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교육자치 취지 맞게
정부·교육청 권한 재정비해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정부와 일선 교육청의 갈등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 뿐 아니라 자사고 지정 취소 , 전교조 징계 등 다양한 교육 이슈에서 중앙정부와 교육청이 부닥치고 있다. ‘교육 자치권’을 주장하는 교육청과 이를 통제하려는 중앙정부의 대립은 이전 정부부터 있었지만,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더 격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대통령 소속 지역발전위원회(지발위)가 사실상의 교육감 직선제 폐지 방안을 내놓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은 헌법재판소에 교육감 직선제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26일 헌재가 ‘교육감 직선제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교육감 직선제 폐지 움직임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진보 교육감들 쪽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재정 압박과 법령 개정 등으로 교육 자치의 손발을 묶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앙정부와 교육청의 소모적인 갈등을 줄이려면 양쪽의 권한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누리예산 공약?

줄 돈은 없어! “교육청이 다 내”

■ 재정압박 최근 양쪽간 갈등의 중심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이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2012년 4452억원이던 것이 2016년 2조1000억원으로 5배 가량 불어났다. 세수 감소와 예산 부담이 누적되면서 지난 2012년 2조원 규모였던 교육청 지방채는 내년에는 14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교육청 쪽에서는 “지난해 누리과정 예산 탓에 학교운영비를 삭감했고, 교원 수도 감축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관계자는 20일 “열악해진 교육 환경과 급증한 부채 문제가 다음 교육감 선거의 쟁점이 될 것”이라며 “교육감들은 정부의 누리과정 예산 압박을 ‘교육감 리더십 발목잡기’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지난 11일 내놓은 2016년 지방교육재정(교육청 예산) 세입 전망은 59조6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인건비 36조9000억원을 비롯한 학교운영비·시설비·채무상환 등 70% 가량이 고정비용이다. 여기에 중앙정부 공약사업인 누리과정 예산 4조원을 얹으면, 교육감들이 교육자치 정책에 재량껏 쓸 수 있는 예산은 별로 없다는 게 교육청 쪽 주장이다.

못 내겠대?

그럼 법을 고쳐! “교육청 의무지출”

■ 법령개정 정부는 교육청 쪽의 반발을 억누르는 방편으로 ‘법령 개정’을 활용하고 있다.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 갈등이 격화한 지난 10월초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비용을 지방교육청의 의무지출경비로 규정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에도 법령 개정으로 교육감 권한을 제어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관내에 난립한 자사고 가운데 지정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학교들을 지정 취소하려 하자,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지정 취소를 교육부 장관의 권한으로 못박았다. 이전에는 교육감이 특성화중·특목고·자사고를 지정·취소할 때 교육부 장관과 ‘협의’를 거치도록 돼 있었으나, 이를 바꿔 교육부 장관의 ‘사전 동의’를 의무화한 것이다.

전교조 징계안해?

행정명령 내려! “거부땐 교육감 고발”

■ 행정명령 교육부는 지난 10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1차 시국선언 참여한 교사에 대한 징계와 관련해, 조만간 교육청에 직무이행명령을 내릴 전망이다. 교육부가 시국선언 참여 교사 2만1400여명을 징계하라고 교육청에 요구했는데, 징계받은 교사가 없기 때문이다. 공립학교 교사 징계는 교육감 권한 사항이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지방자치법에 따라 직무이행명령을 내리고, 명령을 불이행하면 직무유기로 형사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에도 불법 건축물 철거 등에 쓰이는 ‘행정대집행’을 통해 진보 교육감들을 압박하려다 월권 논란에 휩싸였다. 전교조가 1심에서 법외노조(노조아님) 판결을 받은 뒤 교육감들이 미복직 전임자 징계를 미루자, 교육부가 ‘교육감 직권면직 대집행’을 카드로 꺼낸 것이다. 이후 인사 문제는 대집행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법률 해석이 잇따랐고, 2심에서 서울고법이 전교조의 법외노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내년 1월 항소심 선고 때까지 징계가 유보됐다.

■ 정부-교육청 권한정비 필요 교육 전문가들은 지방교육자치의 취지에 맞춰 중앙정부가 교육감한테 정당한 권한을 이양해야 하고, 법으로 양쪽의 권한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직과 교수는 “직선제 도입으로 ‘보수 정부-진보 교육감’처럼 중앙정부와 교육청간 권력 불균형이 상시적으로 일어날텐데, 관련 법들은 교육감 임명제 등이 시행되던 때 만들어져 그런 불일치를 전제하지 않고 있다”고 근본적인 문제를 짚었다. 이어 “장기적으로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의 사무와 권한 관계를 명확히 정한 기본 법령을 제정해야 하고, 교육기본법·초중등교육법·정부조직법·지방자치법·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등에 양자의 사무와 권한을 규율하고 있는 조문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