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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죽어서 생기는 병, 정신장애

2013. 05. 02
조회수 4745 추천수 0

허찬희의 정신건강

새 학기가 시작된 뒤 두달가량 지나니 대학생 중에도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다며 내원하는 이들이 있다. 올해 입학한 한 여대생의 경우 외모가 비교적 괜찮은데도 자신의 외모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휴학을 원했다. 자신이 못생겨서 동기들이 자기를 싫어할까봐 겁이 나고, 자신감이 없어서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기 힘들다고 했다. 이처럼 열등감이 생기고 자신감이 없게 된 이유로 남녀 공학인 고등학교 시절에 여드름이 많은 자신의 얼굴을 남학생들이 많이 놀린 점을 꼽았다.

다른 남자 대학생의 경우 학교에 가기 싫고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며 만사가 귀찮다고 병원을 찾았다. 그는 하루 종일 피시방에서 인터넷 게임에만 빠져 있다고 했다. 이런 상태에 빠지게 된 건 입학 초기에 선배로부터 폭언과 함께 이른바 ‘왕따’를 당한 것이 원인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아직도 음대나 체육과에서는 선후배 사이에 규율을 세우고 합주나 단체시합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폭력이 흔하게 일어난다고 했다. 물론 학교 안에서 폭력 등 다른 학생들을 괴롭히는 행동은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개선해야 할 문제지만, 당장 당사자나 부모, 그리고 치료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대처가 필요하다.

미국의 유명한 정신의학자인 제롬 프랭크는 초기에는 혼자서, 나중에는 그의 딸 줄리아와 함께 정신질환자의 공통적인 특징에 대해 연구했다. 또 과거 원시사회의 샤먼(무당)에 의한 주술적 치료부터 오늘날 수많은 종류의 다양한 정신치료법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통해 정신질환이 치유돼 가는지에 대해 평생 연구했다. 그 결과 그들은 ‘모든 정신장애는 기가 죽어서 생기는 병이며, 기를 살리는 것이 모든 치료 방법의 공통적인 치유 요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시 말하면 정신건강이란 성장 과정에서 기가 살고 자신감이 자라서 외부로부터 닥치는 공격을 효과적으로 물리치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자라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위의 두 학생은 심층 면담을 한 결과 어릴 때부터 기가 죽고 자신감이 자라지 못했다. 기가 살고 건강하게 자란 학생에게는 대학 사회가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오지만, 자신감이 없고 열등감으로 가득 찬 학생은 반대로 대학 사회가 낯설고 힘들며 두려운 공간이 된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기가 꺾이고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면이 잘 드러나지 않다가 대학에 입학해서는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노출되다 보니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정신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를 살리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모든 생명체는 주위로부터 방해만 받지 않으면 저절로 기가 살고 자신감이 자라게 돼 있다는 사실이다. 들이나 산에 자라는 풀이나 나무처럼, 특별히 방해를 받지 않으면 스스로 생기가 넘치고 푸르게 자란다. 부모나 치료자는 열등감에 시달리고 자신감이 없는 아이들이 무엇에 의해 방해를 받았는지 점검해야 한다. 성장 과정에서는 쓸데없는 간섭을 하지 말고,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되, 아이보다 앞질러서 해주지 말아야 기가 살고 자신감이 자란다.

허찬희 하나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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