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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여름 국수에 왜 ‘우리 밀’ 맛이 안 날까

베이비트리 2015. 06. 22
조회수 2942 추천수 0
우리밀 수확 2만6000톤, 자급률 1%…정부 목표치 10%밖에 달성 못해
90년대 시작된 우리밀살리기 운동연간 소비량 3만톤 벽에 가로막혀
제분 8개사 과점 파리바게뜨가 깨용도별 세분화된 밀가루 기술경쟁
고급 밀가루 전제는 균일한 밀 품질수입밀과 달리 우리밀은 들쭉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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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시 정우면 초강리 들판에서 농부들이 콤바인으로 우리밀을 수확하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 전남, 전북, 경남의 논에서는 우리밀 수확이 한창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전국 우리밀 수확량이 약 2만6000t(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자급률 1% 수준이다. 2011년 정부가 의욕적으로 제시한 2015년 밀 자급률 목표는 10%였다. 목표의 10%밖에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1970년대 초만 해도 밀 자급률은 15%를 웃돌았다. 농사가 잘된 해에는 40%에 육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밀가루 무상원조로 국내 밀 생산기반은 빠르게 약화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정부의 분식장려정책으로 수입밀 의존도가 심화됐고, 1982년 밀 수입 자유화, 1984년 국산 밀 수매제도 폐지 등이 이어지면서 1990년 국내 밀 자급률은 0.05%까지 떨어져 우리밀은 완전히 사라질 지경에 처했다.

1990년대 일부 소비자들과 농가를 중심으로 우리밀 살리기 운동이 시작됐다. 꾸준히 재배면적을 늘려 2011년 생산량 4만3677t, 자급률 2%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듬해인 2012년 생산량은 3만7014t으로 꺾였고, 2013년 이후 2만t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소비자들의 우리밀 소비량이 3만t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과 2012년의 생산량을 소비가 따라가지 못해 가격이 폭락했고, 이에 농가들이 밀 농사를 짓지 않아 재배면적이 크게 줄어들었다.

건강에 대한 관심과 우리 농산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추세인데도 우리밀 소비가 3만t 수준을 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수입밀이 여전히 밀가루 시장의 99%를 점유하는 건 왜일까.

제분업체들 밀가루 생산량 짬짜미

우리나라 밀가루 시장은 1950년대에 설립된 8개 제분업체가 수십년 동안 과점해왔다. 이 중 ‘빅3’로 꼽히는 대한제분, 씨제이(CJ)제일제당, 동아원이 전체 밀가루 시장의 75%가량을 3등분하고 있다. 한국제분협회를 구성하고 있는 8개 제분업체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밀가루 생산량과 판매가격을 짬짜미한 것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돼 434억원의 과징금을 물은 바 있다. 당시 공정위 의결문을 보면, 이 업체들은 매년 국내 총 밀가루 생산량을 함께 결정했고 한국제분협회 회비 분담 비율에 따라 업체별 생산량을 분배했다. 합의된 생산량을 지키고 있는지 서로 실적자료를 교환해 점검하기도 했다. 8개 업체는 가격 인상 폭도 합의했고, 가격 인상을 관철시키기 위해 대형 거래처마다 대표로 가격 협상을 벌일 제분업체를 지정하기도 했다.

8개 업체 중 4위를 차지하는 삼양사의 경우 처음에는 짬짜미에 가담하지 않고 마음대로 생산량을 늘렸는데, 그러자 나머지 7개 업체가 공동용선(밀을 수입하는 배를 함께 쓰는 것)에서 삼양사를 따돌리는 방법으로 보복에 들어갔다. 제분업체들은 모두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 밀을 수입해 온다. 대형 벌크선(컨테이너를 사용하지 않고 바로 화물을 싣는 선박)을 가득 채워 들여올수록 운임단가가 싸진다. 하지만 제분업체 한 곳이 벌크선을 가득 채울 경우 대량의 밀을 한꺼번에 가공할 수 없기 때문에 밀 보관 기간과 보관 비용이 커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제분업체들은 배를 나눠 사용한다. 여기서 배제된 삼양사는 비용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짬짜미에 합류하게 됐다.

