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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3역 이 눈치 저 눈치…, 워킹맘 맘에 비가 ‘줄줄’

양선아 2016. 05. 18
조회수 6652 추천수 0

이럴 때 사표 생각 ‘굴뚝’

 

어린이집에서 점심 전에 데려오느라

눈썹 날리며 허겁지겁

 

느닷없는 야근에 늦게 퇴근해보니

아이는 아빠 가게 구석에

 

아이 일로 대부분 쓰는 연차에도

너무 많이 쉰다고 눈총

 

아이 낳으라고만 하지 

함께 키우기 고민 안 하는 세상


육아맘.jpg » 이미소(홍은희)씨가 둘째 임신 소식이 알려지자 퇴사 압박을 받고 있는 장면. <MBC>일일 드라마 <워킹맘 육아대디> 예고편 화면 갈무리.

 

“하… 어쩜 이리 쉬운 것이 없냐.”

워킹맘들의 고단한 현실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문화방송(MBC) 일일드라마 <워킹맘, 육아대디>의 주인공 이미소(홍은희)씨의 대사다. 둘째를 임신한 사실이 알려진 뒤 퇴사 압박을 받고 승진도 못한 이씨가 한숨을 푹푹 쉬는 모습에 많은 워킹맘들은 폭풍 공감했다. “아이를 낳으라고만 하지 함께 키우는 법은 고민 안 하는 세상”에서 극중 여성들이 겪는 각종 일들은 거의 현실과 흡사하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워킹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이 드라마를 계기로 워킹맘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직접 들어봤다. 일하면서 아이 키울 때 어떤 점이 가장 힘들고, 어떤 경우 사표를 쓰고 싶은지 워킹맘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남편은 직장 멀다는 핑계로 손 놔

 

11년차 직장인 문아영(가명·35)씨는 최근 3살 아이를 어린이집에 적응시키면서 마음속에서 사표를 여러 번 썼다. “어린이집 적응 기간 2주 동안 아이를 점심 전에 찾아와야 했어요. 시아버지께서 도와주기로 했는데 아버님이 아이 밥을 못 먹이겠다는 거예요.” 문씨는 아이가 점심 식사를 한 뒤 하원했으면 했는데, 어린이집에서는 방침상 안 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문씨는 회사에 사정을 말하고 2주 동안 늦게 출근했다. 오전 11시 반에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와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시아버지 식사까지 챙겨준 뒤 눈썹을 휘날리며 회사로 뛰었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회사에 달려간 문씨는 늦게 출근한 탓에 동료의 눈치를 봐야 했다. 엄마 노릇, 며느리 노릇, 직장인 노릇까지 1인 3역을 해야 하는 문씨는 가끔씩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문씨는 “남편은 회사가 집에서 멀다는 이유로 나 몰라라 하고 나 혼자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며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육아는 온전히 여성 몫”이라고 하소연했다.


회사에서 물품 관리를 맡고 있는 김정은(가명·28)씨는 팀장의 부당한 지시와 무시하는 말 때문에 사표 쓰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 팀장이 급하다고 업무를 시켜요. 제가 아이를 찾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요. 그리고 본인은 퇴근을 하죠.” 갑작스런 업무 지시에 김씨가 야근을 하면, 요리사인 남편은 일하다 말고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찾아와 가게로 데려간다. 일을 마치고 남편이 일하는 식당에 들어선 순간 어린 딸이 혼자 식당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 김씨의 마음에서는 비가 내린다. ‘적게 벌더라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이 옆에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지만 아이 교육비며 생활비를 생각하면 다시 회사로 발길을 향한다. 김씨는 “상사에게 무시당하고 부당한 지시 받는 것도 힘든데 딸이 아프거나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하면 그땐 정말 일을 그만두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법에 있는 거라도 잘 지켜졌으면…

 

