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엄마, 나 이제 뭐해?" 엄마 꼭두각시 안녕~

하태욱·차상진 2012. 02. 14
조회수 10587 추천수 0

 

04597224_20071026.jpg

 

이런 경우를 한번 상상해볼까요?

한 직장 맘이 있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유난히 힘든 하루였습니다. 어린이집에 데려다 놓고 출근해야하는 둘째 녀석이 오늘따라 유난히 힘들게 만듭니다. 엉망인 집안을 뒤로한 채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놓은 후 택시까지 잡아탔으나 길은 막힙니다. 여지없이 지각이라 팀장님께 혼납니다. 그런데 팀장님이 느닷없이 일거리 하나를 던져주십니다. 갑자기 일이 1.5배로 늘어납니다. 늦어진 퇴근. 저녁은 알아서 해결하라고 남편에게 연락해줘야겠다 하는 순간 시어머님께 전화가 옵니다. 오늘 우리집 앞에서 모임이 있으셨답니다. 오랜만에 손주 얼굴도 볼 겸 집으로 오셔서 저녁 드시겠답니다.

 

만약 이런 일이 당신에게 일어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짜증, 분노, 부당함, 억울함, 불안감, 불안정, 무언가에 통제받는 느낌, 도망가고 싶은 기분...온갖 부정적인 느낌들을 경험하겠지요. 교사 교육이나 학부모 교육에서 이런 상황을 상상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진심으로 흥분하며 열을 내는 분들도 계십니다. 감정이입이 제대로 되시는 모양입니다.

 

흔히들 세상 내 맘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다는 말을 분노, 냉소, 자조의 어조로 내뱉고는 합니다. 내가 내 삶을 스스로 통제하기 보다는 내가 다른 사람,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휩쓸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기서 같은 맥락으로 우리 아이들의 하루일과를 들여다봅니다. 우리 아이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하루를 어떤 기분으로 보내고 있을까요? “일어나.” “이거 먹어.” “이거 입어.” “준비해. 학원 갈 시간이야.” “학습지 먼저 풀어.” “tv 끄고 양치질 해. 잘 시간이야.” 혹시 아이 생활 속에 는 없고 이러한 지시와 통제만 가득한 것은 아닌지 한번 잘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아직 정서적 인지능력이 발달하지 못한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처럼 불안하다던 지, 누군가에게 콘트롤되고 있는 느낌이라던 지, 억울하다던 지하는 느낌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짜증이 많아지고, 모든 일에 의욕이 없어지겠지요.

 

그렇다면 (아이와 어른을 포함한) 사람들은 왜 이런 기분이 들까요? 이런 불쾌한 느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요? 먼저 전체적인 일과 구조가 불안정한데서 오는 심리적 불안감이 그 주된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간에 불쑥불쑥 끼어드는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인해 내 일과를 컨트롤할 수 있는 통제력이 상실된 것이지요. 하루를 구성하는 예측가능한 일과의 큰 틀 안에서 를 찾을 수 있는 자발성과 선택권이 없어진 것도 큰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이런 식의 하루하루가 계속된다면 우리 아이들의 자발성, 주도성은 기대하기 어려워집니다. ‘자발성을 강조하는 교육’ ‘아동중심의 교육이란 특별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일상에서 조금씩 키워지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오랫동안 가르친 어느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습 상담이란 것이 결국은 학습 계획을 짜주는 일이 되어 버리더라고요. 이 공부를 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야심찬 미래 계획까지는 차치하더라도, 이 과목을 어떻게 공략해보겠다는 자발성이나 주도성조차 없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헬리콥터맘이니 캥거루족이니 하는 말이 도는걸 보니 스스로 서지 못하는 청년들도 수두룩 한가봅니다. 하루 종일 아이들 곁에 붙어 그들의 매니저 노릇을 하는 엄마 밑에서 엄마, 나 이제 뭐해?”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이 자라날 당연한 모습 같아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그럼 주도성과 자발성이 뛰어난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먼저, 일관성 있는, 아이들도 예측 가능한 하루 일과를 계획합니다. 이 때, 하루 계획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생활 사이클을 포함하여 각자가 생활 속에서 우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 되도록 배려합니다.

