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해야 일 낸다

2010. 09.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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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의 행복 비타민]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과 게임기가 없다. 필요가 없고 내가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아이들의 폭력성이나 뇌파의 불안정성을 유발한다는 최신 연구 결과가 이유는 아니다. 내가 그것들을 싫어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24시간 나오는 텔레비전과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비디오 게임은 아이들에게 ‘지루함’이란 보물을 빼앗는다.



어린 시절은 지루해야 한다. 할 일이 없어서 어처구니없는 행동도 저지르고, 말도 되지 않는 놀이를 만들어 보고, 몇 번이나 읽었던 책을 또 읽어가며 엉뚱한 이야기를 상상해야 한다.



요즘 부모들은 잠시라도 아이들이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이 있으면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게 아닌가 걱정한다. 그래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이리저리 아이들을 끌고 다닌다. 물론 적절한 자극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생은 놀이동산이 아니다. 인생은 많은 시간 동안 밋밋하고 우리는 그런 밋밋함에 적응하면서 작은 즐거움에 만족해야 한다. 자극 지향적인 삶을 지속적으로 추구한다면 순간마다 즐거움이 있을지 몰라도 그만한 위험도 따라다닌다. 일상의 평화와 주변에 대한 관심, 가족의 소중함과 같은 전통적 가치는 시시한 것으로 취급받는다.



지루하게 보내는 시간이 곧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도 아니다. 우리의 두뇌는 주변의 정보를 충분히 파악했을 때 그 정보의 지평을 넘어설 수 있다. 창조적인 돌파구를 만들려면 다양한 수위의 정보의 융합이 필요하다. 정보의 파악과 융합에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은 심심할 틈도 없이 뭔가 새로운 것을 가르치는 것이 강조된다.



아이들의 두뇌는 그저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도 벅차다. 아이들이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충분히 파악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벌어지는 상황, 주변의 자질구레한 것을 속속들이 알 때 새로운 방식의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만들어 내려면 양치기처럼 할 일 없이 누워서 하늘만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융합적 사고를 위해서는 지식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천천히 두고 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심리적 여유이다.



아이들이 살아야 할 세상은 정답이 있는 세상이 아니다. 새로운 상황에 자신이 혼자 부딪치면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내야 한다. 요즘 문제 해결력이 강조되고 있다.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자신이 아는 정보를 이리저리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이 문제 해결력이다. 창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고 외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아이들이 어떤 미래에서 살아가고, 어떤 문제에 부딪힐지 우리 어른들은 사실 짐작도 못한다. 지루한 시간을 보내면서, 그 시간에 이리저리 뒹굴면서, 뒹구는 중에 별별 궁리를 해내면서 아이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얻게 된다. 아이들에게 지루함을 허락해야 한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서울신경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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