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유아기 그림책 평생의 경쟁력

김영훈 2013. 12. 02
조회수 16728 추천수 0

두뇌발달의 기본은 ‘언어’


20131127_2.jpg » 한겨레 자료 사진.


“지니가 태어난 지 13년만에 한 이웃의 신고로 마침내 엄마와 탈출했다.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지니는 발성기관, 성대, 뇌기능에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언어력은 몇 가지 의성어가 전부였다. 언어학자와 심리학자들이 지니가 17세가 될 때까지 5년 이상 집중적으로 언어교육을 시도했지만 지니는 약 2년 만에 120개 정도의 단어를 말할 수 있은 이후 단어는 늘지 않았고, 문장으로 말하는 능력도 개선되지 않았다.”


결정적 시기라는 것이 있다. 그 시기는 대체로 생후 8개월부터 6세 이전까지다. 약 6년에 걸친 이 시기는 12개월, 18개월, 4세 등 비교적 짧고 집중된 세부적인 결정적 시기로 다시 나뉘어진다. 아기는 12개월 무렵까지 수천 번, 혹은 수만 번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듣게 되는데, 이 반복적인 자극이 아기의 뇌발달에 중요한 기반이 된다. 조물주가 뇌에 유전적으로 프로그램해 넣은 언어의 시냅스는 부모 혹은 주 양육자가 아기에게 전해주는 언어자극에 의하여 다듬어지고 완성된다. 이 결정적 시기에 언어적 자극을 받지 못하면 지니처럼 되돌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외국어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에 이민을 온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4세 이전, 12세 이전, 18세 이후에 이민을 온 사람들의 영어능력을 분석하였더니 4세 이전에 이민을 온 사람들은 발음, 억양, 강세, 문법 구조 등이 모두 완벽했고, 12세 이전에 이민 온 사람들은 발음, 억양, 강세 등에서는 완벽했지만 문법 구조에서 약간의 혼선이 있었고, 18세 이후에 이민을 온 사람들은 심한 모국어 억양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언어를 배우는데 결정적 시기가 있는 것이다.


그림책은 언어의 결정적 시기를 잘 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기에게 언어자극을 줄 때 대화가 길고 재미있으려면 그림책의 도움이 필요하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들은 아무리 변화를 주려고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림책 한 권만 있으면 아이와 10분 이상 대화가 가능하다. 언어발달을 위해서는 부모가 하루 10분 이상, 가능하다면 30분쯤 아이에게 온 마음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좋다.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서 상쾌한 기분일 때, 맛있는 간식을 먹을 때, 목욕을 마치고 개운할 때, 잠 자기 전 편안할 때 그림책을 매개로 아이와 단둘이 대화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하버드 대학의 캐서린 스노우(Catherine Snow)에 의하면 그림책읽기와 ‘밥상머리 대화’의 양이 향후 독서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한다. 아이의 언어발달이나 독서력을 키우려면, 그저 아이에게 말을 걸고, 그림책을 읽어주고,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말걸기 육아가 가장 중요하다.


언어발달이나 독서력은 상호 의사소통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방안에 켜져 있는 TV나 CD플레이어에서 들리는 말들이 아기의 언어 발달에 도움을 주지 못하듯이 아기의 흥미에 관심을 표해주고 아기의 소리에 반응을 해주지 않고 보여주는 그림책은 아기의 독서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앤드류 바이밀러(Andrew Biemiller)는 한 연구에서 어휘력이 하위 25%에 속하는 유치원생들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어휘력와 독해력에서 3년이 뒤처진다고 하였다. 어휘력 발달과 이후 독해력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유아 시절에 그림책을 읽어주지 않아 어휘력이 부족하면 독해력과 같은 평생의 경쟁력을 잃어버리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이렇게 언어 발달은 아이의 인생에 끊임없이 연결된다.


가장 손쉽고, 질 높은 언어자극물


그림책에 나오는 낱말들이 평소에 대화할 때 사용하는 언어보다 훨씬 더 다양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림책을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하기의 중요한 발달은 36개월 이전에 이루어진다. 부모가 얼마나 풍부한 언어 환경을 만들어 주느냐에 따라 아이의 평생 어휘력이 결정된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아이는 정서적으로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나를 구분해주는 정서적 차이를 알게 된다. 그와함께 아이는 인지적으로도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아이는 그림책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림과 함께 존재하는 문자를 발견하게 되고 그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다. 그림책의 언어는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직접 표현하는 일이 거의 없는 단어들이 많고 부모도 일상생활에서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 문제에 대한 단어도 들어있다. 그림책에서 사용되는 특별한 어휘는 구어에서 전혀 볼 수 없다. 


따라서 그림책 언어에는 일상적인 언어와 약간 다른 관념적, 언어적 특징이 있기 때문에 아이의 인지발달에 많은 영향을 준다. 실제로 유치원에 들어가는 5세의 아이들은 대부분 1만 개의 어휘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의 중요 원천은 바로 그림책이다. 부모가 그림책을 읽어주면 일상 대화에서는 배울 수 없는 고급 어휘를 알게 된다. 일상 대화는 생활이 중심이지만, 그림책을 통하면 개념어, 학문어, 문학어까지 가르쳐 줄 수 있다. 그림책의 언어가 특별한 것은 아이의 어휘력을 확장시킬 뿐 아니라 일상대화를 통해서는 배울 수 없는 문장내 단어들의 의미적 관계나 문법적 구조를 익히기 때문에 인지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연구에 의하면 그림책을 많이 읽어준 아이들은 일상적인 일을 이야기할 때도 책에 나오는 특별한 문어체 언어와 긴 문장, 관계사절 등 복잡한 형태의 단어들 간의 의미적 관계, 문법적 구조를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말할 때 다양한 의미적 관계와 문법적 구조를 사용하는 아이는 다른 사람의 말과 글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언어력과 인지력은 아이가 커서 혼자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독해력을 향상시키는데 기초체력이 된다. 그림책 언어의 또 다른 특징은 문장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은유와 직유같은 비유적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림책에서 읽은 ‘비단결같은 머리카락과 앵두같은 입술’과 같은 직유표현은 어느 정도의 인지력이 필요하다. ’머리카락‘을 ’비단‘에 비교하고 ’입술‘을 ’앵두‘에 비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어휘력이 높아질 뿐 아니라 인지적으로 복잡한 유추를 사용하게 된다.


