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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 분유비 지원, 모유 수유 ‘젖줄’ 말릴라

양선아 2015. 10. 27
조회수 11659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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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층에게 분유비 지원하면 경제적 도움은 되겠죠. 그러나 정부가 국민 건강을 생각한다면 이런 근시안적인 정책을 내놓아선 안 되지요. 모유수유율을 걱정해도 모자랄 판에….”

특정 항목 지정해
양육비 지원하는 나라 없어

아동수당이 저출산 해결에 바람직
한국 등 4개국만 아동수당 없어

2012년 완전모유수유율
2009년 비해 10%p 줄어

모유는 영양학·면역학적으로
영유아에게 가장 이상적인 식품
엄마도 유방암과 난소암 감소

미·영은 분유 마케팅 등 규제
육아휴직 등 정책 지원 앞서야

보건의료 정책을 연구하는 한 연구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저소득층 기저귀·분유 지원 사업’에 관한 보도를 접하고서다. 최근 모유수유율이 감소세로 돌아선 가운데, 정부의 분유비 지원 발표가 자칫 모유수유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3년 김혜련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이 <보건복지포럼>에 게재한 ‘한국의 모유 수유 실천 양상과 영향 요인’ 보고서를 보면, 2000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던 모유수유율이 2009년에 비해 2012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 실태조사 통계를 3년마다 작성한다. 2015년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2012년 1~2개월 된 아기의 완전모유수유율(보충식을 먹이지 않고 모유만 먹인 경우)은 56.7%로 2009년(65.2%)에 비해 10%포인트 가까이 줄었다. 2000년 35.2%, 2003년 45.6%, 2006년 51.9%로 증가하던 완전모유수유율이 처음으로 줄어든 것이다. 보충식을 같이 먹인 비율도 2006년 52%, 2009년 65%로 점차 증가하다 지난해 56.7%로 감소했다. 3~4개월, 5~6개월의 아기 역시 완전모유수유율이 2009년도에 비해 각각 7%포인트, 4%포인트 줄었다.

모유수유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을 예의주시한다. 모유는 영양학적으로도, 면역학적으로도 영유아에게 가장 이상적인 식품이다. 모유수유는 여성에게도 이점이 많아 유방암과 난소암, 당뇨병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렇게 모유수유율이 줄고 분유 소비가 늘어난다면, 사회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2010년 신손문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한양 메디컬 리뷰’에 게재한 ‘모유수유의 경제적 효과’를 보면 모유수유의 장점을 가늠해볼 수 있다. 2008년도에 태어난 총 46만6천명의 신생아의 모유수유율이 당시 모유수유율(6개월 이상 완전모유수유율) 35%에서 50%로 향상된다면, 연간 2164억~4075억원의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신 전문의는 추정했다. 모유수유의 이러한 측면 때문에 세계보건기구와 유니세프에서는 산후 첫 6개월 동안 어떤 다른 보충식도 주지 않고 모유만을 주는 완전모유수유를 권고하고 있다. 또 전세계 국가들은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인 모유수유 권장 정책들도 펼치고 있다. 미국은 분유회사의 마케팅을 규제하고, 영국은 분유에 대한 규제와 모니터링,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등 분유 관련 규제책을 실시할 정도다. 모유수유를 권장해온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저소득층 양육비 지원 방법은 분유비 지원 방식이 아니라도 다른 방식으로 가능하다”며 “사업 타이틀에 분유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만 봐도 정부가 얼마나 모자보건 정책에 무관심한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도 최근 복지부에 전달한 의견서에서 “분유비 지원 대상을 질병을 가진 산모로 한정한다 하더라도, 국민들은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구분 없이 분유 구입 비용을 지원하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 단체는 “정부가 분유비 구입 비용이 아닌 양육비 지원 등의 방식으로 변경해 국민들이 모유수유 실천 의지를 높일 수 있도록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민 건강 증진과 사회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해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모유수유율 향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혜련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은 모유수유율 제고 방안으로 △육아휴직 제도 정착화 △모자동실 운영 병원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모유수유 공익광고 시행 △분유 광고 규제 등을 꼽았다.

한편, 기저귀와 분유라는 특정 항목을 정해 저소득층 양육비를 지원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은 “오이시디(OECD) 국가 가운데 어느 나라에서도 이렇게 특정 항목을 정해 양육비를 지원하는 나라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양육비 지원책이라면 아동수당 도입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오이시디 회원국 대부분은 아동수당제를 도입했고, 아동수당을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 미국, 터키, 멕시코 4개국뿐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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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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