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몸으로' 하는 세계화 - 글로벌 시대를 위한 자녀교육

하태욱·차상진 2011. 12. 29
조회수 6759 추천수 0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결혼 전, 직장 생활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저와 같은 파트에서 일하던 직속 선배 한분이 계셨습니다. 어린 시절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서 자란 환경 때문인지 독일어에 영어는 기본, 게다가 전공이 불문학이라 불어까지도 구사하는 세계화 인재였습니다. 본인은 불어를 공부하느라 독일어를 많이 잊어버렸는데, 동생들은 독일어를 아주 유창하게 구사한다고 했습니다. 그 선배의 어머님은 자식들을 앉혀놓고 내 자식교육의 모토는 ‘세계화’라고 강조하신답니다. 그 때로 말하면 96년, 김영삼 정권이 한창 ‘세계화’를 강조하던 시절이었으니 시대감각이 무척 뛰어난 어머니셨지요. 

그러던 어느 날 선배의 여동생이 결혼을 하겠다며 독일 남자를 한 명 데리고 왔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지십니다. 외국남자는 절대 안 된다며 완강히 반대하시는 거죠. 그 독일 청년이 맘에 들었던 선배와 남동생은 지원사격에 나섰답니다. “만나보니 참 좋은 사람이더라...” “엄마가 그동안 ‘세계화’가 자식교육의 모토라 하시지 않았느냐...” 뭐 이런 요지였답니다. 하지만 이 어머니는 뜻을 굽히지 않으시며 자식들의 말을 한마디로 일축해버리시더랍니다. 

“아직 세계화는 말로만 할 때지 몸으로 할 때가 아니다.” 

선배 어머님의 이 명언은 동료들의 식사시간, 간식시간에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 어머님은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습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우리 사회는 정말 많이 세계화가 되어있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이제 140여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3%를 육박한답니다. 굳이 통계 자료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평소에 길을 거닐 때나 마트에 가서도 외국인을 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 어머님의 표현을 빌자면 바야흐로 세계화를 ‘몸으로 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야 만 것 같습니다. 

20111229_01.jpg » 한겨레 자료 사진

요즘은 교육에 있어 ‘세계화’ 대신 ‘글로벌 리더’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영어 유치원이 팽배해 있으며, 미국 내 외국인 유학생 8명 중 한명은 한국인이랍니다. 필리핀에 있는 국제학교에서는 한국인 비율을 제한해야 할 만큼 우리나라 유학생이 많다고 합니다. 영어 유치원을 시작으로, 초등 3-5학년 즈음 조기유학 몇 년, 대학 때 어학연수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지금 우리의 모습을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영어만 잘하면 글로벌 리더가 되는 걸까요? 외국물 좀 먹으면 세계화 인재가 되는 걸까요? 

저희 부부가 해마다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국제 컨퍼런스가 있습니다. 저희 부부가 참여하는 컨퍼런스는 국제 사립학교처럼 부유한 공동체 모임이 아니기 때문에 ‘경매’를 통한 기금마련 행사를 진행합니다. 강요는 아니지만 컨퍼런스 참가신청을 마치면 기금마련 경매행사에 관한 이메일이 날아옵니다. 경매를 통해 마련된 기금이 어떻게 사용될 것인가를 안내하는 내용과 함께 ‘혹시 네가 물건을 내놓아준다면 그것은 네가 속해있는 문화가 담뿍 담겨있는 것이면 참 좋겠다’는 부탁의 말이 적혀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참가자들이 내놓은 물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몇 년 전에 저는 장구를 신명나게 연주하는 사진 몇 장과 함께 유아용 장구를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치열한 입찰 경쟁이 있었고, 무척 좋은 가격에 팔렸습니다. 덕분에 저는 참가자들이나 주최 측에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행사를 경험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저들은 ‘나’를 보여 달라고 하는데, 왜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남’을 먼저 가르치려고 할까? 영어책을 읽고 영어동요를 배우느라 우리 이야기를 듣고, 전래동요를 부르면서 전래놀이를 할 시간이 없습니다. 할로윈에 “Trick or treat? (장난칠까요, 아님 맛있는거 줄래요?)”는 신나게 외치면서, 동지 팥죽이나 정월대보름 부럼은 모릅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아이들은 영어는 유창하게 구사하지만, 그 유창한 영어로 설명할 ‘나’는 없게 되지 않을까요?

세계화는 ‘나’로부터 시작합니다. 자존감이 없는 아이가 큰 인물이 될 수 없듯이, 내 문화와 그 가치를 모르는 아이는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 문화’란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문화 보다 더 작은 단위인 ‘가족’에서 시작합니다. 우리 집안의 고향, 직업, 종교, 음식, 의복, 놀이문화 등이 해당되겠지요. 이를 위해서는 부모가 가장 좋은 선생님, 집안이 가장 좋은 교실이 될 수밖에 없는데, 유아기에는 일상의 소소하고 구체적인 경험들을 통한 문화 전수가 가장 바람직합니다. 문화를 가르치고 배우는 데는 간단한 세 가지 사항을 이해하면 됩니다. ‘무엇을?’ ‘어떻게?’ ‘왜?’ 그렇게 하는가에 대한 이해입니다(Williams & Yvonne, 1985). 

