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교육

선녀할머니의 알몸, 미소가 절로

베이비트리 2012. 09. 11
조회수 9942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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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탕 선녀님>
백희나 지음/책읽는곰·1만1000원

‘구름빵’ 백희나 작가의 새 판타지
팔등신 몸매 좇는 강박증에 일갈
점토 재료로 해학 넘친 그림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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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백희나! 싶은 그림책이 나왔다. <장수탕 선녀님>이 그것이다. 백희나의 그림책은 환상 가득하되 현실에 굳건히 발붙인 글 텍스트, 말문이 막힐 정도로 정교하고 치밀하게 제작한 미니어처 인형과 물건들을 사용한 그림 텍스트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진지한 메시지도 담고 있다. <구름빵>은 꽉 막힌 지상을 떠나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자유를 안겨주고, <달샤베트>는 문명사회의 욕망 가득한 열기를 시원하게 식혀주었으며, 이 책은 현대적 디자인 사회의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을 일거에 물리쳐준다.

<장수탕 선녀님>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엄마와 목욕탕에 간 여자아이가 냉탕에서 선녀할머니를 만나 신나게 놀고, 요구르트를 선물하고, 집에 와서 감기를 앓는데, 밤에 찾아온 선녀할머니의 손길에 씻은 듯이 낫는다. 우리는 여기서 어린 시절 목욕탕에서 놀던 추억을 떠올리며 흐뭇해질 수도 있고, 할머니 세대와 손녀 세대의 어울림을 교훈으로 추려낼 수도 있다. 뜨거운 물과 모진(!) ‘이태리타올’을 견뎌내는 인내심도 아이에게 배우게 할 수 있으며, 요구르트를 주는가 하면 답례로 치유의 손길을 건네는 나눔의 미덕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표정 풍부하고 동작 생생한 점토 인형들과 아기자기한 소품에 감탄할 수도 있다. ‘나무꾼과 선녀’의 선녀를 유쾌하게 비틀어 보여주는 발상이 신선하다. ‘요구르트’를 보기만 했지 이름도 모를 정도로 아무와도 교류 없이 늙어버린 선녀할머니를 알아봐주고 그 존재를 인정해준 아이의 상상력 넘치는 눈이 기특하기도 하다.

그중 가장 강력하고 파격적인 모티프는 ‘알몸’이다. 노년, 중년, 유년의 여자들의 벗은 몸이 이렇게 거침없이 노출되는 그림책은 아마 없을 것이다. 처음 책을 펼쳐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불편하고 불안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마음을 놓으면서 미소를 짓다가, 아하하 웃음을 터뜨릴 수 있게 된다. 점토라는 재료, 물속이라는 배경, 해학 넘치는 얼굴들이 안전장치 구실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의 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식스팩 복근과 날씬한 팔등신을 우상으로 섬기면서 그 제단에 식이요법과 운동이라는 제물을 열심히 바치는 우리 사회. 디자인되지 않은 몸은 몸으로 여기지도 않는 시대에 이 여자들, 특히 선녀할머니의 알몸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튀어나온 배와 늘어진 젖가슴, 울퉁불퉁한 팔다리의 선을 이렇게 당당하게 전면적으로 내세우다니!

그러나 책을 거듭 볼수록 그 충격은 안도감으로, 즐거움으로, 그리고 통쾌함으로 바뀐다. 이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고 우리의 자연스럽고 건강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몸이 아니겠는가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름다운 몸과 얼굴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강박적인 추구를 가벼운 코웃음과 함께 튕겨 내보낼 수 있는 강단까지 슬그머니 생기는 것 같다. 금기를 깨다시피 한 소재,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는 듯한 새로운 기법으로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백희나의 이 책을 보는 건, 한 번 읽고 접을 일이 아니다. 볼수록 새록새록 즐거움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책은 그리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서정/작가·중앙대 강의교수, 그림 책읽는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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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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