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취학 전까지 책보다 몸

이정희 2015. 05. 15
조회수 13402 추천수 0

03913021_P_0.JPG » 한겨레 자료 사진.


"어쩌지요? 제 마음이 휘둘리고 있어요! 30개월 된 딸을 위해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지 고민이네요. 아기 박람회에 가서 어떤 북클럽을 알게 되었는데, 방문 판매원이 요즘 매일 찾아와서 초보 맘인 저를 설득합니다. 제가 망설이고 있으니까 ‘태평한 엄마들이 대부분 아이들을 바보 만들기 쉽다’고 협박성 홍보를 하여서 얼떨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체 조건으로 보아서, 내용이 제법 풍부해 보여서 솔깃해지기도 합니다. 매달 일정 지불액을 계약하면, 우선 실물 책 300권을 받고 년간 약 3000권의 전자책을 마음대로 볼 수 있답니다. 그리고 약정기간 지나면, 아이패드 소유권을 넘겨준대요. 그렇지만 전자기기의 화면을 보면서 듣는 책 낭송이 아이들에게 과연 좋은 것인가 제 자신 의문이 들어서 상담 요청합니다."

 

자녀 양육을 위해, 특히 비용 지불을 위해 엄마들이 단호한 결정을 내리기 직전의 망설임은 거의 일정합니다.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부분은 '내 아이의 뒤처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염려증 입니다. 특히 초보 맘 일수록 아이 발달을 위한 물질적 뒷받침에 아낌없이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가정뿐 아니라 영유아 현장에 이미 컴퓨터 및 다양한 종류의 미디어 매체 사용이 일상적입니다. 많은 어른들은 현재 미디어-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기기 사용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영유아기의 발달과정에서 전자 매체를 통한 이른바 '미디어 교육'은 얼마나 효과적일까요? 컴퓨터를 포함한 전자기기들이 과연 사람을 대신하여 아이 발달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을까요?

 

건강한 아동 발달의 핵심은 취학 전까지 아이가 세상을 직접 만져보며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아이가 자신의 감각 작용들을 통해 실제 세상을 만날 때 가능합니다. 즉 아이들은 대상물들을 손으로 만지며 자신의 감각 작용을 통해 세상을 몸으로 체험하며 알아가야 합니다.

 

이에 반하여 특정 매체의 프로그램화 된 소프트웨어는 세상에 대한 아이의 관심을 축소시킬 수 있습니다. 건강한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관심에 따라, 놀이 상황에 따라 스스로 매일 세상을 새롭게 만들며 즐거워합니다. 이에 반하여 미디어를 통한 세상은 아이에게 이미 정해진 것으로 다가옵니다. 즉 제공된 미디어 프로그램을 쫒아가는 놀이 방식은 아이의 능동성을 빼앗아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기는 늘 수동적 자세를 취하며, 이것에 서서히 길들여집니다.

 

특히 현대 자연과학의 연구 결과에 따라 사람의 뇌 발달은 움직임과 직접 연결되며, 섬세한 뇌 신경세포는 신체의 활동성에 좌우된다는 것을 상식으로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체와 뇌의 이런 연관성을 토대로 아이의 건강한 발달을 위해 감각작용과 움직임을 통합적으로 촉진시키는 방법을 생각해야합니다.

 

결과적으로 미디어 디지털 세대의 주인공이 될 아이들에게 때 이른 전자 매체의 노출은 매우 위험합니다. 취학 전까지 아동 발달의 중심과제는 무엇보다 아동의 신체 발달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가정이나 유아 현장에 비치된 다양한 실물 책과 프로그램에 저장된 수많은 전자책은 유익하지 않습니다. 어른이 이것을 제공하는 기회와 시간이 많을수록 아이 발달은 커다란 방해를 받게 됩니다.

 

 Q. 두 살 터울로 아들만 둘입니다. 저희 집은 거실의 물건들이 제자리에 놓여있는 날이 없습니다. 아이 방은 폭탄 몇 개가 동시에 떨어진 상태로 엉망입니다. 그 대신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것 바라보면 흡족해요. 그런데 제가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어쩔 수 없이 매일 1시간가량 비디오나 텔레비전을 틀어줍니다. 다행히 두 아이 모두가 텔레비전에 빠지면 아주 조용하므로, 제가 집안일을 하기에 좋지만 늘 마음이 찜찜합니다.

그런데 유치원에서 조차 귀가 지도 전에 아이들에게 텔레비전 시청을 제공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번 학부모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원장님께서 누리과정 시간에도 미디어를 사용한다고 하셨어요. 집과 현장에서 아이들이 거의 매일 약1- 2시간 화면 앞에 앉아있는 것이 좀 걱정입니다.


A. 어린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동안 장난감과 집안 물건들이 뒤죽박죽 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느 현장에서는 교사들이 놀잇감을 치우기 싫어서 진열만 해 놓는 경우도 있다지만, 가정에서 아이들이 맘껏 노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런데 저녁 준비할 때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을 보여주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세요. 오히려 엄마가 있는 주방에서 아이들이 놀도록 하세요. 아이가 조용히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것 보다 자신의 손과 발을 움직이며 노는 것이 유아기의 감각 발달에 직접적인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유아현장에서 귀가 지도를 하는 자투리 시간에 비디오 시청을 “잠깐” 제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일 “잠깐”이 누적되면, 그 시간의 길이는 더 이상 “잠깐”이 아닙니다. 게다가 현장에서 하루 일과 중 어떤 프로그램을 위해 전자 매체를 사용하는 것은 바림직하지 않습니다. 기계가 사람을 대체할 수 없으니까요!

결론적으로 가정과 유아현장에서 전자 매체 기기들이 소위 ‘베이비시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면 앞에 아이가 ‘조용히’ 앉아있을 때, 아이의 뇌는 ‘조용히’ 정지된 상태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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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 박사 과정까지 마치고 귀국, 이때부터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창의력, 상상력, 자질 발현을 중요시 여기는 교육학자. 사회변화는 교육문화의 개선에서 시작된다는 확신으로 슈타이너의 발도르프 교육 서적을 번역하고 강의하다가, 뒤늦게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도르프 사범대학에서 슈타이너 인지학과 발도르프 교육학을 전공했다. 2000년부터 (사)한국루돌프슈타이너인지학연구센터를 이끌며 번역서로 <아이들은 머리로 배우나>, <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 등이 있다.
이메일 : charirang123@hanmail.net       트위터 : steinercenter      
홈페이지 : http://steiner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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