유학시절 어린아이를 키우는 학생부부였던 저희는 늘 허둥지둥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자각한 저희는 세 식구의 일과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웠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제가 아침 준비를 하는 동안 남편은 아이를 씻기고 함께 나갈 준비를 합니다. 셋이 아침을 먹고 나면 남편은 아이를 유아원에 데려다 놓고 학교에 갑니다. 그동안 저는 집안일을 대충 해놓고 조금 늦게 집을 나섭니다. 오후 5시 유아원이 끝나면 그날 저녁 수업이 없는 사람이 아이를 찾아 집으로 갑니다. 집으로 간 사람은 아이와 저녁을 해서 먹고, 함께 놀아줍니다. 그리곤 씻기고 침대에서 동화책 몇 권을 함께 읽은 후 아이를 재웁니다. 아이가 자고 나면 어른들의 자유시간입니다. 물론 둘 다 수업이 없는 날은 온 가족이 함께 저녁시간을 보내지요. 이런 일과가 자리 잡히고 나니 허둥지둥하던 생활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내 일을 할 수 있는 시간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 일을 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으니 삶에도 균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가족 구성원의 안정은 아이의 안정과 직결됩니다.

 

하지만, 구조화된 일과 안에서 아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도록 하려면 그 안에서 아이의 자발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어야 하며 그것을 계획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합니다. 가족과의 생활 패턴이 자리 잡히게 되면 아이는 내가 하고 싶은 놀이를 맘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인지 알게 됩니다. 그러면 이때, 부모는 자유 시간을 그냥 흐지부지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계획하여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아원이 끝나고 집에 오는 동안 아빠 혹은 엄마와 함께 오늘은 집에 가서 뭐하고 놀까?’를 계획하는 겁니다. 처음에 아이는 블록놀이‘, ’인형놀이등을 아주 간단히 이야기 할 것입니다. 이때 어른은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놀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계획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런 과정이 쌓이면 아이는 자신의 일을 보다 구체적이며 자세하게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됩니다. 혹시 지난 날 하다가 그만 둔 일이 있다면 스스로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도와주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또한 하루 일과 속에는 아이의 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유아시기의 아이들은 상황과 앞뒤 맥락을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발달되지 않았으므로 부모는 제한된선택권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의 선택권을 존중한다고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라고 매일 열린 질문을 하다보면 냉장고 안은 먹다 남은 음식과 재료들로 넘쳐나게 될 겁니다. 아이에겐 상황을 인지하고 선택할 수 있는 질문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할머니가 보내주신 갈치를 구워서 어제 먹다 남은 된장국과 먹을 수 있고, 카레라이스 재료도 있어. 냉동실에 사골국물 얼려 놓은 게 있으니 떡국도 끓여먹을 수 있겠다. 뭐 먹을까?” “오늘 밤에는 어떤 동화책을 읽고 잘까?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는 너무 많이 읽었으니까 오늘은 그거 말고 책장에서 다른 책을 골라보자.” “윗 서랍에서 입고 싶은 스웨터를 골라봐. 그럼 엄마가 바지를 골라줄게.” 등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아이는 무언가를 선택할 때는 지금 무언이 가능한 지 생각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집니다. 물건, 사람, 상황 등을 배려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지요. 때로는 아이가 먼저 지금 가능하지 않은 선택을 고집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밥 먹기 전에 단음식을 먹겠다고 떼를 쓰거나, 저녁 식사 후 거실에서 공을 가지고 놀겠다거나 하는 일이지요. 이럴 때는 왜 지금 그 일이 불가능한지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한 후, 그럼 언제 그 일이 가능한 지 다시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밥 먹기 전에 단 음식을 먹으면 밥맛이 없어지니까 지금은 곤란해. 우리 곧 저녁을 먹을 거거든. 하지만 밥 먹은 후에 먹을 수는 있지. 그래도 이것을 한 번에 다 먹기는 너무 많아 보인다. 이빨이 썩을 수 있고, 단 음식은 키 크는데 방해가 되거든. 두 개만 골라놓으면 어떨까?. 하나는 저녁식사 후에 먹고, 또 하나는 내일 유아원이 끝난 후 집에 오는 길에 먹는 거야.” 같은 방법입니다.

 

잘 짜여진 하루일과라고 해서 일 년 365일 그 틀 안에서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살다보면 여러 가지 변수들이 생기지요. 그럴 때는 아이에게 미리’, ‘구체적인 설명을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어린 유아들이라도 자기 삶에 주도성을 가지려면 심리적, 물리적인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내일 모레, 두 밤 자고 나면 이모가 우리집에 놀러 오신대. 어린이 집 끝나고 아빠랑 집에 오면 이모가 와계실거야. 그날은 엄마가 저녁 준비하는 동안 이모랑 놀 수 있겠다. 이모랑 뭐하고 놀지 미리 한번 생각해봐.”

