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모국어의 기반 위에서 영어 시작해야

김영훈 2012. 04. 16
조회수 43341 추천수 0

영어공부.jpg » 한겨레 자료사진

요즘 우리나라에선 아이가 영어를 잘하기 원하는 부모들이 신생아 때부터 영어CD를 틀어주기도 하고, 일반유치원 대신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등의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처럼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하여 동서분주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라 할지라도 영어에 있어서 미국사람과 완전히 같아질 수는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 모국어를 주로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영어유치원을 가고 영어노래, 영어동화CD를 아무리 틀어준다고 부모가 바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아이가 완벽히 미국사람과 구분이 안가는 영어를 하길 바란다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와 떨어져서 미국사람과 함께 자라는 방법이외엔 없다.


중요한 것은 원서를 읽고 세미나를 들을 수 있고 전문분야에 대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고급영어이다. 내가 미국 연수를 갔을 때나 해외학회에서 발표를 할 때 영어 발음을 가지고 나에게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없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내 발음의 유창함을 보기보다는 나의 지식과 생각, 그리고 방향성을 주의 깊게 보았다. 말이 어눌해도 전문분야에 지식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누구라도 알아듣는다. 실제로 반기문 유엔사무통장은 영어가 아주 유창하지만 발음은 아주 어눌하다. 그러나 수십억명의 세계인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듣는 모습을 볼 때 영어를 말하는데 있어서 발음보다는 콘텐츠가 훨씬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고급영어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영어발음에 우선을 두기보다는 모국어를 통한 지식 습득이 더 중요한 것이다.


우리나라 엄마들은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다. 내가 모국어가 어느 정도 자리잡힌 5-6세에 해도 늦지 않다고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여도 엄마들에게는 그렇게 확 와닿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영유아기 때부터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장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릴 때 여러 개의 언어를 접할 경우 언어습득 과정에서 겪게 되는 혼란과 어려움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요즈음에는 이제 겨우 만 5세인 아이가 2~3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영유아 시기의 뇌가 영어를 쉽게 받아들이는 장점은 있지만 그 뇌 속에 담기는 콘텐츠에는 차이가 있다. 모국어만 24시간 쓰는 아이와 두 언어를 12시간씩 쓰는 아이에게는 당연히 차이가 존재한다. 완벽한 이중언어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하더라도 미국 아이에 영어 어휘나 표현력이 확실히 부족하다. 그리고 그 차이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커진다. 3-4세에 영어수준은 미국아이와 차이가 많이 나지 않더라도 5-6세만 넘어가도 차이는 명확해진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미교포 아이들의 경우 영어와 한국말을 모두 할 줄 안다고 하더라도 두 언어가 동일한 수준으로 할 수는 없다. 많은 아이들이 한국어는 알아듣기만 하거나 간단한 말만 하는 정도이고 영어는 미국인들에 비해 부족하다. 더구나 부모들이 한국어를 쓴다면 그 아이의 발음은 미국인과 차이가 난다. 모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모국어만 쓰는 아이들이 하는 만큼의 노력을 두 가지 언어 모두에 쏟았을 때에만 가능하다. 결국 모국어와 영어를 모두 쓰는 환경에서는 모국어만 사용하는 이들에 비해서는 약간 또는 많이 부족한 언어실력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이중언어 환경을 만들겠다고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은 하루에 많아야 세시간을 넘기는 힘들다. 영어 유치원에 다닌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영어 수준이 비슷한 한국아이들과 함께 하루종일 지내는 것은 영어 조기교육 환경에 불과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영어로 말하는 것 이전에 사고력이다. 영유아 시기에 영어 조기교육 환경을 조성해 주는 건 아이의 사고력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어 조기 교육에 장점이 존재하지만 모국어의 발달을 저해하는 단점이 더 크기 때문에 영어는 모국어 체계와 사고체계가 어느 정도 완성된 후에 하는 게 좋다. 아이마다 다르겠지만 그 시기는 대략적으로 5-6세 이후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영어교육은 다음과 같은 지침을 따르는 것이 좋다.


첫째, 자연스럽게 배우도록 하자.