SPC 뛰어들자 과점구도 깨져

이런 짬짜미 행태는 제분업체들이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를 했다는 비난을 받기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기술경쟁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씨제이제일제당에서 29년 동안 밀가루와 함께해온 안택준 소재제분기술팀장은 “소비자들의 입맛이 계속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기술 경쟁은 늘 치열했다”고 말했다. 1970년대까지는 다목적 밀가루만 생산됐다. 한 종류의 밀가루로 빵도 굽고 국수도 뽑고 도넛도 튀겼다. 1980년대에 단백질 함량에 따라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이라는 구분이 자리를 잡았다. 단백질 함량이 11% 이상인 강력분 밀가루는 쫄깃쫄깃한 식감의 빵을 만드는 데 적합하고, 단백질 함량 9% 이하인 박력분은 바삭바삭한 과자 등을 만드는 데 적합하다. 강력분과 박력분의 중간인 중력분은 국수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2000년대 이후로 오면서 밀가루는 용도별로 더욱 세분화된다.

전국에 3200여개 가맹점을 둔 국내 최대 프랜차이즈 빵집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에스피시(SPC)그룹은 밀가루 기술 경쟁을 더욱 부추겼다. 에스피시그룹은 라면 시장 1위 업체인 농심과 함께 국내 최대 밀가루 소비 기업으로 꼽힌다. 에스피시는 제분업체들을 상대로 2000~2006년 짬짜미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내 승소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에스피시는 2008년 밀다원이라는 영세 제분업체를 인수했다. 기존 제분업체들이 파리바게뜨 제품에 최적화된 밀가루 개발을 등한시하니 밀다원을 통해 필요한 밀가루를 직접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2009년 2만5000t에 불과했던 밀다원의 밀가루 생산량은 4년 만인 2013년 19만t을 달성했다. 이는 기존 제분업계 4위 삼양사의 생산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60년 동안 지속된 8개 제분업체의 과점 구도가 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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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전쟁에 등 터진 동네빵집

제빵용 밀가루 개발에 적극적인 밀다원은 지난해 국내 최초로 프랑스 밀을 들여왔다. 이전부터 일부 최고급 베이커리들은 프랑스 밀가루를 수입해 사용해왔지만, 프랑스 밀을 들여와 밀가루를 생산한 것은 밀다원이 처음이다. 바게트, 캉파뉴 등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프랑스빵을 만드는 데는 프랑스 밀가루가 최적이라는 게 에스피시의 설명이다.

기존 제분업체들도 베이커리 사업에 진출하면서 수직계열화를 꾀했다. 씨제이그룹 계열사 씨제이푸드빌은 뚜레쥬르로 파리바게뜨와 맞붙었다. 대한제분은 호텔신라 쪽으로부터 아티제를 인수했고, 삼양사는 믹스앤베이크를 차렸다. 제분회사들의 밀가루 전쟁이 골목상권 동네빵집의 몰락과도 닿아 있는 셈이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제분 빅3 중 하나인 동아원은 직접 베이커리 사업에 진출하기보다는 동네빵집을 상대로 한 영업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동아원은 2012년부터 최근까지 자영 베이커리 파티시에와 운영자들을 대상으로 일본 명장의 제빵 세미나를 70차례나 이어오고 있다.

제분업체들의 최신기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 우리밀의 한계를 잘 알 수 있다. 밀을 빻아 밀가루를 만드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쌀가루를 빻는 동네 방앗간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그런 단순한 기술이라면 제분업이 장치산업으로 분류되지도 않을 터이고, 8개 업체의 과점이 그토록 오래 유지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제분기술이 말하는 우리밀의 한계

제분공장에 밀이 투입되면 먼저 수분을 첨가해 껍질을 연하게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된다. 이후 밀은 알갱이를 분쇄하는 롤러와, 크기와 비중에 따라 가루를 분류하는 여과장치를 수십 차례 거친다. 씨제이제일제당 영등포공장의 경우 이런 과정을 통해 밀 한 톨이 각기 다른 성질을 가진 119종류의 가루로 나뉜다. 소 한마리를 도축해 등심, 안심, 양지 등 여러 부위로 나누듯이 밀알의 가장 핵심인 씨눈 부분부터 껍질에 가까운 부분까지 119등분으로 잘게 나눠 가루를 내는 셈이다.