 

하지만 살다보면 갑작스레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아이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인 경우에는 반드시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합니다. “아빠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아저씨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대, 그래서 아빠가 위로하러 가셨어. 오늘 늦게까지 그 아저씨 옆에 함께 계실거래. 오늘 저녁은 아빠 없이 우리끼리 먹어야겠다. 오늘은 자기 전에 동화책도 엄마랑 읽어야겠네. 아빠는 오늘 굉장히 늦게 오실 테니까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시기 힘드실 거야. 내일 아침 어린이 집도 엄마랑 같이 가야할 것 같아. 그 다음날부터는 다시 아빠랑 갈 수 있어.”

 

이렇게 지금 가족이 처해진 상황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과정은 아이와의 관계의 질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상황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스스로 예측 가능하고 준비할 수 있는 하루 일과는 아이의 주도성과 자발성 및 독립성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와 자신감, 자존감을 높이는데도 큰 공헌을 합니다. “엄마 나 이제 뭐해?”가 아니라 엄마 나 오늘 이거 할래요.”가 아이 입에서 나오도록 하는 일...부모의 작은 철학과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참고문헌

-Ann Epstein (2007). Essentials of Active Learning in Preschool. HighScope Press.

-Mary Hohnman & David Weikart (2002). Educating Young Children. HighScope Press.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하태욱·차상진
우리 시대 교육의 대안을 찾는 교육학자이자 학부모이며 교사이자 실천가. 하태욱은 교육사회학·교육정책·대안교육을, 차상진은 유아교육을 각각 전공했지만, 삶과 밀착된 교육, 아동중심적 교육관의 측면에선 같은 교육관을 갖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하태욱은 대학 강의와 더불어 대안교육연대와 대안교육학부모연대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교육적 대안 마련을 위해 뛰어다니고, 차상진은 아동의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배움을 강조하는 유아교육 프로그램 ‘하이스코프(www.highscope.org)’의 교사·학부모 교육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메일 : uktaeha@yahoo.co.kr      

최신글




  • 아이들 싸움에 대처하는 부모의 자세아이들 싸움에 대처하는 부모의 자세

    하태욱·차상진 | 2015. 02. 25

     “언니,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 오늘 미나 담임선생님한테 전화가 왔었어. 어제 성재란 아이 엄마가 쪽지 하나를 가지고 선생님을 찾아왔대. 쪽지를 보니 “성재야, 난 네가 너무너무 싫어. 이 쪽지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마.” 이렇게 ...

  • 폭력적 체벌 방지 CCTV만 달면 될까폭력적 체벌 방지 CCTV만 달면 될까

    하태욱·차상진 | 2015. 02. 05

    한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보육교사의 폭력적 체벌사건으로 온 세상이 술렁였다. 정부의 대응이나 대책들은 핵심을 짚어내지 못했고 엉뚱한 곳에서 헛손질로 철학의 빈곤을 드러내면서 분노나 냉소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분위기다. 그 사이 정작 짚어져야...

  • '학원빨 암기'보다 꼭 필요한 삶의 연습'학원빨 암기'보다 꼭 필요한 삶의 연습

    하태욱·차상진 | 2014. 07. 07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두 달 반이 흘렀습니다. 십여 명의 실종자들은 아직도 그 소식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너무 미안해서 감히 ‘미안하다’는 말조차 내뱉기 힘들었고, 또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까봐 두렵...

  •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삶의 연습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삶의 연습

    하태욱·차상진 | 2014. 02. 24

    화제가 되었던 ‘꽃보다 누나’를 뒤늦게 인터넷 TV로 몰아 보았습니다. 꽃누나들의 짐꾼으로 나섰던 이승기가 짐꾼이 아닌 누나들의 ‘짐’으로 전락하는 좌충우돌 해프닝이 참 재미있더군요. 훤칠한 훈남에 엄친아로 대표되는 이승기가 왜 ‘허당’...

  • 아이들의 쓰기 발달 과정아이들의 쓰기 발달 과정

    하태욱·차상진 | 2013. 11. 21

    제 아이가 만 4살쯤 되었을 무렵일 겁니다. 하루는 꾸중을 듣고 제 방으로 들어가서는 한참을 있다가 종이 한 장을 들고 나왔습니다. “나쁜 엄마한테 주는 편지야.”라는 말과 함께 건네준 종이에는 도통 알 수 없는 암호(?)가 적혀있었습니다. ...

인기글

최신댓글

Q.아기기 눈을깜박여요

안녕하세요아기눈으로인해 상담남깁니다20일후면 8개월이 되는 아기입니다점점 나아지겠지 하고 있었는데 8개월인 지금까...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