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내 안의 나 알게 공감이 최고 보약

하태욱·차상진 2012. 0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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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생.jpg » 한겨레 자료사진  

 

부엌일을 할 때 라디오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부엌일은 일부러 좋아하는 프로그램 시간대에 맞추어 하곤 하지요. 어느 날 저녁, 그날도 역시 라디오를 틀어놓고 밀린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인기 작사가이자 라디오 디제이로도 활동하고 있는 심현보씨가 잠깐만자기 이야기를 들어보라더군요. 가만히 들어보니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노랫말을 쓰는 그에게 작사법을 좀 가르쳐달라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별게 없다는 거죠. 그저 솔직함에서 출발할 뿐이라고. ‘밉다’ ‘아프다’ ‘그립다’...자기 감정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것을 잘 표현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비결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정신과 의사들이 말하길 자기감정을 감추는 사람이 우울증에도 잘 걸린다더라고.

 

아닌 게 아니라 1990년대부터 교육학, 심리학계는 정서지능이라는 개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정서지능이란 자신의 감정을 똑바로 읽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제대로 읽고 공감하여 바람직한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과 조율해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려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무언가 이루어 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정서지능이란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느낌이나 감정을 알아차리는 능력에서 출발한다는 겁니다. 이런 능력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것을 내 마음 속에서 공감하는 능력과 연결됩니다. 공감의 능력은 건강한 관계 맺기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초석이 될 수 있지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정서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기분을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스려서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감을 높일 줄 압니다. 이러한 자신감은 도전적인 과제를 계속해서 끌고 나갈 수 있는 자기 동기화를 이루어냅니다. 또한 기분이나 감정은 사람의 기억 속에 있는 정보를 재조직하고 활용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기분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창조적으로 문제해결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자기감정을 감추는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는 정신과 의사의 말은 자기감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는 말과 다르지 않게 들립니다. 왜냐하면 정서지능이란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에서 시작되니까요. 사람은 만 3세 정도만 되어도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그러한 감정이 왜 생겼는지 말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자기감정을 제대로 읽고, 다른 사람과 공감하며, 자기기분을 잘 다스려서 나를 바로 세우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능력은 절대로 저절로 생겨나는 일이 아닙니다. 연습의 과정이 필요하지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 새로운 사물을 접할 때면 항상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그것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무언가 새로운 정서를 경험할 때도 그럴까요? 그 감정, 기분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부정하려는 태도까지 보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그러니. 괜찮아, 괜찮아.”

에이~뭐가 아파 하나도 안 아프지.”

! 창피하게 남자가 어디 동생 앞에서 울어. 남자는 우는 거 아니야.”

 

자기가 지금 처한 감정 상태를 무시당하며 자란 아이에게는 정서지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정서지능이 떨어지는 아이에게는 슬기롭게 자신을 다스리는 일도, 다른 사람과 더불어 즐겁게 살아가는 일도 기대하기 어렵겠지요. 그러면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정서지능 개발을 위해 어떤 지원을 해야 할까요?

 

가장 우선적 할 일은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 때 아이가 표정, 태도, , 행동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 감정을 알아주고 공감해주는 일입니다. 아이가 화가 난다’ ‘무섭다등과 같이 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는 그 말을 되풀이 하면서 그래, 그러면 화가 날 수 있지” “엄마도 그럴 때 정말 무서웠어.”와 같은 방법으로 공감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감의 표현이 반드시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얼굴표정, 혹은 조용히 등을 쓰다듬어 준다거나 안아주는 것 같은 행동 등으로도 아이로 하여금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공감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기분에 대한 인지와 공감의 작업은 아이들로 하여금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줄 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아이의 자존감과도 연결되는 일이지요.

 

아이의 감정에 대해 알아주기와 공감의 표현을 했다면, 조금 전에 느꼈던 기분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정서적 경험을 민감하게 들여다보고 감정유발의 원인이 되었던 상황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일은 정서지능을 개발하는 핵심적인 연습과정이기 때문이지요. 아직 어휘력이 풍부하지 못한 어린 아이들과 감정, 기분, 느낌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다양한 얼굴표정이 그려진 그림책이나 못난이 인형세트, 이모티콘 등을 활용하면 효과적입니다.

 

아까 ◯◯이 기분이 어땠는지 이 그림(인형)에서 골라볼 수 있겠니?”

그 그림(인형)이 어떤 기분인지 설명해줄래?”

왜 이런 기분이 들었을까?”

 

이러한 대화를 나눌 때에는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적당한 추임새로 아이의 말에 공감해주는 작업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의 기분,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는 아이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도 민감하며 존중할 줄 압니다. 따라서 아이와 생활 속에서 함께하는 이러한 대화의 시간은 유아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인지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인지적, 정서적 조망능력을 키워 나 자신을 바로 세우고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지요.

 

학원이 내 아이의 점수 한 점을 올려줄 수는 있을 겁니다. 엄마가 좀 더 열성적이라면 점수가 열 점, 스무 점 더 올라갈 수 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무엇을 위한 열성이 더 우선적이 되어야 할런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일 것 같습니다. 옆의 아이와 한 점, 두 점, 점수 싸움으로 내몰려야 하는 현실은 우리 아이들을 친구의 감정은커녕 자신의 감정에 대해 들여다 볼 여유조차 없게 만듭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OECD 청소년 행복지수 최하위, 청소년 다섯 중 하나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뉴스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 오늘부터 시작해봅시다. 내 아이의 기분을 들여다봐주는 일. 아니, 그보다 더 먼저 내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차상진 (sangjin.c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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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욱·차상진
우리 시대 교육의 대안을 찾는 교육학자이자 학부모이며 교사이자 실천가. 하태욱은 교육사회학·교육정책·대안교육을, 차상진은 유아교육을 각각 전공했지만, 삶과 밀착된 교육, 아동중심적 교육관의 측면에선 같은 교육관을 갖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하태욱은 대학 강의와 더불어 대안교육연대와 대안교육학부모연대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교육적 대안 마련을 위해 뛰어다니고, 차상진은 아동의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배움을 강조하는 유아교육 프로그램 ‘하이스코프(www.highscope.org)’의 교사·학부모 교육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메일 : uktaeha@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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