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네가 그러면 엄마 기분 어떨 것 같아?" 소용없는 이유

하태욱·차상진 2012. 07. 26
조회수 17972 추천수 1

엄마랑 실랑이.jpg » 한겨레 자료사진

 

수년 전,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지구별에서 만나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과정에서 알아야 할 각각 다른 사고와 행동양식을 재미있게 그려낸 책이었죠. 얼마 전 <러브토크>라는 연애백서를 출간한 팝 칼럼니스트이자 연애 칼럼니스트 김태훈씨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컴퓨터 설계구조에 비교하자면 여자가 남자보다 사양이 조금 더 높답니다. 그래서 남자라는 존재를 여자의 마음과 머릿속에 넣으면 읽히는데, 여자라는 존재는 남자에게 넣으면 읽히질 않는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죠.

 

육아도 연애만큼이나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임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서점에 가보면 연애백서 이상으로 육아백서가 넘쳐납니다. 세상엔 너 아니래도 남자, 여자는 넘쳐나니 연애는 안 맞으며 까짓것 갈라서면 그만이지만 육아는 어디 그런가요. 어쨌든 내 자식이고 내 부모니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관계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부모들의 행동 및 심리상태를 컴퓨터 사양처럼 누가 높다 낮다로 구별해낼 수는 없지만, 부모들은 아이들보다 인지적으로 조금 더 높은 발달단계에 있으니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인지적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감정적으로 다르게 느끼는가를 이해한다면 조금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육아가 가능해질 겁니다. 취학 전 유아기, 아동심리학의 대부 격인 피아제(Jean William Fritz Piaget)의 발달단계 구분으로 보자면 전조작기에 해당되는 아이들의 사고와 행동양식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중심주의

취학 전 유아들의 일반적 특징 중 하나는 상당히 자신의 관점에서만 느끼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이 아이들은 세상을 자신의 감정과 필요의 관점으로 대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이 미약하지요. 따라서 네가 이러면 제 기분이 어떨 것 같니?”라는 다그침은 그다지 효과가 없습니다. 이보다는 갈등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기분 등을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이유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벗어나는 일은 절대 하루아침에 주입식으로 얻어지는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요구와 내가 필요로 하는 것, 원하는 것을 조율해가는 작업은 반드시 생활 경험 속에서 꾸준히 훈습되어야합니다.

 

직관적이고 구체적인 사고

이 시기의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분명한 특성, 특질 등을 토대로 세상을 이해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은 매우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서로 차지하고 싶어 하는 장난감을 두고 같이 가지고 놀아야지!” “사이좋게 놀아.”라는 다소 추상적인 말은 유아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보다는 그 장난감을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는 역할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합의하는 일을 돕거나, 커다란 모래시계 등을 사용하여 한명씩 교대로 놀 수 있는 시간을 정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입니다. 수영장 가기로 한 날을 무척 기다리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우리 수영장 언제 가?”라고 묻는 아이가 있다면 원형클립을 남은 날짜 수만큼 엮어 걸어두고 하나씩 떼어나가는 방법도 좋습니다. 아이가 하루 세 번 약을 먹어야한다면 약병을 세 개 그려두고 한번 먹을 때마다 하나씩 지우게 하는 방법도, 내일 챙겨갈 준비물을 아이가 알아볼 수 있는 그림(혹은 기호)으로 적어 가방에 붙여주는 일도 직관적이고 구체적인 사고를 하는 아이의 발달적 특성에 걸맞은 육아방법입니다.

 

언어적 한계

외국어로 대화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각이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해내기가 참 난감하지요. 그래서 때로는 바보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무례하다고 느끼게 합니다. 이제 한참 말을 배우고 있는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어능력이 충분히 발달되지 못한, 아직 발달단계에 있는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요구나 느낌, 기분을 명확하고 세련되게 표현하기가 참 버겁습니다. 따라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도울 때는 충분히 생각하고 자기 수준에서 최대한 표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제 막 말문이 트인 동생이 언니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표현해야한다면 그 작업을 지원하는 어른은 그 아이가 하는 말을 충분히 듣고, 언니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한 통역사처럼 다시 말해주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죠. 아이의 언어발달이 또래에 비해 다소 더디다면 어른들의 이러한 지원은 더욱 더 필수적입니다.

 

과격한 신체표현

이 시기 아이들의 표현은 상당히 신체적이고 물리적입니다. 기쁠 때는 소리를 지르고, 슬플 때는 우는 것으로 자기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따라서 아이들이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낚아채오는 것은 이 아이들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라 할 수 있지요. 기분 좋은 아이가 손을 높이 쳐들며 함성을 지르거나,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는 행동은 무척 사랑스럽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예고 없이 낚아채는 행동은 당황스럽고 화가 나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체벌을 가하는 일은 행동개선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바람직하지 못한 표현방법을 강화하는 결과가 될 수 있지요. 그보다는 그러한 행동을 하는 아이의 심리상태를 충분히 공감해주고, 원초적 표현을 대신할만한 보다 세련된 사회기술을 직접 보여주는 작업이 효과적입니다. 아이들의 수준에서의 나도 좀 ◯◯해도 될까?” “주세요~” 등과 같은 가벼운 일상 표현의 본보기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독립성에 대한 실험 내가! 내가 할래!”

유아기 아이들은 태초의 보호자로부터 분리되고 있음을 느끼며 자신의 독립성을 실험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무언가 선택하고 결정하여 행동하는 재미를 맛보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 아이들의 독립성 발휘란 때로 어른들이 보기에 너무나 억지스럽지요. 더구나 이 독립성과 자기중심성이 결합된 상황이라면 어른들은 인내심을 시험받는 기분이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어른들이 기억해야 할 사항은 아이들로 하여금 지금 나의 행동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범위 안에 있는가를 이해하도록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인생에서 새로이 습득한 기술이 있다면 이는 당연히 축하받아야 할 일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러한 새로운 기술을 발휘하고 연습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어야하지요. 하지만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이들에게 안 되는 이유를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해, 아이들로 하여금 우리가 처해진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마무리를 하면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습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 어른들이 절대 삼가야 할 태도는 이 녀석이 날 무시해?’ ‘아니,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지?’처럼 지나치게 앞서나간 생각을 한 나머지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행위입니다. 비록 당황스럽긴 하지만 아이들의 이러한 행동은 그냥 제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발달적 특성에 따른 성장 과정의 한 모습일 뿐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상적인 상대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라는 관계 속에서 완벽할 따름이다.”

 

완벽한 아이는 없습니다. 그저 내 자식이라면 이래야 하며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기대를 끊임없이 버릴 수 있어야 하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로 우리속에서 우리만의 완벽함을 찾아야 할 뿐이지요.

 

차상진 (sangjin.c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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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욱·차상진
우리 시대 교육의 대안을 찾는 교육학자이자 학부모이며 교사이자 실천가. 하태욱은 교육사회학·교육정책·대안교육을, 차상진은 유아교육을 각각 전공했지만, 삶과 밀착된 교육, 아동중심적 교육관의 측면에선 같은 교육관을 갖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하태욱은 대학 강의와 더불어 대안교육연대와 대안교육학부모연대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교육적 대안 마련을 위해 뛰어다니고, 차상진은 아동의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배움을 강조하는 유아교육 프로그램 ‘하이스코프(www.highscope.org)’의 교사·학부모 교육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메일 : uktaeha@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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