언어발달에 맞춰 그림책 읽기


언어발달에 도움을 주는 그림책 읽기는 다음과 같은 지침을 따르는 것이 좋다.


첫째,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의 언어발달을 위해 필요한 것은 그림책을 읽을 때 기계처럼 일방적으로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아채고 잘 반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꼭 말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신체접촉이나 표정 등도 포함되어야 한다. 좋은 그림책은 부모와 아이가 질 높고 즐거운 소통을 시작하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림책을 읽을 때 중요한 것은 부모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며, 아이가 그림책을 가리키며 단순한 ‘아-아’ 라고 소리를 내는 것에도 반응해주며 열심히 부모가 이야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둘째, 즐거운 대화를 하자.

‘이게 뭐니?’라는 질문은 하지 말자. 그림책은 교육의 도구이기 이전에, 부모와 자녀가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감정을 나누는 도구이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말놀이 게임으로 어휘에 관심을 불러일으켜도 좋고, 어려운 단어의 뜻을 물어보더라도 아이가 짐작할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가 어려운 단어의 뜻을 짐작할 때 칭찬을 해주면, 아이들은 모르는 어휘가 나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짐작해 보려고 노력한다.


셋째, 글자를 가르치는 것을 서두르지 말라.

아이들은 보통 만 2~3세 사이에 일부 글자를 인식하기 시작하며 만4~5세가 되면 대부분의 글자를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요즘 한글을 빨리 가르치기 시작하는 엄마들이 많은데, 아이가 글자를 구별할 수 있게 되는 시기는 개인별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아이에게 급하게 한글을 가르치게 되면 아이는 글자를 소리의 표시가 아닌 그림으로 인식해서 모양을 기억하기 때문에 뇌에서 많은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좌뇌만 자극하는 읽기를 강요하면, 아이는 한글 학습을 괴로운 활동으로 인식하고 흥미를 잃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한글을 익힐 준비가 되었을 때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것이다.


넷째, 반복해서 읽어주어라.

다양한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좋으나, 단어와 그림과의 연결이 가능하게 하려면 한 그림을 반복하여 보여주는 것도 언어 발달에 효과적이다. 아이들은 반복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고 기억한다. 아이가 매 번 같은 책을 가져오더라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어주어라. 다른 책 세 권을 읽는 것보다 같은 책을 세 번 읽는 것이 아이가 단어를 습득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기가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내용을 기억할 수 있게 되면 부모가 책을 읽어줄 때 단순히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다음에 나올 내용을 미리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게 되며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손으로 가리키며 단어를 말하거나 소리를 내며 반응을 보인다.


다섯째, 정확한 표현과 정확한 문법을 사용하라.

그림책을 보여주며 말을 해줄 때는 아기가 비록 못 알아듣더라도 빵빵, 찌찌 같은 유아어보다는 ‘이건 자동차야’, ‘여기 우유가 있네'와 같이 정확한 표현과 정확한 문법을 가진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 훨씬 교육적이고 언어발달에 효과적이다. 아이의 불완전 문장을 완전 문장으로 바꾸어 주자. 아이가 “엄마, 차”하고 말했을 때“그래, 빨간색 차가 빠르게 지나가는구나.”하고 긴 문장으로 대답해 주면 아이는 좀 더 많은 어휘를 갖게 된다. 아이들은 부모가 쓰는 어휘의 뜻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엄마들 중에는 아이에게 “그게 뭐니?” 또는 “저거 가져와.” 등 대명사를 넣어서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늘을 가르키며 “저거 예쁘지?”라고 하기보다는 “저 푸른 하늘은 참 아름답구나.”라고 말하자.


여섯째, 성인과의 대화에 참여시켜라.

그림책을 통하여 아무리 많은 어휘를 기억하고 있다 해도 그 어휘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대화할 때 어휘력이 부쩍부쩍 는다. 그림책의 어휘를 이용하여 동네나 시장을 산책하면서 질문해보자. 특히 성인이 말해주는 옛날이야기는 어휘의 밭이다. 생활어휘는 물론 개념 어휘, 문학 어휘 등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때 필요한 어휘들이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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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및 소아신경과 전문의. ‘부자 아빠’가 대세이던 시절, 그는 “아이 발달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 말했다. 돈 버느라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 보다는 ‘친구 같은 아빠’가 성공하는 아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아이의 인성은 물론 두뇌도 발달한다. 6살 이전의 아이 뇌는 부모의 양육방법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고 그는 강조한다. ‘베이비트리’ 칼럼을 통해 미취학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는 제대로 된 양육법을 소개할 계획이다. <아이의 공부두뇌>, <아이의 공부의욕>, <아이가 똑똑한집 아빠부터 다르다> 등의 책을 펴냈다.
이메일 : pedkyh@catholic.ac.kr       트위터 : pedk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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