에 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신청자들에게 비용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독일에서는 <부모면허증>이란 책도 나온 적 있지요. 양육에도 운전 못지않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심오하고 엄청난 공부가 아니라 애착, 훈육, 자립, 이 개념만 잘 알아도 충분합니다. 옆집 엄마 양육법 말고 기본 원리를 중시하는 부모들이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용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이어간 홍 교수는 다음 양육서에서는 부모 이외에도 부모가 속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글·사진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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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현재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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