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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한판 “앗싸” 재미도 소통도 ‘팡팡’

양선아 2017. 05. 31
조회수 4839 추천수 0
가족끼리 친구끼리 얼굴 맞대고
때론 경쟁, 때론 협력하며 희비 교차
 
온라인게임이나 티브이에 빠져 
눈도 안 맞추는 아이에게 ‘약’
 
교육적 기능 지나치게 집착하면
즐거움 빼앗고 금세 시들
 
주제 따라 어린이 파티 테마 전략… 
전세계 4만종 중 한국 2700종 유통
 
일부 도서관엔 책과 함께 보드게임
그림책 바탕으로 한 게임도 나와
 
513.jpg » 연 2회 개최되는 서울보드게임페스타 행사에서 여러 가족들이 보드게임 체험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한국보드게임산업협회 제공

 “하나, 둘, 셋!” 구호에 맞춰 민수와 엄마, 아빠가 카드를 뒤집었다. 엄마 카드는 5, 아빠 카드는 1, 민수 카드는 6. 숫자가 가장 큰 사람이 나뭇조각을 올려놓을 수 있다. 민수는 숫자 6이 쓰인 기다란 나무판에 나뭇조각을 조심스럽게 올린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앗싸~ 올렸다!” 무사히 나뭇조각 올리기에 성공한 민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승부욕에 불타는 민수 모습을 보면서 엄마·아빠는 활짝 웃는다. ‘리프래프’라는 보드게임을 즐기는 곽도윤(민수 아빠·38)씨네 주말 거실 풍경이다.
 
14살, 10살 두 아이의 아빠인 곽씨는 보드게임 마니아다. 곽씨는 6년 전부터 부모님, 아내, 아이들과 함께 보드게임을 즐기고 있다. 건설자재 사업을 하는 곽씨는 건설업 침체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현실이 너무 힘들 땐 술을 마시기도 했고, 온라인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빠진 적도 있다.
 
“갈수록 가족이나 친구들과 멀어지고 외로워지더라고요. 인생이 잘못되어가는 느낌이었죠.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보드게임을 만났어요.”

회사 동료가 제안해 하게 된 보드게임 세상은 신세계였다. 보드게임을 하니 가족·친구·동료와 웃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즐길 수 있었다. 모바일·피시 게임 생각도 나지 않았다. 생활이 180도 바뀌었다는 그는 국내 최대 보드게임 커뮤니티인 ‘보드라이프’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보드게임의 장점을 알리는 중이다.
 
사회성·협동성·사교성 높다는 논문도

곽씨가 주장하듯 보드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보드게임은 판자나 주사위 등 물리적 도구를 사용하고 약속된 규칙이 있는 놀이이다. 온라인 게임과 달리 대면 접촉을 해야 할 수 있어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강화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아이를 둔 부모나 아이와 놀고 싶지만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할지,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는 부모에게는 보드게임은 좋은 놀이 및 소통 수단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보드게임과 관련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보드게임은 아동의 사회성 증진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 2015년 김보라씨가 광주교육대 교육대학원에서 낸 ‘보드게임 놀이활동이 아동의 사회성에 미치는 영향’(초등상담교육 전공)이라는 논문을 보면, 보드게임 놀이활동에 참여한 그룹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사회성·협동성·사교성이 높았다. 아이들은 보드게임을 하며 말을 잘 나누지 않던 친구와도 말을 하게 됐고, 게임 규칙에 대해 설명을 주고받았다. 아이들은 또 보드게임을 통해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방식도 경험하고, 타인과 경쟁 또는 협력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외에도 보드게임은 승패에 따른 감정 조절을 해야 하고 게임에 지더라도 게임 결과를 수긍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기감정을 조절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다.
 
512.jpg » 민수와 민수 엄마가 보드게임 리프래프를 즐기는 모습이다. 보드게임을 즐기는 이 가족은 가족끼리 모이면 보드게임을 한다. 곽도윤씨 제공
 
세계에 유통되는 보드게임은 4만여종이며, 국내에는 약 2700여종의 보드게임이 유통되고 있다. 보드게임의 종류는 다양한데 게임의 대상이나 주제에 따라 어린이, 파티, 테마, 가족, 추상, 전략, 전쟁(워) 게임 등으로 나뉜다.
 
국내 보드게임 시장은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성장해왔다. 중소기업청과 한국생산성본부가 추산한 수치를 보면, 보드게임 시장(보드게임업체 매출 규모)은 2003년도만 해도 200억원에 못 미쳤으나, 2016년 시장 규모가 1천억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10조원에 달하는 전체 게임 시장에서 보드게임이 차지하는 비율은 여전히 미미하고, 모바일 게임이 대부분의 시장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할리갈리, 한국에서 가장 큰 인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보드게임은 무엇일까?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5 대한민국 게임백서’를 보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보드게임은 ‘할리갈리’다. 이 게임은 카드에 그려진 과일 5개가 보이면 종을 치는 게임이다. 간단한 규칙에 집중력과 순발력이 필요하고, 남녀노소 불구하고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어 인기가 있다. 이외에도 루미큐브, 젠가, 도블, 다빈치코드, 블루마블 같은 가족 게임이 국내에서 연간 수만개 이상 팔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가족끼리 보드게임을 즐기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파티 게임이나 가족 게임부터 시작하면 좋다. 처음 보드게임을 시작하면서 전략 게임이나 전쟁 게임부터 선택한다면 보드게임에 흥미를 느끼기 어렵다.

한국의 부모는 보드게임을 구입할 때조차도 지나치게 교육적으로 접근하려는 특징이 있다. 이지은 한국보드게임산업협회 운영실장은 “교육용 보드게임이 따로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며 “지나치게 교육적 기능을 강조하면 보드게임의 즐거움을 반감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드게임에 연산 등 교육적 요소를 굳이 녹이지 않아도 생각하는 능력, 협동하는 능력, 창의적인 생각 등이 내포돼 있다”며 “윷놀이를 하듯 가족끼리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관련 카페도 다시 속속 등장

만약 다양한 보드게임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보드게임 카페나 보드게임 도서관에 가 미리 직접 해보는 것도 좋다. 2003년에 잠깐 붐이 일었다 사라진 보드게임 카페가 최근 서울 명동, 강남, 사당, 이태원, 홍대 입구 등 서울 번화가나 지방 대도시에 다시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에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해운대사회복지관에 보드게임을 기반으로 하는 작은 도서관도 생겼다. ‘보드랑’이라는 이 도서관에는 120여종의 보드게임을 마련해놓았다.
 
보드게임 카페에 갈 여력이 없다면 광고 카피 문구를 믿기보다 직접 게임을 한 사람들의 온라인 후기나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본 뒤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최근에는 유명 작가의 그림책 이야기를 기반으로 보드게임을 제작하는 사례도 있으니 책과 연계해 보드게임을 즐기는 방법도 있다. <아름다운 가치 사전>을 펴낸 유명 동화작가 채인선씨는 최근 <김밥은 왜 김밥이 되었을까?>라는 편식을 주제로 한 창작 그림책을 펴냈다. 스토리메이커는 이 그림책 내용을 기반으로 ‘돼지김밥’이라는 편식 예방 보드게임을 개발해 내놨다.

일부 공립 도서관에서는 그림책과 보드게임을 함께 비치해놓았다. 오지은 서울 광진구립도서관 관장은 “그림책의 스토리와 캐릭터를 활용한 보드게임이 아이들에게 다시 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등 아이들의 건강한 놀이 문화 형성에 도움이 된다”며 “도서관이 시민에게 책만 읽으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제공하고자 하는데 보드게임도 그런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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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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