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 사진 자료 ::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사랑하는 딸 주희야. 엄마가 주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엄마가 만약 시인이라면, 엄마가 아동 소설가라면 더 다양한 표현으로, 더 가슴을 담은 말로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데, 정말 이 말은 계속 하고 싶단다. 사랑한다. 우리 딸.
지난 달 아빠가 너에게 불쑥 했던 말로 인해 네가 얼마나 생각이 많아졌는지, 네가 또 다른 고민이 생긴 것 같아 엄마는 마음이 늘 불편하단다. 이제 아홉 살 밖에 되지 않은 너에게 아빠가 너무 말을 빨리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
우리 딸, 갓난아기 때부터 아빠와 엄마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지. 처음 걸음마 할 때부터, 엄마 아빠를 처음 말하고, 우리와 손 잡고 뛰어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 말을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단다. 적어도 아빠와 엄마에게는 너는 어느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딸이지만,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너와 엄마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릴 수만 있어도 좋으련만,...하고 생각했었지. 사랑하는 주희야. 아기를 낳는 수 많은 엄마들처럼, 아니 그 누구의 엄마보다도 너를 더욱 더 사랑하는데, 그래서 너를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가, 엄마가 정말 너를 낳아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언젠가 이 비밀을 너에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교육도 받고, 배워왔지만, 엄마는 네가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자꾸만 말하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했었지. 너 때문에 가슴도 아파하고, 너 때문에 눈물도 많이 흘렸고, 그리고 너 때문에 기쁜 일도 참 많았었지. 그래서 너를 낳은 것처럼 늘 생각했었는데, 아빠가 이 비밀을 너에게 털어 놓았다는 말에 엄마는 무척 많이 울었단다. 왜 그런 줄 아니? 엄마가 사랑하는 우리 주희를 낳아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했고, 혹시나 네가 너무 힘들어 할까봐 엄마 가슴이 참 많이 아팠단다. 이틀 밤을 꼬박 울었단다. 엄마도 울고, 외할머니도 많이 울었지. 너를 낳아주지 못해 엄마가 미안한데, 네가 가슴 아파 할 것 같아서 말야.
그런데 엄마 딸 주희야,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해줘서 고맙고, 계속 동생에게 좋은 언니의 모습을 보여줘서 고마웠단다. 우리 주희는 엄마, 아빠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첫째 딸이란다. 그래서 엄마는 이제 ‘미안해’라는 말은 그만 하려고 해. 너를 엄마 배로 낳아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한 마음은 계속 남아 있지만, 이제는 그 마음보다 더 크게 너를 사랑하고, 너를 바르게 자라도록 할꺼야. 낳아주지 못한 그런 마음의 눈물보다 더 크고, 더 깊게 너를 엄마 가슴에 품고 사랑하고 그렇게 살 거란다. 사랑하는 우리 딸, 엄마가 그래서 미안했어. 그렇지만 이제 우리 더 많이 사랑하자. 엄마와 딸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