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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 2학년에 복학을 한 막내아들의 1학기 성적표다.
복학을 하고 후배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고 싶다던 아들이었다.
휴일에도 고향을 찾지 않고 열심히 한 보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들만 생각하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이만큼 자랄 때 까지 늘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이제는 좀 가라앉는 것 같다.
이곳 창녕으로 이사 온 지 올해로 21년 째
막내가 아장아장 걸음마를 뗄 무렵에 남편의 사업체가 어려워지면서 맞벌이를
하느라고 찾아 든 직장이다. 남편은 시설관리자로 나는 주방을 맡는 일로 우리 부부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바쁜 일정을 감당해야 했다.
아들이 다치던 그날도 며칠 뒤로 다가 올 큰 행사(약 800명) 준비로 정신없이 바빴다.
도와주는 일손 없이 둘이서 행사준비를 하느라 아장거리던 막내가 마당을 빠져 나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해가 서녘하늘을 붉게 물 들이고도 한참이나 지난 시간에 막내가 안 보인다는 걸 알았다.
위로 두 누나들이 있었지만 학원에 가고 없었다. 우리 부부는 행사 때 먹을 부식준비로 분주했고 우리 곁에서 흙장난을 하던 막내가 없어진 줄도 몰랐다. 어느 순간 막내가 안 보인다는 걸 알았고 이름을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창녕으로 이사 온지 두어 달? 그 때까지 우리 부부도 아직 주변을 다 알지 못했고 막내는 더더욱 몰랐다. 넓은 마당에서 아들 이름을 크게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갑자기 무섬증이 와락 들었다. 혹시 유괴?? 아니면 미아??
하던 일손을 놓고 우리 부부는 골목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막내 이름을 부르며 낯선 시골길을 달렸지만 그 어느 골목에서도 막내의 대답이나 머리카락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 논둑길이며 밭둑을 누볐지만 막내는 없었다. 내 목소리는 이미 울먹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어둑발이 내릴 것이고 그러면 막내는 더욱 찾기 힘들건데 조바심도 났지만 막내가 걱정이 되어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갔다. 걷는데도 걸음이 허방을 딛는 것 같았다. 휘청대는 걸음으로 한참을 오르내리며 막내이름을 부르고 다닌지 얼마쯤 지났을까? 저 멀리 밭에서 일을 하시던 이웃 동네 아주머니께서 아까아까 저기 저 농수로 둑길에서 어린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던데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고 말해 주셨다.
농수로라면 물이 늘 흐르는 곳인데 혹시라도 서툰 걸음마로 걷다가 헛디뎌서 빠지기라도 했을까? 그래서 우는 소리가 안 들리는 걸까? 아까아까 울었는데 지금은 안 들린다면 그것말고 더 무슨 이유가 있을까 싶어서 한달음에 그분이 가리키는 농수로 둑길을 달려가 봤다.
그런데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 때도 꼭 이맘 때라 6월이었다. 잡초가 어른 키만큼 자란 둑길에는 잡초만 무성할 뿐 아이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손나팔을 하고 막내의 이름을 불러봤지만 아무런 메아리가 없었다. 그 때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그 둑길에서 튀어 나왔는데 집에서 기르고 있던 아롱이었다. 마치 막내를 본 듯 반가웠고 복실이를 품에 안았다. 그런데 아롱이는 내 품을 밀치더니 저만치 뛰어 나갔다. 그러다가 다시 돌아오고 뛰어 나가기를 반복하는게 아닌가? 하도 이상해서 아롱이가 사라진 둑길을 따라 들어갔더니 세상에 세상에...
거기에는 막내가 얼굴에는 지렁이가 수 십 마리는 지나갔음직한 꼬질꼬질한 얼굴로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흥..흥....”
울다가 지친 얼굴로 울음소리도 안 나오는 쉰 목소리로 비척거리는 걸음마로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달려가 막내를 와락 껴 안았다. 온 몸은 땀범벅이었고 엄마를 본 막내도 울음을 터뜨렸다. 놀라지 않게 등을 토닥거려 줬지만 막내는 딸꾹질이 나오도록 한참을 울었다. 막내를 찾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미 헤드라이트를 켠 차들이 바쁘게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아들을 안고 나오는데 갑자기 “엄마 뱀이 물었어요, 뱀이요.” 그러는게 아닌가? 처음에는 말장난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들이 내민 손가락을 가만히 보니 뱀의 이빨 모양이 그대로 있었다. “어떻게요? 진짜 뱀한테 물렸나봐...빨리 병원으로 가요.”
차를 갈아 탈 정신도 없이 막내를 안고 오토바이를 타고 읍내 병원으로 달렸다. 막내가 내민 손가락은 퉁퉁 부어있었다. 내 가슴은 방망이질을 시작했고 막내를 안은 팔에는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아 ...안돼요. 막내를 살려 주세요.하나님.” 속으로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며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서는 뱀한테 물려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세 살박이 어린 아들의 손등을 가차없이 메스질을 했다. 작은 조가비만한 손등을 일곱군데나 핏줄을 그었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내 심장을 칼로 그어대는 고통이었다. 혹시라도 독이 위로 올라가는 걸 막는다며 핏줄을 칼로 긋고는 링거를 드리우는데 노오란 물이 아이의 손등으로 흘렀다.
다행히 독사는 아니었던 모양이라며 안심을 시켰지만 무슨 뱀인지 모른다며 해독 주사도 놓았다. 워낙 어린 아이고 아무리 독이 약한 뱀이라도 치명적이지는 않더라도 위험할 뻔 했단다. 만약에 독사였다면 이미 독이 온 몸에 퍼져서 아이를 잃었을 거라고 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 밤을 보냈다. 사흘쯤은 입원을 하고 후유증을 지켜봐야한다고 했지만 행사가 코앞이라 만약에 급한 일이 있으면 응급실로 오마고 하고는 강제로 퇴원을 했다. 뱀한테 물린 손에 붕대를 하얗게 감고 퇴원을 했고 행사는 무사히 치뤘다. 일이 몸에 익지 못한 엄마아빠는 널뛰듯이 이리저리 뛰며 달렸고 아이는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징징대지 않으며 잘 놀았다.
다행히 아이는 큰 이상없이 무사히 아물었다. 손등에는 일곱군데나 칼자욱이 남았지만 건강한 대한의 아들로 잘 자라줬다. 그리고 군복무도 해병대에서 공수부대훈련까지 마치게 되었다. 남편을 도와 맞벌이를 하겠다며 행사준비로 아이를 살뜰히 보살피지 못한 죄책감은 지금까지도 나를 미안한 엄마로 남아있게 한다. 만약에 독이 강한 뱀한테라도 물려서 우리가 늦도록 찾지 못했더라면 어쩔 뻔 했던가 상상하면 아찔하다. 그 때 독한 해독주사를 맞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명석한 두되가 되지 않았을까 싶으면 막내한테 너무 많이 미안하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수업을 잘 따라갈까 걱정도 되었지만 참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별 무리없이 잘 해 주고 있다. 심성도 착하고.
아들아, 그래도 엄마로써 미안한 건 미안하다. 니들 삼남매를 잘 키워 보겠다고 맞벌이를 하느라고 바빠서 그랬으니 이해해 줄 거지?