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신 30% 자연유산 초기 석 달이 중요
» 당당한 예비맘. 한겨레 자료사진
“삶과 죽음” 항상 가슴으로 느껴지는 말이다.
우리 일생의 처음과 끝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단어들이다. 한방부인과 진료실에 있으면서, 새 생명의 탄생 소식이나 임신 성공을 들을 때는 뛸 듯이 기쁘고 덩달아 삶의 희열까지 느낀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죽음(유산)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느끼게 된다. 유산 후에 조리를 위해 방문하는 여성들을 만날 때 전해지는 그 슬픔은 수년간 환자를 만나왔지만 여전히 익숙해 지지 않는다. 유산 후에 양가 어르신 중 누구라도 같이 오는 경우에는 슬픔과 함께 죄책감도 느껴지는 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 강조하고 싶은 건 슬퍼할 수는 있지만 죄책감은 느끼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유산은 적자생존의 냉혹한 자연의 섭리에 오는 사건일 수 있는 것이다. 태아의 이상으로 유산되는 경우도 있고, 그 외에 다양한 원인들이 있고, 전혀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냥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맞닥뜨리게 되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누구의 잘잘못으로 따질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 몸의 자연스러움을 지켜주고, 다음 기회에 건강한 임신을 위해서 꼭 남편과 함께 준비해주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한의학에서 인간이 자연의 섭리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인간의 생리와 병리 문제도 자연의 이치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유산을 설명하는데, ‘마치 나뭇가지가 마르면 열매가 떨어지고, 넝쿨이 시들면 꽃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때는 여성의 혈기가 부족하고 손상 받아서 충분히 태아를 영양하지 못하여 유산되는 상황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 외에도 유산되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임산부가 과로하거나 성을 내서 마음속에 화가 발생되어서 몸에 열기가 높아 질 때도 유산될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이는 바람이 불거나 불이 나면 물건을 태워버릴 때로 비유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도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서 유산이 되는 경우가 있는 데, 이런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가 보다. 혹시라도 이러한 유산의 원인이 임산부의 잘못된 행동이라고 질책하려는 의도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스트레스 자체는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생길 수 있는 것이지만,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균형상태가 깨지는 것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스트레스로 인해서 생기는 우리 몸의 열기가 꽉 찬 상태를 해결하지 못하는 몸에 있는 음양의 불균형상태가 된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유산의 원인으로 산모의 몸이 허해졌거나, 열이 찬 상태가 되는 것을 강조하고 그 부분을 개선하는 치료를 하는 것이다.
출산 후에는 주위에서 축하도 해주며, 빠른 회복을 위해서 여러 가지 몸에 좋다는 것들을 해준다. 이러한 관심과 격려가 산모의 회복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유산 한 후에 조리나 관리에 소홀한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기도 하고, 부모님들께 죄송한 면도 있어서, 빨리 회사 업무에 복귀하느라 정작 유산한 산모의 회복에는 소홀히 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동의보감에서 유산에 대해서 ‘채 익지 않은 밤을 따서 밤톨을 발라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밤이 다 익으면 밤송이가 스스로 벌어져서 매끈하게 밤이 분리되어서 까지지만, 익기 전에 밤을 꺼내려면 속에 엉겨있는 조직이 지저분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산 후에 자궁 내의 손상으로 유착이 생기게 되면, 다음 임신이 잘 안되거나 자궁외 임신을 유발할 수 있다. 이처럼 유산 후에는 자궁 손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분만을 했을 때보다 “유산 후에 10배나 더 잘 조리하고 치료해야 한다”고 허준 선생님도 강조하셨다. 유산은 긴 임신과정의 신체 변화가 오기 전이기 때문에 유산 이후에 특별한 조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임상연구에서도 자율신경계 이상과 순환장애 증상이 많은 걸로 보고되고 있다. 좀 쉬운 말로 유산 후에 무기력, 피로 뿐 아니라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고, 시린 증상이 산후풍처럼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때는 출산 후 조리와 같게, 한약 중에서 기혈을 보충해주고, 어혈을 없애서 순환을 개선시키는 치료를 꼭 받는 것이 좋다.
일단 유산 후 조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이 말은 너무 당연해서 말하기 민망할 지경이다. 자연유산의 확률은 생각보다 높은데, 확인된 임신의 15~20%는 자연 유산이 된다. 임신으로 확인되지 않고 모르고 지나쳐가는 유산까지 고려하면 30%정도는 자연유산이 된다고 한다. 그럼 필자가 강조하는 유산 예방을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때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다. 임신은 여성의 일생에서 가장 큰 변화의 시기인데, 특히 임신 첫 3개월이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다. 물론 이때는 외형적으로 보이는 변화보다 실제 뱃속에서 태아가 만들어지는 매우 중요한 변화의 시기이다. 그래서 배가 남산만 해졌다고 표현하는 임신 중기 이후보다 임신 초기에 안정과 휴식이 더 필요하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임신 초기에 신체 외적 변화가 없어서 임신 전과 똑같이 생활한다면 몸에 무리가 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실제로 자연유산의 약 80% 는 임신 초기 3개월, 12주 이전에 발생한다. 그래서 진료실에서 만나는 임산부에게 ‘초기에는 많이 자고, 일찍 자고, 무리한 여행 피하고, 음식도 소화 잘 되고 편안한 음식을 먹으라’고 꼭꼭 강조한다. 현실적으로는 이 대목에서 안타까운 상황들이 생긴다. 임신 초기에는 잠이 많이 오고 피로감을 느끼는데, 업무 때문에 커피를 많이 마셔서라도 잠을 쫓아야 할 상황이 오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되었든, 현실적인 문제는 자신의 여건에 맞는 창조적인 방법으로 잘 풀어 나가는 게 좋다. 커피도 하루 한잔 정도는 괜찮다.) 흔히 임산부의 힘든 점을 설명할 때, 배가 나오고 체중이 늘어서 힘든 상황만 배려하기 위해서 임산부 체험활동에서도 10여 킬로그램이 넘는 무게의 옷을 입어보는 체험을 통해 홍보하기도 한다. 사실 더 중요한 시기는 배도 안 나오고 외형상으로 변화가 없는 임신 후 첫 3개월이다. 이 시기의 임산부에게 훨씬 많은 도움을 주고 여러 가지 배려를 해줘야 한다. 이런 초기에 외형상으로 임산부가 드러나지 않을 때에 오히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해주고, 힘들지 않게 해주는 사회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한때 임산부임을 알려주는 배지를 나눠준 적이 있는데, 울 아들 두 명 낳을 동안 구해보려고 해도 쉽게 못 구한 기억이 있다. 배가 나오기 전 임신 초기에 30% 정도 되는 자연유산 방지를 위해서 여러 가지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초기 자연유산 1회 한 경우 다음번에 연속적으로 유산될 확률은 20% 이다. 이 수치는 일반적인 자연유산 확률과 비슷하기 때문에 사실 유산을 이미 했다고 해서 다음 번 임신에서 유산이 더 잘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수치이다. 그럼, 유산 후에 그냥 아무것도 안 할 것인가? 그건 다른 문제이다. 일단 유산이 되었다면 내 몸에서 뭔가 부족하거나 문제되는 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적극적으로 개선시켜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번에 성공적인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습관성 유산의 경우 유전자 검사를 비롯해서 여러 검사를 하지만, 외래에서 원인 불명인 경우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런 경우는 기능적인 불균형이 원인이 될 수 있고, 한의학적 진단과 치료가 효과적이다.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