예를 들면, 강원도 정선 토박이 제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어머니께서 감자로(무엇을) 옹심이를 만들어 뜨끈하게 수제비를 끓여주십니다(어떻게). 옛날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는 주요한 식량원이었던 것이죠(왜). 그래서 강원도 지방에서는 감자로 만든 요리가 다양하게 발달되었는데 감자옹심이는 퍽퍽한 감자가 쫄깃한 식감으로 변형된 아주 지혜로운 음식입니다. 이렇게 문화를 ‘무엇을?’ ‘어떻게?’ ‘왜?’로 이해하는 것은 생활 속에서 아주 짧고 재미있게 간단히 설명해주시면 됩니다. 아이들이 경험하는 내 가족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친구나 선생님, 이웃 같은 주변 사람들의 가족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로 넓혀집니다. 이런 경험들로 인해 아이들은 서로의 가족문화에 대한 차이를 경험하고 인정하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죠. 이는 곧 전체적인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로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몸으로 하는’ 세계화 시대에는 그 주변 사람들의 문화라는 것이 단위가 무척 커졌습니다. 나와 내 친구의 고향이 서울-정선에서 한국-베트남 단위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하지만 단위가 커졌을 뿐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은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과 다르지 않습니다. 베트남에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쌀요리(무엇을)가 많습니다. 우리의 밥이나 떡처럼 베트남 사람들은 쌀국수나 쌀종이로 음식을 만들어 먹습니다(어떻게). 베트남은 토지의 영양이 풍부해서 세계 3대 쌀 수출국 가운데 하나일 정도로 쌀농사가 잘 된다고 합니다(왜). 특히 북부의 홍강과 남부의 메콩강 삼각주에서 나는 쌀은 무척 유명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무엇을, 어떻게, 왜’ 세 가지 방법을 통해 다른 문화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내 문화와 어떤 것이 다르고 또 비슷한 점은 무엇인가에 대해 배웁니다. 

내 문화에 대한 이해로 시작된 세계화는 자기 주변의 문화를 거쳐 점점 더 넓은 세계로 뻗어나갑니다. 이것이 바로 세계화 교육이며 글로벌 리더를 키워내는 방법입니다. 요즘에는 해외여행도 자유롭고, 인터넷, 여러 분야를 다루고 있는 박물관, 동화책도 잘 발달되어있어 어렵지 않게 주변 문화를 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 어른들이 민감하게 살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다른 문화의 이해는 가급적이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하며, 어떠한 편견도 들어있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다문화 가정의 친구를 통해 우리 아이들은 또 다른 문화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어렵고 힘들 것이며 안됐다는 생각, 그렇게 때문에 도와주어야 한다는 메시지는 우리 아이들의 사고를 오히려 편협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제는 종교에 관해서도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믿는 종교만이 정당하고 그 외의 종교는 인정하지 않는 태도 역시 우리 아이들을 글로벌 리더로 키우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20세기에 지구촌에서 일어난 분쟁이 동서간의 이념 갈등인데 반해, 21세기 분쟁은 종교와 민족 간의 갈등이 주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전국에 퍼져있는 유명한 사찰에 구경 가듯, 광화문 성공회 대성당, 이태원 이슬람 사원,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 명동성당, 여의도 순복음 교회 등도 아이들과 함께 다녀오세요. 구경하다 혹시 눈에 띄는 것이 있거든 아이들과 함께 ‘무엇을, 어떻게, 왜’ 세 가지 사항으로 간단하게 알아보세요. 저는 교회 바자회에서 삼소회 수녀님들이 내놓으신 과일잼, 스님들이 내놓으신 고추장, 정녀님들께서 내놓으신 죽염 등을 사며 아이와 이야기합니다. 이분들이 무엇을, 어떻게, 왜 그렇게 하시는가에 대해서 말이죠. 

우리 아이들의 크레파스 통에 담긴 ‘살색’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전, 제 선생님께서 교실 ‘미술영역’에 마련해야한다며 보여주신 뽀얀 살구색부터 검은색까지 다양한 색깔의 크레용이 들어있던 ‘피부색 상자’에 대한 충격은 아직도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글로벌 리더 교육은 나와 남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 다르다는 것을 당연하게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르고, 다르다는 것은 괜찮은 일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도 저와는 다르듯이 말이죠. 


※참고문헌

-Willams, Leslie R., & Yvonne De Gaetano(1985). ALERTA: A multicultural, bilingual approach to teaching young children. Menlo Park, CA: Addison-Wesley.

-Beth Marshall (1996). Classrooms that reflect family experiences. In Supporting Young Learner 2, p137-42. HighScope Press.

-Mary Hohnman & David Weikart (2002). Educating Young Children. HighScope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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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욱·차상진
우리 시대 교육의 대안을 찾는 교육학자이자 학부모이며 교사이자 실천가. 하태욱은 교육사회학·교육정책·대안교육을, 차상진은 유아교육을 각각 전공했지만, 삶과 밀착된 교육, 아동중심적 교육관의 측면에선 같은 교육관을 갖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하태욱은 대학 강의와 더불어 대안교육연대와 대안교육학부모연대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교육적 대안 마련을 위해 뛰어다니고, 차상진은 아동의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배움을 강조하는 유아교육 프로그램 ‘하이스코프(www.highscope.org)’의 교사·학부모 교육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이메일 : uktaeha@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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