이것저것 재미있는 활동을 통하여 영어를 자연스럽게 배워야 한다. 챈트, 노래, 짝 활동, 역할극, 놀이, 게임 등 활동을 통해 영어를 자연스럽게 익히게 하자. 영어동요, 영어동화 등은 다양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줄 수 있다. 영어를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체험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아기의 영어 교육은 아이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느냐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영어를 매개체로 다양한 경험, 생활습관, 또래 아이들과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아이와의 관계나 교감에 초점을 두어 아이가 자발적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교육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듣기부터 시작하자.

아이가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는 경우라면 모룰까, 영어교육의 시작은 부모의 목소리를 통하여 영어를 듣는 것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언어는 소리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문자다. 모국어에 있어서도 아이가 말문이 트일 때까지는 꾸준히 부모나 주변 사람들의 음성을 듣고 모방을 한다. 듣기를 간과한 채 읽기와 쓰기 같은 다른 영역에 포커스를 맞추는 영어교육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같다. 들을 수 없다면 말할 수 없고, 말문이 트이지 않은 채 하는 읽기, 쓰기는 아이에게 스트레스만 줄 뿐이다. 아이는 처음에는 들리는 대로 따라하고, 책을 읽을 줄 아는 아이는 나중에 글자로 확인한다. 글자를 먼저 읽지 않는 것은 아이들이 아는 발음 속에 소리를 가둘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상호작용하면서 배워야 효과가 있다.

단순히 아이에게 영어CD나 DVD를 틀어주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부모와 아이가 서로 영어로 상호작용하면서 배우지 않는다면 효과는 떨어진다. 또한 교재도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영어CD보다는 아이에게 대답을 유도하는 상호작용이 가능한 DVD가 좋다. 분량이 긴 것보다 하나당 1-3분짜리 짧은 에피소드가 반복되는 것이 좋다. 분량은 짧지만, 대사가 무한 반복되면, 중요한 뼈대 문장은 엄청나게 반복되고 짧기 때문에 장기기억으로 넘어간다.


넷째, 영어동요나 짤막한 동화부터 시작하자.

영어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지루한 교재보다는 재미있는 영어동요나 동화, 애니메이션, 유아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을 통한 언어 습득이 더 효과적이다. 부모가 잠자리에서 불러주는 영어 동요, 직접 들려주는 영어 그림책, 아기의 반응을 유도하는 간단한 영어로 말 걸기 같은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5-6세에는 집안에 영어 소리가 넘치게 하자. 아이가 모르는 말이나 처음 접하는 내용의 CD가 아닌 이미 배우고 익숙한 소리를 반복해서 들려주자. 매일 아침 기상시간과 잠자기 전에, 아이에게 신나는 영어 동요, 짤막한 동화를 들려주자.


다섯째, 발음이 나쁘더라도 엄마가 말해주고 따라하게 하라.

부모가 영어에 부담을 느낀다면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입과 귀는 상호작용을 하면 자극을 줄 때 효과적이다. DVD를 보며 아는 영어 단어가 나오면 반가워하고, 엉터리로 따라하던 문장이 책속에 나오면 발견의 기쁨을 느낀다. 이런 기쁜 순간들이 모여 영어를 재미있게 하는 것이다. 영어듣기뿐만 아니라 따라 말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는 제대로 말하기 위해 집중해서 듣는 습관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읽어준 영어동화 속에 나오는 문장, 오늘 본 DVD에 나오는 대사를 엄마가 말해주고 아이가 큰 소리로 여러 번 따라하게 하자. 캐릭터의 말투까지 그대로 흉내내는 것이 좋다. 말하는 사람의 어투나 표정, 손동작까지 따라 흉내내면서 말해보자. 아이는 만화나 영화를 보면 놀이 삼아 할 수 있기 때문에 부모는 자연스럽게 시작 역할만 해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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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및 소아신경과 전문의. ‘부자 아빠’가 대세이던 시절, 그는 “아이 발달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 말했다. 돈 버느라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 보다는 ‘친구 같은 아빠’가 성공하는 아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아이의 인성은 물론 두뇌도 발달한다. 6살 이전의 아이 뇌는 부모의 양육방법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고 그는 강조한다. ‘베이비트리’ 칼럼을 통해 미취학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는 제대로 된 양육법을 소개할 계획이다. <아이의 공부두뇌>, <아이의 공부의욕>, <아이가 똑똑한집 아빠부터 다르다> 등의 책을 펴냈다.
이메일 : pedkyh@catholic.ac.kr       트위터 : pedk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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