한 톨의 밀 안에서도 부위에 따라 밀가루 품질의 핵심 요소인 단백질 함량과 회분 함량이 3~6배까지 차이가 난다. 성분 차이뿐만 아니라 119가지로 나뉜 가루는 빵이나 과자, 국수로 만들었을 때의 특성도 저마다 다르다. 제분업체는 119종의 가루를 각각 또는 다양한 배합으로 섞어가며 빵, 과자, 국수를 만들어보고 그 특징을 분석한다. 안택준 팀장은 “밀가루 분석을 위해 지금까지 만들어 먹어본 국수가 수만 종이다. 한창 테스트를 할 때에는 하루에 소화제를 네댓 알씩 먹으면서 국수 맛을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요리를 좀 한다는 소비자들도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 3가지 밀가루밖에 모르지만, 기업간 거래의 세계에서는 만들고자 하는 제품에 따라 119종의 가루를 다양하게 조합한 무수히 많은 밀가루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씨제이제일제당의 경우 현재 90여종의 밀가루를 생산하고 있다. 오늘날 빵과 과자, 국수를 먹는 소비자들의 입맛은 이런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밀가루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들쭉날쭉 품질 극복해야…밀값 폭락도

이런 밀가루 기술의 중요한 전제는 재료가 되는 밀의 품질이 일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균일한 품질의 밀을 투입해서 각각의 밀알의 같은 부위에서 나온 가루가 한곳에 모이게 하는 게 핵심 기술인데, 투입되는 밀의 품질이 들쭉날쭉하면 이 기술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우리밀의 치명적인 한계가 여기에 있다.

국내 제분업계가 과점시장이듯 글로벌 곡물거래도 세계적인 몇 개 기업이 과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밀은 7~8종이 전부다. 시에이치에스(CHS), 카길, 시비에이치(CBH), 글렌코어, 시지아이(CGI) 등 글로벌 공룡기업들이 생산한다. 공룡기업들에 의한 대농장 경영은 규모의 경제에 따른 비용절감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일관된 농법에 따른 일관된 품질관리도 가능케 한다. 반면 우리밀은 생산농가 규모가 영세하다. 농가마다 파종 시기도 다르고 사용하는 비료도 다르다. 당연히 수확된 밀의 품질도 다 다르다. 그렇게 생산된 밀이 뒤섞여버린다. 첨단 제분기술로 좋은 품질의 밀가루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우리 정부가 한동안 밀 농업을 포기하다시피 한 것은 맞지만, 최근 들어 우리밀 생산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방부와 협의를 거쳐 우리밀의 군납을 추진했고, 2013년과 2014년 35억원의 예산도 확보했다. 하지만 그 전년도 밀값 폭락으로 농가들이 밀 대신 보리 농사로 쏠리는 바람에 생산이 부족해 예산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다. 농식품부 전한영 식품산업과장은 “우리밀 품종이 수입산에 비해 제분했을 때 특성이 낮고 균일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농촌진흥청 주도로 밀 품종 육종을 추진하고 있고, 농식품부는 밀 전용 농기계 보급과 수확 후 건조저장가공시설 확충을 진행중이다. 가장 큰 문제는 수요다. 수입밀과 우리밀의 가격차가 크다보니 쉽지 않은 여건이지만 밀가루를 많이 사용하는 기업들에 우리밀을 많이 써달라고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밀가루 보관, 기왕이면 냉장고에

밀가루는 냄새와 습기를 잘 흡수하기 때문에 향이 강한 화장품이나 세제 등이 있는 곳에 함께 보관하지 않는 게 좋고, 꼭 밀봉해야 한다.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보관해도 되지만 냉장 혹은 냉동 보관이 더 바람직하다. 씨제이(CJ)제일제당 안택준 소재제분기술팀장은 “밀가루는 물리적인 가공만 한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효소가 들어 있다. 효소 활성화가 일어나 변할 수 있기 때문에 기왕이면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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