146348442764_20160518.JPG10년차 사무직 직원인 박은혜(가명·42)씨는 야근은 필수이고 법적으로 보장된 출산휴가나 연차마저도 눈치 보며 써야 할 때 일을 때려치우고 싶다. 박씨는 “연차 써봐야 학부모 공개 수업이나 부모 상담처럼 아이들을 위해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런데도 상사가 ‘너무 많이 쉬는 것 아니냐?’라는 눈치를 주면 화가 솟구친다”고 말했다. 박씨는 야근을 해야만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하는 조직 문화가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려면 근무 시간에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업무 처리를 하는 직원이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업무와 상관없이 상사와 술을 같이 마시고 담배 같이 피우고 골프나 당구 같이 치러 다니는 남자 직원들이 훨씬 좋은 평가를 받는다. 박씨는 “법적으로 보장된 출산휴가를 시혜 베풀듯 주고, 육아휴직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회사가 여전히 너무나 많다”며 “법에 있는 내용이라도 잘 지켜지면 워킹맘들의 삶이 한결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현숙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장은 “정부가 보육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등 다양화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워킹맘들은 일과 가정 병행 자체가 너무 힘들다는 호소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2014년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웅진씽크빅 단행본 출판그룹이 ‘일하는 엄마의 생활’에 대해 조사한 결과, 워킹맘의 81%는 ‘일과 육아의 병행이 힘들어 직장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직장을 그만두려는 이유(복수응답)는 ‘체력적으로 견디기 힘들어서’(35%)라는 대답이 1위였고 뒤를 이어 ‘아이가 아픈데도 돌봐주지 못할 때’(34%)나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34%) 등의 차례였다. 황 센터장은 “무작정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써야 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왜 못 쓰는지 구체적으로 사례를 분석하고 정부가 촘촘한 방안을 짜내야 한다”며 “단순히 어떤 제도를 만들었다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선아 기자anmadang@hani.co.kr


[관련기사]

‘욱’하고 치밀어오를 땐 ‘꾹’ 참고 이렇게


512.jpg » 엄마와 아이들이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다. 워킹맘으로서 받는 다양한 스트레스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나누면 힘든 상황도 좀 더 쉽게 풀 수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 이심전심, 워킹맘들과 모임을 열어라

서울 동작구에서 ‘직장맘 인생설계학교’ 모임을 3년째 이끌고 있 한정아(40)씨는 같은 처지에 있는 워킹맘들과의 모임이 에너지의 원천이다. 한씨는 지역에 있는 워킹맘 50여명과 비공개 온라인 밴드를 만들어 소통을 한다. 한 달에 1~2번 주말에 전체 모임을 하고, 텃밭 모임, 인문학 책읽기 모임, 숲 체험 등 관심 주제별로 각자 소모임을 꾸린다. 전체 모임을 할 때는 주중에 일하느라 피곤함에 찌들어 있으니 돈을 십시일반 나눠 아이 돌봄 프로그램을 만들어 모임을 연다. 한씨는 “서로 힘든 점도 털어놓을 수 있고 서로 말하지 않아도 이해해주니 좋다”며 “워킹맘 모임을 만들라”고 조언했다. 

 

# 종이에 사표 손익계산서를 작성해보라

<워킹맘 생존육아>(한국경제신문 펴냄)의 저자 박란희씨는 “사표를 쓰고 싶은 날엔 종이 한 장을 꺼내 사표 손익계산서를 써보라”고 권한다. A4 용지를 절반으로 나눠서 사표를 썼을 때와 안 썼을 때의 장단점을 죽 써보는 것이다. 그렇게 종이에 글을 쓰다 보면 욱하는 감정도 가라앉고 문제의 해결책이 좀더 선명하게 보인다. 때로는 아이 문제를 핑계로 힘든 회사일을 도피하려 사표를 선택하고 싶은 경우도 있으니, 지금 내 상황을 면밀히 객관적으로 잘 살펴보라는 것이다. 힘든 시기는 지나고, 나중에 좀더 여유롭게 웃는 자기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 일터에 남아 변화를 위해 행동하라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웅진윙스 펴냄)를 쓴 레슬리 베네츠는 여성들에게 일과 가정 중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경제적 자립을 포기한 뒤 불행을 겪은 미국 여성들의 삶을 조명한 그는 단순히 직장을 그만두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허상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동시에 일과 가정의 병행 문제는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임을 분명하게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레슬리 베네츠는 변화를 위해 여성들이 직접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뉴욕 타임스>에서 10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한 저자도 남녀에게 동등한 임금을 줄 것을 요구하고, 미혼 여성과 기혼 여성을 구분하는 호칭을 폐지할 것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해 조직이 조금씩 바뀌었다. 현재 조직의 문제가 무엇이고 여성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동료 여성들과 이야기하고 그것을 조직에 알리자. 또 협상 능력을 키워 자기 몫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양선아 기자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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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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